어제 동네 마트에 뭘 좀 사러 나갔다가 황당한 유세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삼거리, 사거리, 오거리가 교묘하게 얽혀있어서 나름 목 좋은 곳에 유세 차량이 서있었고, 그 차를 바라 보며 길가에 운동원(?)들이 노란 모자를 쓰고, 노란 티를 입고 줄지어 서있었다.

유세차량에서 마이크 잡은 어떤 분이 말을 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님 을 외쳐보세요! 그러면 노무현 대통령님이 나올 겁니다." (헐~ 강시? 귀신?)
그랬더니, 노란 모자 아줌마들이 살짝 "노무현 대통령님"이라고 외쳤다.
더 크게 해야 나온단다.
그러니 조금 더 크게 외쳤다. "노무현 대통령님"... 외치면서도 멋적어 보였다.

유세 차량에 서있단 양반이 어슬프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투를 흉내내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세상에서는 "김대중 대통령보다 인기가 좋다"나 뭐래나...

사투리인지, 책을 읽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치짬뽕이 찬란하게 빛나는 유세현장을 살짝 비켜 지나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가 무슨 정당의, 무슨 후보로 나왔는지 알지 못하지만 "미쳤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왔다.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접신하는 무당인지, 그냥 웃기려는 코미디언인지 모르겠지만 놀라운 시도를 통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동정을 사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저분은 어떻게 선거를 치뤘을지 궁금했다. 검찰에서 어떻게 판결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살 여부에 따라서 선거 전략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신 분의 이름에 먹칠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지하에서 웃겠다. 어이가 없어서...
(막 하자는 거지요~)

유치하게 선거유세하지 못하게 막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길 지나가는 시민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어야만 하는 걸까?

현수막이 아주 낮게 드리워져있어서 통행에 위험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래서 며칠전에 찍은 사진이다.
아래의 동일한 장소에서 일어난 동일한 당의 황당한 일이어서 사진을 첨부해본다.

Nokia | 5800 Xpres | 1/200sec | F/2.8 | 3.7mm | ISO-60 | Flash did not fire, auto mode | 2010:05:22 11:09:20
여기서는 그나마 높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래의 사진을 보면
Nokia | 5800 Xpres | 1/333sec | F/2.8 | 3.7mm | ISO-60 | Flash did not fire, auto mode | 2010:05:22 11:09:30

여차하면 머리에 걸릴 수 있는 높이로 축~ 처져있다. 저렇게 먼거리에다가 현수막을 걸어도 되는 건가...
여차해서 바람이라도 불고, 키가 큰 사람이 걸어가다가 머리나,목이 걸리기라도 한다면... 끌~
이것도 선거법 위반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한번씩 가서 그의 글을 읽어본다.

인터넷에는 반정부 글이 하도 많기에,
가끔씩 읽어보게 되면
동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연로한 연세에도
정정하게 글을 올리시는 걸 보면
놀랍다.

여기서는
마지막에 있는
말은 억수로 공감이 간다.
그 국회의원 중에서 1명을 나는 안다. ㅋㅋㅋ

지난 번 이른바 언론법 파동에 사표를 내고도,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느새 되돌아가 뻔뻔스럽게, 세비를 받아먹고 살며 떵떵거리는 야당의 그 세 사람 국회의원들을 나는 경멸합니다.


 

2010/02/20(토) -용기라는 미덕- (661)
   
지난 18일 박세일 교수가 <창조적 세계화론>이라는 800 페이지 가까운 두툼한 책 한 권을 출판하여 그 출판기념회에 다녀왔습니다. 워낙 덕망이 있는 학자라 각계각층에서 많은 하객들이 모여 문자 그대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 스님, 목사, 교수, 정치인, 실업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학자이면서도 거침없이 현실에 참여하는 그 충성스러움에 나는 경의를 표합니다. 그는 조국의 선진화와 통일을 강조합니다. 선진화 없이 통일 없고, 통일 없이 궁긍적인 선진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입니다. 나도 그 주장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80 넘은 노인인 내가 추위를 무릅쓰고 자리에 나간 것은 그가 이 나라의 지식인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그럴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한 마디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학자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고려조가 무너지는 것을 정몽주 혼자 막아내진 못했지만, 오라고 손짓하는 이성계에게 “그럴 수는 없다”고 그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선죽교에서, 칼에 맞았건 몽둥이에 맞았건,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이 때문에 고려조가 정신적으로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성삼문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럴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려다 노량진 언덕의 한 줌 흙이 되고 한 방울 이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육신의 그 의로운 항의와 고귀한 희생 때문에 조선조는 역사에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안중근은 이또 히로부미를 향해 “이럴 수는 없다”며 하얼빈 역두에서 그 품에 품고 갔던 브라우닝 자동 권총을 꺼내 이또를 향해 발사, 그가 발사한 3발이 모두 이또의 가슴에 박혀 그는 20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숨이 넘어가기 전에 이또는 “이거 누가 한 짓이야”라고 물었답니다. 그의 측근이 “한국 청년입니다”라고 알려주었더니, 이또는 “그렇겠지”하고 숨을 거두었답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말았지만 안중근 때문에 아주 빼앗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봉창·윤봉길이 일본의 침략자들을 향해 “이럴 수는 없다”며 사꾸라다문 밖에서, 또는 상해 홍구 공원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폭약이 든 점심그릇을 던졌기 때문에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서 해방을 맞고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오늘 문제가 되는 세종시 원안을 여·야가 합의하여 통과시킬 때 국회의원 박세일은 “이럴 수는 없다”며, 당을 버리고 국회를 떠났습니다. 작은 일 같지만 큰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박세일을 사랑합니다.

지난 번 이른바 언론법 파동에 사표를 내고도,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느새 되돌아가 뻔뻔스럽게, 세비를 받아먹고 살며 떵떵거리는 야당의 그 세 사람 국회의원들을 나는 경멸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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