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머물다 / 낙타의 목을 베라~

마음머물다! | 2010.06.29 13:54 | Posted by dobioi


어느 낙타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밤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텐트 밖에 있던 낙타가 주인에게 너무 추우니 다리 하나라도 텐트 안으로 들여놓도록 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자비로운 주인은 낙타의 간청을 들어주게되는데, 다리를 들여놓은 낙타는 또 다시 주인에게 머리를 넣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주인은 그러라고 하지만 좀 불편해 한다. 잠시 뒤 머리까지 들어온 낙타는 주인에게 다 들어가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다. 주인더러 나가란 이야기와 비슷한 거였다. 그러자 주인은 낙타의 목을 쳐 죽인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죄의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 죄는 처음의 사소한 유혹부터 시작된다. 그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그것이 점점 커지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자신을 파멸시키게 되는 것이다. 설마 아직은 괜찮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더 큰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연약하다. 게다가 예수를 믿지 않는 인간은 더 연약하다. 앞날을 한치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 물어보는 것이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하면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있는지, 피해갈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앞날도 잘 모르는 용(?)한 점쟁이에게 말이다. 그 용(?)한 점쟁이는 놀랍게도 10이면 10명이 다 나쁜일이 일어날 거라고 이야기 한다. 의뢰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고, 몇백이 들지도 모르는 굿이라도 해야만 자신이, 또는 가족이 안전해질 거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행여 경재적인 여력이 충분해보이지 않을 때는 반값 또는 그 이하로 후려서 영험한 "부적"을 구입하라고 권한다. 조금 찜찜하지만 그거라도 사야만 적어도 병신은 되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에 빠져들게 되며, 한번 두번 물어보게 되면 집안의 큰 일 - 예를 들어 이사를 간다던가, 결혼을 한다던가 - 을 앞두고는 불안한 마음에 꼭 찾게 되고, 심지어는 작은 일 - 벽에 못을 박거나 가구의 위치를 바꾸는 등 - 에도 찾아서 명쾌한 답을 듣지 않으면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쯤되면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그걸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라면 탈무드에 나오는 낙타의 주인처럼 교활하고도 멍청한 "낙타"를 가차없이 참수시켜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낙타를 텐트에 잘 모셔두고, 정작 자신은 텐트 밖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텐트를 하나 더 사야하나? 낙타를 타고나 다닐 수는 있을까?)

심지어는 좋은 일이 있을텐데, 호사다마라고, 나쁜일이 있은 뒤에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위협하기도 한다. (헐~ 좋아도 굿해야 하고, 나빠도 굿해야 하는 드러운 세상...) 그런 거다. 그 바닥이 그런 거다. 그걸 아는 사람은 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른 체 계속 그들에게 돈을 갖다 바친다. 돈 벌기(잃기) 엄청 쉬운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여기서 위대하다는 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위대함을 넘어서는 말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건 이미 위대가 아닌 거다. 연약한 인간이 위대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이다. 나 자신,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이다. 자수성가를 했거나, 뛰어난 수완으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거나,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야, 인생 어렵지 않은 걸!'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태풍같은 시련, 아니 갑작스런 먹구름에라도 순식간에 그 "자신감"이 "두려움"으로 변할 수 있다. "두려움"이 엄습하면 과거에 가져보지 못한 경험인지라,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하는지라 늪에 빠진 마냥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무기력한 자신을 보게 된다. 둥둥 떠있는 지푸라기 정도를 해결책인마냥 모조리 잡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늦어버리는 거다. 하지만 위대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같은 늪에 빠지더래도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거다. 늪에 빠진 지푸라기에다가 모든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에라도 손을 내밀어 나를 끄집어내주시고, 샤워시켜주시고, "이 길이 아니니, 저 길로 가거라" 당부의 말씀까지 해주실 하나님의 손을 잡는 거다. 심각한 어려움을 당하더래도 "이건 과정이야! 아직 끝은 아니야"라고 용기있게 외칠 수 있는 거다. "여기가 끝인거다. 더이상 갈 곳이 없다"라고 생각하며 생을 스스로 마감해버리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는 사람들처럼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남녀의 사랑같은 달콤한, 감각적인 것과는 큰,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전 인류를 상대로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주셔서 구원 프로젝트를 시행하실만큼 놀라운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프로젝트는 2천년 전에 이미 우리이게 이뤄진 것이며, "성경"이라는 연예편지 같은 책에다가 꼼꼼하게 한 자, 한 자 적어놓으셨다. 어쩌면 공상 과학 소설보다도 더 황당하지만 역사가 증명해주고, 공갈 협박 같지만 깊은 사랑이 곳곳에 뭍어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황당한 다른 책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 "성경"을 남겨주셨고, 그 성경의 일들이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혜택을 받는 것이 너무나 쉽다는 건 좀 미심쩍다. 단순히 그 책의 주인공인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는 거다. 하나님이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계신 분으로 "십자가"에서 처참히 처형으로 죽으신 분이며, 그걸로 끝나지 않고 놀랍게도 다시 살아나셔서(부활) 하늘로 올라가시고(승천) 다시 오시길(재림) 약속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단순히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가?

어째, 허공을 잡는 듯한 이야기에 당황스러우신가? 그렇다면 가까운 교회를 가보시길 권해드린다. 놀라운 경험과 함께, 놀라운 미래를 기대할 수 있으실 거다.


그것 역시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니, 그나마 진솔한 분이며, 정말 정직하면서도, 용감하다고 말하고 싶다.

"죽음"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라는 것인데, "죽음"과 "부활"을 알았던 "예수"도 "죽음"의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 3번이나 기도를 했고,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는 괴로움을 온 몸으로 받고 돌아가셨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후의 사진을 봤다. 어떻게 "소신공양"을 하면서 절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게 됐는지, 또 인터넷을 통해서 본 시신(? 이렇게 말하는게 맞는지?) 사진이 무척 괴로워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엔가... 책에서 본 "등신불"이라는 소설에서 보았던 내용과는 사뭇 달랐기에, 당시의 참혹한 상황에 몸서리가 쳐진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 하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로 했던 그 예수도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부르짖기도 했고, 최후에는 "다 이루었다"라는 말을 나즈막히 내뱉으며 운명하셨다고 한다.


괴로워할 틈도 없이 죽게 되거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조치를 한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정상적으로 고통을 인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라면 그 고통으로 인해 엄청난 괴로움 끝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내 생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다." 라는 말은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종교인, 현자로서도 전혀 문제가 없는 진솔한 이야기라 생각된다.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라는 자기 성찰, 반성 어린 고백이 듣는 이에게 숙연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그나마 죽은 지 3일 뒤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예수가 더 좋지 않을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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