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는 조금 특이한 이미지의 여배우다. 수려하고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이 캐릭터라고나 할까... 서리소문 없이 조용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30살의 나이가 적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ㅎㅎㅎ 동안인 편이다.)
이야기가 좀 우습긴 하지만 일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 공상을 책으로, 만화로, 영화로 만드는 거 아닌가! 재밌게만 보면 일단 패쓰~
네이버에서 캡쳐해서 그냥 편집해봤다. 뭐,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지루하거나, 보고 나면 허무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감독이 좀 하니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홍보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점심식사 때 YTN 에서 배두나, 초대되서 어색하게 인터뷰하는 걸 보니까...
긍정적인 마인드가 얼굴로 나타나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내면에 어떤 고민이 있거나 어려움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부디 바램처럼 "윤여정" 할머니같이 곱게 늙어서 한국의 영화사, 연예계의 버팀목, 거목, 밟아도 쓰러지지 않는 잡초 같이(???) 계속 활동해주길 바란다.
[공기인형①] 배두나,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워내다”
-다카사키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어제 일본에서 돌아오셨다고 들었어요. 수상 소식이 계속 들리네요?
예. 어제 또 다섯 번째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공기인형>을 촬영할 때는 이렇게 많은 상을 받게 될 줄 정말 몰랐어요. 겸손한 척하는 게 아니라 제 연기가 상을 받을 만한 연기와는 거리가 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전 배우지만 제가 느끼는 것을 친절하게 풀어 표현하기보다 내색을 너무 안 해서 관객들이 상상하게 되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받는 감정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제가 좌지우지하고 싶진 않거든요. 가능하면 내 연기가 안 보이도록 누르면서, 그런 느낌으로 연기해서 수상은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이 영화가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받으면 참 뿌듯하겠다 싶었는데, 제게 상을 주시니 진짜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처음엔 기뻤지만 계속 받게 되니 거짓말 같고. 내가 그렇게 잘하지 않았는데, 왜 이럴까 이상하고. 사실 제가 연기를 잘한 게 아니에요. 전 이 영화를 위해 고용된 스태프나 다름없다고 여겼고, 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를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연기했거든요. 현장은 철저히 감독님 영역이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 감독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감독님이 하고 싶으신 바를 내가 잘 전달해야겠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무 큰 주목을 받게 돼 부담스럽네요. 일본에서 여우주연상 다섯 개를 탔다는 것만으로 감독님들이 제가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 줄 알게 되면 굉장히 곤란하잖아요.
-수상 이후 일본 감독의 캐스팅 제의가 많이 들어오진 않았나요?
그렇진 않아요. <공기인형> 끝나고 한 편 제안이 들어왔는데, 영화 제작이 무산됐다고 하더라고요.
-<공기인형>의 한국 개봉 소식을 듣고 놀라셨다면서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한국에서는 진짜 개봉을 안 할 줄 알았거든요.(웃음)
-개봉 안 하면 섭섭하지 않으셨을까요?
괜찮아요. 하하. 찍은 후의 문제는 제 손을 떠난 거니까. 꼭 개봉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 같은 건 없어요. 물론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당연히 좋겠죠. 그래서 열심히 홍보 활동도 하고 있고. 하지만 모든 일은 다 흐르는 대로 흘러가게 마련이잖아요. 제가 욕심을 내든 내지 않든.
-배두나 씨는 상황에 안달복달하거나 큰 욕심이나 야망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 편은 아니신가 봐요.
너무 아니죠. 너무.(웃음)
-일본 영화에 출연하는 건 야마시다 노부히로 감독의 <린다 린다 린다>(2006) 이후 두 번째예요. 야마시다 감독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 않았나요?
음. 다르죠.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제가 선호하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두 분이 비슷한 점도 있는데 고레에다 감독님이 좀 더 철학적이랄까. 그리고 확실히 더 디테일하세요. 야마시다 감독님은 촬영할 때 말씀을 아끼세요. 계속 지켜보다가 정말 자연스러울 때 촬영하시죠. 고레에다 감독님은 프리프로덕션을 하면서 이것저것 정말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자신이 이 신을 찍고 싶은 이유 같은 걸 이야기하시는데, 장면마다 영화에 대한 의도나 철학이 다 정확하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놀랐어요.
-<공기인형>에서 배두나 씨의 연기는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굉장히 섬세해요. 감독님과 언어적 차이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었을 듯한데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음…. 글쎄요. 모르겠어요. 제가 촬영장에서 감독님께 의지를 많이 하는 편이긴 한데, 꼬치꼬치 물어보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마음과 마음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전 고레에다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계속 눈치를 봤어요. 그 작업 자체가 섬세한 작업이었을 수도 있죠. 이 영화를 촬영하며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계속 비우려고 했어요. 어떤 상념이나 잡념도 없애려고 노력했죠. 그냥 나는 껍데기만 있는 인형이고 그 안에 마음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나를 비웠고 나머지는 감독님이 모두 채워 넣어주셨어요. 그러니 제가 어떤 섬세한 연기를 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 영화 거의 마지막, 쓰레기장에 누워 있는 신을 찍을 때는 정말 껍데기만 남은 듯했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와 자기 전까지 심장이 마구 떨리더라고요. 이제껏 영화를 찍으면서 그렇게까지 흔들리고 헷갈린 적은 없었어요. 그동안 진짜 대충대충 연기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비워서 그랬었나. 섬세하다는 말씀은 굉장한 과찬인 것 같아요. 섬세한 표현보다 오히려 표현을 안 하려고 조심했거든요. 항상 전 촬영하기 전에 대본을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주욱 보고 몰입한 다음 몰입한 티가 나지 않도록 20퍼센트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마음에 100퍼센트, 200퍼센트를 꽉꽉 채운 후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듯하겠다고. 그래서 좀 어려운 작업이긴 했어요. 차라리 내지르고 폭발하는 연기가 배우에겐 더 편할 수도 있는데 계속 감추려고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좀 창피한 말인데, 현장에서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기뻐서 눈물 나고, 슬퍼서 눈물 나고, 좋아서 눈물 나고.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면서 연기했어요.
-노조미는 인형이지만 마음이 생겨요. 선례 없는 캐릭터를 완전히 새로 창조해야 하는 그 과정이 많이 힘들고 괴로웠을 것 같아요.
많이 괴로웠어요. 하하. 근데 배우라면 다 해야 하니까. 사실 사람들은 제 노출에 초점을 맞추곤 하는데 그런 건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이 영화 후 드라마 <공부의 신>(KBS2)을 찍기 전까지 어떤 연기도 하기 싫을 정도였죠. 좀 무책임하고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진짜 싫었어요. 내가 정말 껍데기만 남은 것 같고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랄까.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큰 미련이 없는 편이라고 배두나 씨가 말하곤 했는데, <공기인형>에서는 쉽게 벗어나기가 힘드셨나 봐요.
작품이 끝나면 미련이 별로 없는데, <공기인형>은 후유증이 거의 6개월 넘게 지속됐어요. 정말 이런 영화는 처음이었죠. 지긋지긋하고 너덜너덜한 기분.(웃음) 이전에는 촬영이 끝나면 시원한 맛이 있었어요. 한 편 끝냈으니 이제 다음 작품 하자 생각했고. 하고 싶은 작품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한편으로는 몸이 근질근질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뭘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내 안에 곪아 있던 고름들이 모두 다 빠져나가기 전까지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뭐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감독님께 칭찬받고 스태프들에게 사랑받고 타이틀 롤 맡아 좋은 대접 받으면서 여배우로서 최고의 나날을 보냈는데 말이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현장이었는데 제가 너무 지나치게 몰입했던 거였어요. 배우라면 당연히 몰입해야지, 이런 걸 또 자랑처럼 말하고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그동안 전 솔직히 너무 우스웠어요. 근데 제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공기인형②] 배두나, “고집스러운 선택의 작업”
-촬영이 한겨울에 진행됐는데 얇은 의상 하나만 입고 춥지 않은 척 연기하기도 힘들지 않으셨나요?
일본은 정말 습하게 추워요. 뼛속까지 시린 추위였어요. 처음 의상을 피팅하러 갔는데 옷이 다 너무 얇고 짧더라고요.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와, 이걸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죠. 근데 배우가 하라면 해야죠.(웃음) 노조미는 전신 메이크업을 해야 했어요. 가발 쓰고 속눈썹 붙이고, 몸 옆에 인형의 봉합된 줄을 그리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거의 세 시간 메이크업을 해야 해서 아침 5시면 일어나 현장에 나갔어요. 그래도 이 작품, 이 캐릭터 때문에 하는 고생이니까 할 만하더라고요. 그리고 일단 제가 한국 영화 현장에서 좋은 선배님들과 작업을 많이 해서인지 몸에 습관이 잘 배어 있었던 것 같아요. 송강호 선배님 같은 분들께 주연 배우가 어떻게 해야 모든 스태프들이 흥이 나서 일할 수 있는지 많이 배웠으니까요. 제가 춥다고 힘들다고 하면 모두가 힘이 빠질 것 같아서 더 티를 안 내려고 했죠. 그리고 원래 누드 신도 리허설 때는 옷을 입고 하잖아요. 전 살빛에 조명 제대로 맞추고 스태프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실제처럼 누드 상태로 임했어요.
-현장에서 정말 최고의 배우셨네요.
정말 한국 배우들은 좋은 연기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우리 집에서 촬영하는 것이라면 엄마에게 엄살도 부리고 아빠에게 애교도 떨면서 연기할 수 있겠지만, 일단 집 밖에 나가서는 우리 집 이름을 드높여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고레에다 감독님도 베드 신이나 누드 신을 찍는 게 처음이셨어요. 촬영장에 갔는데 감독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너무 굳어 있더라고요. 오히려 전 <복수는 나의 것>(2002) 등을 통해 경험이 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배우에게 이런 것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듯 먼저 벗고 농담도 건넸어요.
-고레에다 감독이 배두나 씨를 존경한다고 말할 만하네요.
진짜요? 언제 그런 과찬을. 제가 오버한 거예요. 아마 우리 집이었으면 징징거렸을지도 몰라요. 사실 <청춘>(2000)에서 베드 신을 촬영했을 때만 해도 술도 못 먹는 주제에 소주 반병을 들이켜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연기했어요. 그 정도로 못 견뎌 했던 거죠. 제가 겉으로 날라리처럼 보이긴 해도 그렇진 않거든요. 배우로서의 책임감보다 남 앞에서 벗는다는 게 수치스럽고 여자로서의 갈등이 심했던 적이 있었어요. 근데 연기를 위해서 내가 못할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넘어가지더라고요.
-<공기인형>으로 배두나 씨가 배우로서 한층 성숙해진 느낌이에요.
에이, 그렇지도 않아요. <공부의 신> 보셨잖아요?(웃음) 똑같아요. 완급 조절을 하는 거죠. 어떤 작품에서는 편하게 놀고, 또 어떤 작품에서는 나 자신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찍고 그런 여유는 생긴 듯해요. 하지만 아직도 작품을 고르는 부분에 있어서는 여유가 없어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되게 엄격하게 골라요. 드라마는 좀 편하게 해도 영화는 ‘그냥 이 작품 하자’고 할 수가 없더라고요.
-영화와 드라마에 대해 다르게 기대하는 욕심이 있으시군요.
음… 솔직히 영화에 대한 허영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허황된 욕심이랄까. 흠집 하나 내고 싶지 않은 그런 결벽증.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공기인형> 같은 작품도 그냥 지나쳐 보낼 수 있었겠죠.
<공기인형>은 여배우로 살면서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였어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죠. 확실히 나를 그렇게 쏟아낼 수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아요. 어떤 작품에서든 자신을 쏟아 부으면 되지 왜 그렇게 작품을 가리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어려운 일이죠. 사실 저도 처음에는 노출이 좀 문제였지만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을 언제 또 하겠나 싶었고 안 하면 평생 미련이 남을 것 같더라고요.
-박찬욱 감독이 용기를 주셔서 <공기인형>에 출연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어떻게 이 작품을 시작하신 건가요?
박찬욱 감독님이 조언을 해주셔서 제가 무조건 출연 결심하게 됐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런 적은 있어요. 고레에다 감독님께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 마침 박찬욱 감독님을 뵀어요. “좀 야하다.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다” 했더니 박찬욱 감독님이 “고레에다 감독님 작품인데 무슨 역이든 해야지” 하셨어요. 저도 “역시 그렇죠?” 웃었거든요. 용기를 받긴 했지만 그 때문에 출연을 결정하진 않았어요. 다른 감독님들께도 조언을 구했고요. 제가 그래도 고집은 있어서 누가 뭐라 해도 이 작품에는 결국 출연했을 거예요. <공기인형> 이야기를 들은 건 <괴물>(2006) 촬영을 하고 나서였던가. 봉준호 감독님과 고레에다 감독님이 어느 영화제에서 만났는데, 고레에다 감독님이 “배두나를 놓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좀 야한 러브스토리다. 괜찮을까?” 물어보셨대요. 봉 감독님이 “그녀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레에다 감독님이 저를 만나러 오셨어요. 짧은 시놉시스와 원작 책을 주셨는데 보고 나니 정말 좋더라고요.
[공기인형③] 배두나, “난 정말 운 좋은 배우!”
-원작인 고다 요시에의 단편 만화 <공기소녀>는 어떻게 보셨어요?
원작은 멜로 쪽에 초점이 더 가 있어요. 영화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 더 많이 추가됐고요. 인간의 공허함, 텅 빈 느낌 등을 감독님이 추가하셨죠. 단편은 스무 페이지 정도였고 스토리 자체는 심플했어요. 공기인형이 어느 날 비디오가게 점원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비닐이 찢어지면서 공기가 빠지고. 모티프는 영화와 똑같은데 그 부분에서 감독님이 영감을 받으셨나 봐요. 공기인형의 찢어진 표면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공기를 불어넣는 그 장면을 찍고 싶으셨대요. 거기서 모든 게 출발했죠. 그 후 1년 넘게 대본을 쓰시고 캐스팅이 정해졌죠.
-고레에다 감독이 거의 9년간 준비한 작품인데 시나리오를 받은 첫 느낌은 어떠셨나요?
‘역시 고레에다 감독님이다!’ 싶었어요. 한국어로 번역된 시나리오를 주셨는데 한 편의 시 같았어요. 영화 자체가 시였죠.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뭔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진 않았지만 그림이 떠오르고 정말 좋았어요.
-배두나 씨가 쓴 <두나’s 서울놀이>(2008)를 보면 다양한 취미 생활이 있는데 피아노와 드로잉에 관심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공기인형>에서 노조미가 드로잉을 하던데 그건 평소 두나 씨의 모습이 반영된 설정 아닌가요?
아, 드로잉! 굉장히 예리하시네요. 맞아요. 드로잉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고 낙서나 만화 수준이죠. 프리프로덕션 중 한국 배우가 혼자 앉아서 뭘 하겠어요.(웃음) 제가 낙서를 좀 했는데 감독님이 재밌게 보셨나 봐요. 대본에 그날그날 촬영한 신을 만화처럼 그려놓기도 했는데 어느 날 보니 노조미가 그림을 그리는 설정이 추가돼 있더라고요. 아예 항상 들고 다니는 노트를 준비해 주시고 계속 그림을 그리라고 하셨죠. 감독님이 굉장히 존경스러운 게, 본인 의도를 절대로 망치지 않으면서도 즉흥적인 유연함이 있으시더라고요. 배우의 장점이나 재밌는 부분을 많이 반영하시고. 천재 같았어요. 사실 일본 촬영 현장은 미리 준비하고 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당황해 하는 부분이 있는데 고레에다 감독님은 새로운 것을 계속 추가하는 스타일이에요. 촬영장에서 단 한 번도 큰소리 지르지 않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의도대로 영화를 이끌고. 테이크도 보통 한두 번 정도밖에 안 가요. 처음에 너무 이상해서 진짜 오케이냐고 여쭤봤어요.(웃음)
-사실 <공기인형>은 자칫하면 일본 AV(성인 비디오) 느낌이 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어요. 감독 자체도 그런 부분을 경계한 듯하지만 실제로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더라고요.
소재가 파격적이긴 한데 그렇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어요. 내가 벗었을 때 야하지 않을 것이라는.(웃음) 그게 자신감인지, 열등감인지. 하하. 그리고 처음부처 이 영화는 야한 영화가 아니라고 감독님이 못을 박고 시작하셨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어요. 연기하며 몸을 사린다거나 야하게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고. 그냥 마음을 갖게 된 인형이 된 거예요. 제가 처음 등장하는 신 기억나세요? 노조미가 창가에 뒷모습으로 서 있는 풀샷 누드잖아요. 그때 창밖에 행인이 있었는데 제가 누드 상태인데 당황하지도 않고 연기하더라고요.(웃음) 반면 노조미가 사랑하는 비디오가게 점원이 노조미의 몸에 공기를 불어넣는 장면만큼은 좀 에로틱하고 관능적으로 찍고 싶었어요. 섹스 신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경험이잖아요. 남자의 호흡으로 여자의 몸이 꽉 채워지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이 몸 안에 채워지는 기분이란 건 사랑을 나눌 때보다 더한 기쁨일 것 같았죠.
-배두나 씨는 늘 배두나만의 독특한 느낌을 캐릭터에 불어넣으세요. 배두나가 보이는데도 그게 굉장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워서 신기해요.
어, 저는 연기할 때 체화를 가장 중요시해요. 어떤 캐릭터를 하든 내 몸을 빌려서 하는 것이니까 제가 안 보이긴 힘들 것 같아요. 겉으로 흉내만 내는 건 못해요. 그래서 제 모습이 자꾸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근데 내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게 좋은 연기인지, 그 반대가 나은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린다 린다 린다>에서는 캐릭터 자체가 대사가 많지 않았는데, <공기인형>에서는 내레이션까지 하셨어요.
일본어 공부도 좀 열심히 했죠.(웃음) 진짜 열심히 한 사람 축에는 못 들겠지만. 자기 전까지 매일 연습했어요. 스태프들에게 제 대사를 다 해보라고 부탁한 다음 느낌이 좋은 발음으로 계속 연습하고. 가끔 현장에서 일본어 대사가 틀리면 감독님, 스크립터, 녹음기사 세 분이 달려오셨어요. 그리고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가 아닌 이상 관객이 제 일본어 대사를 듣고 웃으면 낭패라고 생각해서 무조건 열심히 했죠. 원래는 제 대사가 그리 많지 않았어요. 내레이션도 배우마다 있었고요.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부끄럽게도 제 목소리로 내레이션이 나오더라고요. OST에도 들어가고 영광이었어요.(웃음)
-배두나 씨는 1999년 데뷔 이래 쉼 없이 꾸준히 활동하셨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많이 쉬고 있어요. 원래는 영화 한 편을 다 찍으면 개봉 전까지 다른 작품에 출연하면서 다작을 했는데. 2000년쯤이었나.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다작을 하면서 내 모든 것을 소모한 느낌이랄까. 배우로서의 경쟁력도 없는 것 같고 나 자신을 좀 더 아껴야겠다고 생각했죠. 가령 <린다 린다 린다> 전에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2003), <튜브>(2003) 같은 영화를 하면서 제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밑바닥까지 나를 소모시켜선 안 되겠구나, 좀 더 나를 채워야겠구나 하는 생각. 그러고 나니 더 편안해진 것 같아요. 드라마를 할 때는 좀 더 망가져도 보고 그냥 편하게 욕심 내지 않으려 해요. 생각해 보면 전 정말 운이 좋은 배우예요. 십수년 연기해도 대표작이 많지 않을 수 있는데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 스스로 대표작이 벌써 많다고 느끼거든요. <고양이를 부탁해>(2001), <복수는 나의 것> <공기인형> 등등. 분에 넘치는 감독님들을 만나 배우면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사실 삶의 고난이나 슬럼프도 잘 모르고 살았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 하얀 백지 상태가 되는 게 수월한 편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공기인형④] 배두나, “배우가 아닌 삶, 살아보고 싶다!”
-여배우에게 서른 살 이후는 고민의 시기가 될 수 있을 듯해요.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들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약간 열외인 것 같아요. 20대에도 제가 청순가련하거나 보편적인 캐릭터를 연기하진 않았잖아요. 제가 ‘꽃미모’도 아니고. 일반적인 여배우의 길을 걸어온 건 아니니까. 이제껏 연기한 제 캐릭터 중 정상적인 캐릭터가 거의 없잖아요.(웃음) <공기인형>도 서른한 살에 찍은 작품이고. 저는 여배우는 서른이 넘어야 멋있어진다고 생각해요. 역할의 한계는 있겠지만 연륜이 생기고 비로소 여자의 아름다움이 보이기도 하고. 제가 존경하는 많은 선배님들을 봐도 서른 이후 더 아름다워지셨던 것 같아요. 제 꿈은 윤여정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에요. 정말 너무너무 존경하는 저의 이상형이세요.
-배두나 씨도 이제 후배 여배우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만한 위치가 아닐까 싶은데 어떠세요?
저는 누군가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웃음) 관객에게 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만으로도 저는 버겁거든요. 요즘 일본에 가면 제 이미지가 작품성 있는 감독과만 일하는 배우라고 인식된 듯해요. 칸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외신 반응도 한국의 작가주의 감독과 고급스럽게 일하는 배우라는 식이었고. 그런 것 때문에 저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나 제 작품에 믿음을 가지실 분들이 있을 텐데, 전 그것조차 버거워요. 작품을 마음 편하게 고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그분들께 실망을 끼쳐드리고 싶진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지금까지 배두나가 들은 최고의 칭찬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독한 채찍질이 됐던 말은 없었나요?
일단 채찍질은 우리 엄마가 한 말이었어요. 얼마 전 우연히 제가 첫 연기를 했던 드라마 <학교>(1999)를 다시 보게 됐어요. 10년이 지나 보니 제가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 귀엽더라고요. 근데 엄마가 “그래 너, 처음부터 잘했어. 여전히 연기가 변함없이 똑같아서 그렇지” 하시는데. 우리 엄마가 정말 냉정하시거든요. 그냥 하는 빈말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서 제게 채찍이 되더라고요. 엄마가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의 마음을 알아서 칭찬을 많이 하시다가도 가끔 정말 쐐기 박히는 말씀을 하실 때가 있어요. 농담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죠. 음… 칭찬은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님이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배두나는 한국 영화계의 보물 같은 존재”라고 하셨는데(웃음) 정말 제가 들은 가장 감동적인 칭찬이었던 것 같아요.
-배우 김화영의 딸이라는 사실이 배우 배두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지금까지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죠. 전 그냥 엄마의 분신 같은 느낌이에요. 엄마가 저의 분신이고 제가 엄마의 분신이고, 친구이기도 하고 선생님이기도 해요. 배우로서는 만약 엄마가 없었다면 정말 다른 사람이 됐을 것 같아요. 연기를 하나도 모르던 시절, 제가 어떻게 엄마에게 손을 안 벌렸겠어요. 나가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고 혼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냉정하게 “연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죠. 대사 몇 줄 잘 읊는 게 연기가 아니라 역할이 작더라도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를 하라고. 그 말이 어릴 적 제 마음에 딱 박혀서 계속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스무 살에 <청춘>을 촬영할 때는 배우인데 왜 벗는 걸 두려워하냐고도 하셨고. 작품을 보는 눈이나 취향 같은 것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죠. 제가 고1 때 엄마가 임순례 감독님의 <세 친구>(1996)에 출연하셨어요. 극장에 가서 보고 영화의 새로운 장을 발견했죠. ‘아, 이런 영화도 있구나!’ 느낀 후부터 그런 영화들을 찾아보는 취향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차기작을 고르시는 데 굉장한 부담이 있으실 것 같아요.
<공기인형> 보니 딱 그럴 것 같으시죠? 사실 나름대로 제겐 드라마 <공부의 신>이 차기작이었어요. <공기인형> 후 정말 많이 고민했지만 ‘그래, 그냥 하자!’ 과감하게 했어요. 근데 영화는…. 지금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요. 엄마는 저더러 작품 고르는 게 진짜 재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하.
-기자간담회에서 ‘요즘 악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왜 제가 요즘 메이크업을 진하게 하겠어요. 제가 좀 지겹고 그래서 좀 못돼 보이고 싶어요.(웃음) 내 안에 있는 악마적인 근성도 끄집어내서 보여주고 싶고.
-배두나 씨에겐 다양한 취미 생활이 있으시잖아요. 사진 촬영, 베이킹, 꽃꽂이, 드로잉, 피아노 등.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타나기 전까지 뭘 하고 싶으세요?
요즘 따로 생각한 건 없어요. 드라마 촬영하고 화보 찍고 일본 왔다 갔다 하면서 좀 바빴으니까.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데 이제부터가 문제죠. <공기인형>까지 개봉하면 뭘 해야 할까. 집에 있으면 향초도 만들고 그래요.
-배두나란 배우가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되는 것은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런 역할을 안 하신 것도 아닌데 참 신기해요.
저도 상상이 안 돼요.(웃음) 음. 실제로 저는 매우 평범하기 때문에 배우가 아닐 때는 아기도 있었으면 좋겠고 평범한 엄마의 삶을 살고 싶기도 해요. 지나가다 아기들 보면 너무 귀엽거든요. 그렇지만 배우로 사는 것도 좋아요. 결혼해서 평범한 인생을 살다 보면 또 배우인 게 상상이 안 될 수도 있겠죠. 지금은 그냥 지금의 삶이 좋아요. 뭐 어떤 게 더 나은 삶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제가 데뷔 초에 인형 캐릭터를 연기할 거라고 어디 상상이나 해봤겠어요.(웃음) 늘 시간이 뭐든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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