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장수촌 간판 떨어져 오키나와에 무슨 일이 50~70代 기대 수명 日 밑바닥 수준 추락 인구당 패스트푸드점 일본 2위 식문화 서구화로 건강 식단 잃어 미군 주둔 후 스팸 등 소비 급증
일본은 노인인구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이제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이 됐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미군의 영향을 오래도록 받은 나라다. 그래서 그런지 장수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일본이 그런 상황이 아니라니 솔직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장수촌이 될 수 있는 환경은 나라에서 신경 쓰거나, 주민들이 스스로 건강한 삶을 되찾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시스템은 어디 가지 않았을 것 같다. 분명 장수촌은 그 장수의 비결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잘 배우면 될 것이고, 나빠진 것에는 경각심을 가지면 될 거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건강 관련 정보가 흘러넘치고 있다. 하지만 그게 건강식품을 팔기 위한 것이라 문제다. 종편 방송을 보다보면 건강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정보도 보이지만, 곧이어서 그걸 모두 광고상품으로 점철시켜버리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아마도 미군 스팸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 장수촌’ 간판 떨어졌다, 오키나와에 무슨 일이...
50~70代 기대 수명, 日 밑바닥 수준 추락
인구당 패스트푸드점 일본 2위
식문화 서구화로 건강 식단 잃어
미군 주둔 후 스팸 등 소비 급증
육류 위주 식단, 남성 비만율 1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입력 2022.09.30 03:19
세계 최고 장수(長壽)촌으로 불리던 일본 최남단 섬 오키나와. 한때 전 세계 언론과 장수학자들이 앞다투어 찾아가 오키나와 특유의 장수 비결을 분석하고 소개했다. 미 주간지 타임은 2004년 특집 기사를 통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오키나와를 배우라”고 전파했다. WHO(세계보건기구)로부터 ‘세계 최고 장수 지역’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그랬던 오키나와는 이제 더 이상 장수촌으로 통하지 않는다.
올해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21년 평균수명을 보면 오키나와 남성 평균수명은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중 36위에 머물렀다. 1985년 전국 1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숫자다. 오키나와 남성 평균수명은 80.27세로 일본 1위인 교토의 동쪽 지역 시가현(81.78세)보다 거의 두 살이 적다.
오키나와의 수명 추락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1995년 4위로 내려앉더니, 2005년에는 25위로 곤두박질쳤고, 이제 36위로 내려왔다.
오키나와 여성도 마찬가지다. 2021년 평균수명은 87.44세로 일본 내 7위다. 2000년대 중반까지 다른 지역이 넘볼 수 없었던 부동의 1위였던 오키나와 할머니들은 다른 곳에 사는 할머니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오키나와에서 당뇨병 사망률은 11.9%로, 전국 평균 11.4%보다 높다(2018년 일본 인구동태통계). 여전히 전 세계 기준으로는 오키나와 평균수명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일본 내에선 장수촌이 아니라 단명(短命)촌으로 불러도 할 말 없는 처지로 떨어졌다.
도대체 오키나와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본래 오키나와는 다양한 채소와 해산물·해조류가 주식이었다. 두부 섭취량은 미국인의 8배였다. ‘하라하치부(腹八分)’라는 오키나와 특유의 80% 식사법은 장수 비결로 꼽혔다. 포만감 8할이 찰 정도까지만 먹고 수저를 내려놓는 소식(小食)이다. 계모임 성격인 ‘모아이’를 통해 5~6명 친구가 죽을 때까지 교제하며 가족같이 살아갔다. 100세 안팎 또래 노인들이 ‘모아이’를 통해 궂은 일, 험한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왔다. 장수의학자들은 가족과 친구, 이웃 간의 집단적 소속감과 끈끈한 우애가 자연스럽게 장수 문화를 형성했다고 말한다. 같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문화, ‘사는 보람’으로 해석되는 ‘이키가이(いきがい)’는 오키나와인 삶의 근간이었다. 노인이 되더라도 외롭거나 적적하지 않았고, 이는 장수로 이어졌다.
오키나와 나하의 기념품 점에서 판매하는 일본특화 스팸.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제 전통건강식보다 햄버거등 패스트푸드를 많이 찾는다./로이터
그랬던 오키나와는 미군의 장기 주둔과 서구식 식문화 영향 등으로 전통 생활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맥도날드·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급속히 늘었다. 2017년 인구 10만명당 패스트푸드 점포 수는 오키나와가 일본서 도쿄 다음으로 2위다. 스팸 같은 통조림 고기 섭취도 늘었다. 자동차 보급이 늘면서 운동 부족이 뒤따랐다. 그러자 2011년 남성 비만율이 42.1%에 이르러 일본 내 최고가 됐다. 여성 비만율도 34.7%로, 전국 평균의 1.7배가 됐다. 이는 당뇨병 확산을 불렀다. 채소와 해조류, 덜 정제된 쌀을 먹던 1970년대 오키나와인 당뇨병 사망률은 전국 최저 47위였지만 지금은 일본 평균보다 높다.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모아이와 이키가이도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음식과 생활방식 변화는 젊은 세대에게 더 민감하게 작동한다. 오키나와인 80대 기대 여명(餘命)은 여전히 일본 최고 수준이지만, 50대, 60대, 70대들은 밑바닥으로 내려왔다. 오카니와 전체 평균수명을 깎아 먹은 요인이다. 오키나와 특유의 집단적 슬로 라이프는 패스트푸드, 고지방, 고당질 식사가 침투하면서 붕괴 일로다.
서정선 분당서울대병원 정밀의학센터 석좌교수는 “아시아인은 수십만 년 동안 곡류와 채소, 식이 섬유 위주로 식사를 해서 에너지 대사 유전자가 그에 맞게 발달해 왔는데 갑자기 동물성 지방질 서구식 식사를 하니 비만이 늘고 동맥경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수의학자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는 “오키나와 의사들을 만나면 ‘수많은 건강 100세 노인 보석들이 이제 화석이 됐다’고 말한다”며 “오키나와는 식이(食餌)와 생활 습관이 안 좋게 바뀌면 건강 수명이 급격하게 줄어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말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lfare-medical/2022/09/30/WBLL2OJTYFGH7IAJFWXX6AIVZ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