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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다. 왜 이 보물들이 거기에 묻혀있었으며, 왜 이제야 발굴이 됐으며, 누가 이것을 매몰해뒀을까 하는 궁금증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사를 살펴보면서 상당한 유물이라 생각되어 상당히 관심이 가고, 어떻게 복원될까, 어떤 부분까지 확인될까 등등 기대가 커졌다.

 

조선 시대 과학기술의 실체를 가늠할 자료가 밝혀진 것에 대해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전세계에서 이목을 집중할 것이고, 현재의 대한민국의 기술력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만방에 알렸으면 좋겠다. 이정도 되면 한 때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집트의 문명에 버금갈 정도로 신기한 발전된 놀라운 문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중국과는 궤를 같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고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일본 등 주변국에 큰 영향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게다가 문자를 생성한 자료니, 전세계에 유일한 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2106290902001 

 

훈민정음 시기 한글 금속활자 최초 발굴···기록만 나온 세종의 천문시계 등도

훈민정음 창제 시기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한글 금속활자 실물을 옛 한양 중심부에서 처음으로...

www.khan.co.kr

훈민정음 시기 한글 금속활자 최초 발굴···기록만 나온 세종의 천문시계 등도

김종목 기자

2021.06.29 09:02 입력

 

 

훈민정음 창제 시기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한글 금속활자 실물을 옛 한양 중심부에서 처음으로 찾았다. 세종 때(추정) 천문시계, 세종~중종 때(추정) 물시계 주전, 17세기 소형화기인 총통 등도 발굴했다. 한글 창제 여파와 당시 인쇄술, 조선 시대 과학기술의 실체를 가늠할 자료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이하 연구원)은 “조선 전기 제작된 다양한 크기의 한글·한자 금속활자 1600여 점과 자동 물시계 주전(籌箭)으로 보이는 동판(銅板)과 구슬방출기구, 세종이 만든 것으로 기록된 주·야간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 등을 출토했다”고 29일 발표했다.

한글 금속활자 세부. 문화재청 제공

 

한글 금속활자 발굴 의미는 ‘ㅭ’, ‘ㆆ’, ‘ㅸ’ 등 동국정운식 표기를 확인했다는 점이다. <동국정운(東國正韻)>은 세종 때 신숙주, 최항, 성삼문 등이 1448년에 간행한 운서(韻書)다. 중국 한자음을 표기하려 사용한 문자다. 한문 사이 자주 쓰는 ‘이며’, ‘이고’ 같은 한글 토씨를 한 번에 주조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나왔다. 연구원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를 반영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라고 했다. 연구원은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활자가 한 곳에서 출토된 첫 사례다. (물시계) 주전도 실체를 처음 확인해 의미가 크다”고 했다.

한글 금속활자(대자). 문화재청

 

 

1600여 점의 발굴 금속활자 중 한자는 1000여 점이다. 현존 최고(最古) 한자 금속활자인 세조 ‘을해자(1455년)’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한다. 장영실 등이 갑인자 제작에 참여했다. 연구원은 “추후 연구를 통해 ‘갑인자’로 확인되면, 조선 시대 각종 사료·기록과 일치하는 중요한 실물자료가 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시기(1450년경)보다 이른 시기의 조선활자 관련 유물은 인쇄본으로만 존재하는데, (확인되면) 최초로 인쇄본과 금속활자를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고 했다.

추정 갑인자 금속활자. 문화재청 제공

 

 

연구원은 기록으로만 알려진 주전의 실체도 확인했다고 했다. 동판과 구슬방출기의 동제품은 <세종실록>의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 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연구원은 이 주전이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에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했다.

자동 물시계 주전(籌箭)으로 보이는 동판(銅板)과 구슬방출기구. 문화재청 제공

 

일성정시의는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한 천문시계다. 별자리를 이용하여 시간을 가늠했다. <세종실록>은 1437년(세종 19년) 세종이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했다. 출토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주요 부품이다.

일성정시의. 문화재청 제공

 

 

연구원은 승자총통(1583년) 1점, 소승자총통(1588년) 7점 등 총 8점의 총통도 찾았다. 기본형 총통을 고의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승자총통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됐다. 발굴 총통 제작자로 기록된 장인 희손과 말동 중 희손은 보물 ‘차승자총통’ 명문에도 나온다.

총통. 문화재청 제공

 

연구원은 포탄을 엎어놓은 형태의 동종의 파편,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용뉴(용 모양 손잡이)도 발굴했다. 종신의 상단에는 1533년(중종 30년) 4월인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을 새겼다.

동종 파편(오른쪽)과 용뉴. 문화재청 제공

 

 

발굴 현장은 연구원이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 중인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사동 79번지) 중 ‘나 지역’이다. 지금 탑골 공원과 종로 YMCA 사이로 옛 한양 중심부다. 조선 전기까지 도성 내 경제문화중심지인 한성부 중부(中部) 견평방에 속한 지역이다.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義禁府)와 전의감(典醫監), 궁가인 순화궁(順和宮), 죽동궁(竹洞宮) 등이 있었다.

연구원은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의 문화층(2~7층)을 확인했다.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16세기 중심)에 해당된다”고 했다. 조선 전기 것으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같이 확인했다.

조사 지역 일원 위성사진. 문화재청 제공

출토 위치.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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