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 놓치면 더는 오지 않는 대기업-정규직 버스 대기업-정규직 12% 그들만의 리그 동일노동 동일임금 개혁 시작해야 전투적 대기업 노조 중심 견고 오히려 악화일로
정규직이 중요했던 건 아주 오래된 일이다.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도 충분히 일할 수 있었고, 실력도 인정받을 수 있었고, 나름의 경제 활동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수 있었던 것은 신의 가호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였다. 세상은 바뀌고 있지만, 살짝 비켜서서 그저 그렇게 살아낸 것만 해도 기적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경쟁 사회가 더 경쟁이 되어가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전체적으로 개선 또는 개악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젠 점점 더 대기업 취직이 어려워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구가 줄다보니, 옛날처럼 사람이 벅저꺼리는 분위기를 경험하기도 어렵다. 결국 더 많은 퇴지끔을 받고 싶어정년퇴직하려는 자와,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빨리 내보내고 싶어하는 회사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비정규직이 있는 것 뿐이다.
노동개혁이 왜 필요하고,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되어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과격한 시위를 위한 노조가 나서서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쇼를 준비하고, 경찰은 또 시위를 막기 위해 여기서 쇼를 하고 있는 것이겠다. 결론은 모두에게 그저 그런 세상을 보존하는 역할 뿐이라 생각한다. 누가 죽어나간들 바뀌는 것은 없을 수 있고,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는지도 궁금할 따름이다. 이미 때를 잘만난 대명사같은 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찬양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젠 예전같지 않는 상황이지만, 중요한 것은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그만큼 보상해주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는가 하는 우려다. 일한 사람에게 보상해주고, 일 못한 사람에게는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것으로 나름의 보상을 해주는 분위기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기회가 맞지 않으면 다시 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나 계약직이나 정규직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제대로 구별할 자신은 없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만족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강성노조를 보면 생각은 좀 달라진다. 무엇을 위한 조직인지 애매해진 건 오래됐다고 본다.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공격하는 것인지, 그러면서 누구의 이익을 위한 집단인지 뻔해보이는 건 필자가 꼰대라서 그런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공공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오늘과 내일/김재영]첫차 놓치면 더는 오지 않는 ‘대기업-정규직’ 버스
동아일보
업데이트 2023-06-13 12:52:52
김재영 논설위원
‘대기업-정규직’ 12% 그들만의 리그
‘동일노동 동일임금’ 개혁 시작해야
공부하라고 아이를 들들 볶던 ‘선배 부모’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식 성공시켜서 뭘 얼마나 덕을 보겠다고…. 속물처럼 느껴졌다. 내 아이가 자라고서야 알게 됐다. 성공하라고 닦달한 게 아니라 실패하면 어쩌나 겁나는 거다. 대기업·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안정된 직장에 올라타지 못했을 때 펼쳐질 미래가 선하니 새벽부터 깨울 수밖에 없다. 첫차를 놓치면 버스는 더는 오지 않는다.
첫차가 떠나면 기회가 없는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벽이 공고하기 때문이다. 보호받는 대기업·정규직 12%와 불안한 중소기업·비정규직 88%로 나뉘어 있다.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대기업(300인 이상) 정규직의 임금을 100이라고 하면 대기업 비정규직은 65.3, 중소기업(300인 미만) 정규직은 57.6,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3.7에 그친다.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승격할 수 있으면 그나마 괜찮지만 현실에선 바늘구멍이다. 2020년 중소기업에서 일했던 근로자 중 2.6%만이 이듬해 대기업으로 올라섰다.
정규직만 과보호하는 노동법과 대기업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이중구조의 벽을 갈수록 높고 두텁게 만들고 있다.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상승의 과실은 대기업 정규직에게만 돌아갔다. 한 번 정규직을 뽑으면 되돌릴 수 없기에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에 대한 웬만한 확신이 없으면 쉽사리 정규직을 채용하려 들지 않는다. 버스를 탄 사람은 안주하고, 버스를 놓친 사람은 절망한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 요인이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주요 7개국(G7) 평균의 62% 수준에 그친다.
지난달 말 여당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건 논의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규직 여부나 근속 기간 등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노동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내용이기도 하고, 야당도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당장 동일노동을 어떻게 규정할지부터가 쉽지 않다. 경영계는 인건비 상승을, 노동계는 임금 하향평준화를 우려할 수 있다. 정규직 보호 문턱을 낮추고, 연공성이 강한 임금체계를 성과와 직무에 따라 보상하는 방향으로 재편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하겠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꼬박꼬박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유지한다는 건 논리적 모순이다.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공정하고 유연한 방향으로 노동 개혁을 실행해 왔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 하르츠 개혁으로 유럽의 병자에서 벗어난 데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 등을 반영한 ‘노동 4.0’까지 단행했다. 프랑스는 2016년 노동시장 유연화를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개혁을 성공했다. 한국이 호봉제를 배워왔던 일본조차 직무급제를 확대하고 노동 유연화를 통해 성장산업으로 인력 이동을 유도하는 방향의 ‘새로운 자본주의 실행계획 개정안’을 이달 내놨다.
반면 한국은 역대 정부마다 말로만 노동개혁을 외쳤을 뿐 제대로 이뤄낸 것이 없다. 전투적 대기업 노조 중심의 ‘87년 노동체계’는 견고하다. 시위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도 백골단과 구사대, 망치와 죽창이 가사에 나오는 35년 전 버전 그대로다. 현 정부도 노동개혁의 깃발만 띄웠을 뿐 아직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노동계 모두 서로의 탓만 하며 시간을 보내선 안 된다. 첫차가 막차 되는 비극을 이젠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 결국 길은 열릴 것이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30612/119734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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