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역시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니, 그나마 진솔한 분이며, 정말 정직하면서도, 용감하다고 말하고 싶다.

"죽음"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라는 것인데, "죽음"과 "부활"을 알았던 "예수"도 "죽음"의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 3번이나 기도를 했고,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는 괴로움을 온 몸으로 받고 돌아가셨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후의 사진을 봤다. 어떻게 "소신공양"을 하면서 절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게 됐는지, 또 인터넷을 통해서 본 시신(? 이렇게 말하는게 맞는지?) 사진이 무척 괴로워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엔가... 책에서 본 "등신불"이라는 소설에서 보았던 내용과는 사뭇 달랐기에, 당시의 참혹한 상황에 몸서리가 쳐진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 하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로 했던 그 예수도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부르짖기도 했고, 최후에는 "다 이루었다"라는 말을 나즈막히 내뱉으며 운명하셨다고 한다.


괴로워할 틈도 없이 죽게 되거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조치를 한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정상적으로 고통을 인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라면 그 고통으로 인해 엄청난 괴로움 끝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내 생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다." 라는 말은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종교인, 현자로서도 전혀 문제가 없는 진솔한 이야기라 생각된다.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라는 자기 성찰, 반성 어린 고백이 듣는 이에게 숙연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그나마 죽은 지 3일 뒤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예수가 더 좋지 않을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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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없는 삶은 죽은 거랑 같다. 고민없이, 어려움 없이 평탄한 길을 걸어간다면 그 길이 단조로와 금방 싫증날테고, 무난한 길이라 발전도 없을 것이다. 물론 무조건 적당한 내리막처럼 쉽게만 산다면 나즈막한 오르막에도 숨이 차 더이상 오르지 못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간다면 체력이 좋아져서 더 힘든 오르막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힘을 내서 열심히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쉽고, 넓고, 평탄하고, 여유로운 길만을 선호한다면 발전이 없을 거다.
어렵고, 좁고, 불편하고, 조급한 길을 만날 때, 금방 포기해버릴 수 있겠다.

삶을 쉽게 살려도 하지 말자.
어려운 길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한번 시도해보자.



너무 고민스러워 죽고싶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주어진 일들 중 극복하지 못할만한 일은 없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말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지나고 보면 어떻게 지났나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또는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극복해왔을 것이다.

기쁘고 좋았던 기억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했던 기억을 잊지말자.
아니, 하나 하나 곱씹고 되새겨서 스스로를 채찍질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만만하게 여겨지고, 또다른 하나의 파도를 잘 타넘었다고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고를 치하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날 붙잡아주시는 아버지, 아내, 아들, 딸, 친구... 하늘을 보며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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