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정치판이 좀 어수선하다. 그래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될 건지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
단 한쪽의 말만 들리는 건 좀 아쉬운 부분이라 이렇게라도 의견이 전해지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조국의 강’. 길이가 어찌나 긴지 항해술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발전한 이 시대에도 이 강을 제대로 건넌 이가 없을 정도다
[아무튼, 주말] 조국의 강에는 아마존강에 없는 ‘생명체’가 산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동저자
입력 2021.12.18 03:00
일러스트=유현호
“세계 3대 강이 뭐죠?”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질문에 답변이 달린다. “길이가 긴 강을 의미하는 거라면 아마존강, 나일강, 양쯔강입니다.” 내 학창 시절만 해도 미시시피강이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나무위키에서 미시시피강을 찾아보면 이렇게 돼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라고까지 알려져 있었으나, 나중에 나일강과 아마존강이 더 길다는 사실이 알려져 셋째로 긴 강이 되었고, 계속된 탐사에 의해 양쯔강이 더 긴 것이 밝혀져 넷째로 긴 강이 되었다.” 그랬다. 학자들은 강 길이가 제대로 측정됐는지 수시로 조사해, 억울한 강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이런 열정이 계속 유지된다면, 조만간 한국에서도 세계 3대 강에 드는 강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 강의 이름은 바로 ‘조국의 강’. 길이가 어찌나 긴지 항해술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발전한 이 시대에도 이 강을 제대로 건넌 이가 없을 정도다.
조국의 강은 조국이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된 2019년 8월 탄생했다. 원래 육지였던 곳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바닥을 파고 물을 뿌렸다. 이때만 해도 거의 실개천 급이었던 이 강이 세계 3대강 급으로 커진 데는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 길이가 고정되다시피한 다른 강들과 달리, 이 강은 현 정권 인사들의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 언행이 있을 때마다 길이가 늘어났으니 말이다.
가장 크게 기여하신 분은 물론 조국 전 장관이었다.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된 뒤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웅동학원 관련 비리 등 온갖 의혹이 쏟아져 나왔건만, 그는 끝끝내 자신이 결백하다고 우겼다. 그 의혹들 대부분이 법정에서 사실로 밝혀진 후에도 그는 하루 십수 개씩 올리는 소셜네트워크(SNS) 게시물을 통해 자신이 검찰개혁을 하려다 핍박받은 희생자인 양 굴었고, 지난 5월에는 자신이 억울하다는 징징거림으로 점철된 <조국의 시간>을 출간하기까지 했다. 이 강의 이름이 창시자인 문 대통령 대신 ‘조국의 강’이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나 몰라라 한 것은 아니다. 취임 때 천명했던 인사 5원칙은 물론, 60%가 넘는 반대 여론까지 외면해가며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한 데다, 그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마음의 빚’ 운운하며 조국을 감쌌으니까. 유시민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증거를 인멸하려 컴퓨터를 빼돌린 정경심 전 교수의 행위를 ‘증거 보존’이라는 희대의 궤변으로 옹호했다. 이 밖에 입시 비리의 핵심인 조민을 ‘뉴스공장’에 출연시키는 등 시종일관 조국 편에 섰던 김어준, <조국백서>라는 책을 통해 “조국 같은 초엘리트는 그 정도 해도 된다”고 주장한 최민희 전 의원, 서초동에서 조국수호집회를 열었던 분들 등등도 조국의 강을 세계적인 강으로 키우는 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
현 정권에서 조국의 강을 건너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1년 4월 열린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자 장경태 의원을 비롯한 초선 5인방은 다음과 같은 반성문을 썼다. “조국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되며 오히려 검찰 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반성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민주당 권리당원들은 이들을 ‘초선 5적’ ‘배신자’ 등으로 부르며 규탄했고, 친문들은 이들에게 1인당 5000통이 넘는 문자 폭탄을 퍼부었는데, 이에 놀란 5인방이 슬그머니 반성을 철회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6월 2일 조국 사태와 관련해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고 했다가 ‘자진 사퇴’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이 밖에도 ‘언행불일치’라며 조국을 비판했던 금태섭 전 의원은 당에서 쫓겨났고, 조국의 강을 건너자고 수시로 말해온 조응천 의원은 대놓고 ‘사쿠라’로 불리고 있다. 그러니까 현실을 직시한 이들이 조국의 강을 건너려 할 때마다 피라냐들이 떼로 몰려와 훼방을 놓는 것이 여권의 현 상황인 셈이다.
그런 여권에서 요즘 강을 건너려 열심인 이가 있으니, 바로 이재명 후보다. 평생을 특권과 싸워왔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 조국에 대해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였을 것 같지만, 그는 친문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게 두려워 언급 자체를 회피해 왔다. 오히려 그는 검찰의 조국 수사를 마녀사냥이라 비판해 온 데다,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된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받은 2020년 7월에는 유튜브에 나와 자신이 조국처럼 비정상적 검찰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 전 장관이 당한 일, 요즘 하는 일에 대해 제가 동병상련이다. 지금 소송하고 그러는데…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덕분에 그는 친문들의 지지를 받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선과 달리 대선은 전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이기는 게임. 이제 그는 아마존강에 필적할 만큼 커진 조국의 강을 건너려 한다. 예컨대 12월 2일,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국 사태는 여전히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또 비판받는 문제의 근원 중 하나… 공정성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기대를 훼손한 점은 변명의 여지 없는 잘못이다.” 급하긴 급했나보다는 생각도 들지만, 민주당 유력 인사가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한 건 그 자체로 평가할 만하다. 희한한 건 친문들의 침묵. 지난 4월 초선 5인방의 사과를 무력으로 굴복시킨 그들이 이 후보의 훨씬 더 센 사과에 긍정 평가를 내리는 모습은 그저 역겹다.
사과하긴 했지만, 이 후보의 앞길은 험난하다. 앞으로 있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상대 측은 이 후보에게 조국 사태에 대한 입장을 집요하게 캐물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조국의 강에는 아마존강이나 나일강에는 없는 희귀 생명체가 산다. 다름 아닌 추미애 전 장관. 오늘의 윤석열 후보를 만든 어둠의 선대위원장인 그녀는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자 어김없이 등판해 다음과 같은 말을 쏟아낸다. “조국의 강은 바닥까지 긁어내고 다 파내도 표창장 한 장 남았다.” “조국과 그 가족에 가한 서슴없는 공포는 언급하지 않고 사과를 말합니다. 참 무섭습니다. 조국에 대한 사과는 인간 존엄을 짓밟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제목에 쓴 질문에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못 건넙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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