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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손수호] 유관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교육자 집안서 성장 서울로 유학 음력 3월 1일 천안서 만세 운동 왜놈에게 굴복 안해 최고 형량 받기도 유관순 열사 서훈 3등급 격상 논의?

시사窓/정치

by dobioi 2021. 12. 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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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있다. 두려워하는 눈빛이기도 하고, 숭고한 뜻의 눈빛이기도 하고, 뭔가를 이뤄내려는 강직함이 숨어있기도 해서 묘하다.

 

사진으로 시간이 멈춰진듯하고, 박제된 것 같기도 해서, 당시의 아픔과 슬픔과 억울함이 담겨있는 것 같다.

 

겨우 영화로, 책으로, 이야기로 전해듣기만 한 사건이 당시에는 엄청난 고통이었고, 대단한 난리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후대에 그를 추앙하는 건 이미 무의미하다. 당시에 나라가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고, 일본은 미친 본색을 드러내고, 못할 짓을 하고 말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일본을 짓밟아도 무의미하다. 그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향해 달려갈 뿐이겠다. 유관순이 그랬던 것처럼 옳고 바른 길로 달려가야 할 것이겠다.

 

현재의 정치인들을 보게 되면 이런 숭고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상황이 이렇게 만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가 심판하고, 평가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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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손수호] "유관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교육자 집안서 성장..서울로 유학

www.nocutnews.co.kr

[탐정 손수호] "유관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2019-02-21 10:19

교육자 집안서 성장..서울로 유학
음력 3월 1일, 천안서 만세 운동
'왜놈에게 굴복 안해' 최고 형량 받기도
유관순 열사 서훈 3등급...격상 논의?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변호사)

탐정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탐정 손수호. 우리 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이죠. 탐정 손수호. 오늘도 손수호 변호사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손수호> 안녕하세요.

◇ 김현정> 오늘이 며칠이죠, 손 변호님?

◆ 손수호> 21일이네요.

◇ 김현정> 2월 21일. 다음 주 목요일이 북미 정상 회담이 있는 날이에요, 벌써. 그래서 다음 주 목요일 탐정 여러분 쉽니다. 그러고 나면 바로 3.1절이네요, 금요일. 그래서 오늘 3.1절 특집을 미리 당겨서 우리가 탐정에서 해 보려고 하는 거죠.

 


◆ 손수호> 그렇습니다. 오늘 3.1절 특집 분위기인데요. 유관순 이야기하겠습니다.

 


◇ 김현정> 유관순 열사. 최근에 영화가 하나 또 개봉된다 그래서 화제죠. 고아성 씨가 유관순으로 분한 그 영화.

 


◆ 손수호> 그동안 유관순을 다룬 영화가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예전에도. 그런데 최근에 한동안 뜸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 생활할 때의 활동을 주로 그린 영화가 곧 개봉될 예정입니다.

◇ 김현정>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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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호>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저도 그렇고.

◇ 김현정> 초등학생도 유관순 하면 누구나 다 알죠.

 


◆ 손수호> 교과서에도 나오고 노래도 있고 그러니까. 하지만 사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유관순 열사에 대한 논란들도 있어요.

 


◇ 김현정> 논란도 있어요?

 


◆ 손수호> 그 논란이 무엇인지, 진실이 어떠한지까지도 오늘 좀 알아보고 싶은데. 시작하기 전에 퀴즈를 좀 내도 되겠습니까?

 


◇ 김현정> 오늘도 퀴즈로 시작해요. 뭡니까?

◆ 손수호> 한번 맞혀주세요. 하나만 맞혀도 됩니다.

 


◇ 김현정> 같이 풀어요, 여러분.

 


◆ 손수호> 유관순 열사가 3.1 운동을 준비하고 시행하고 그리고 사망할 때 몇 살이었나?

 


◇ 김현정> 아니, 학생이었던 건 우리가 아니까. 어린 학생. 열여섯, 일곱 그 정도 나이 아니었어요?

◆ 손수호> 짐작이죠?

◇ 김현정> 그 정도인 걸로 기억하는데.

◆ 손수호> 알겠습니다. 두 번째, 어디에 살고 있었나.

◇ 김현정> 어디 사는, 그 당시 어디 살았나? 아우내장터에서 만세 운동했으니까 거기 아니에요, 거기. 천안, 병천 그쪽.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 손수호> 그러면 이거는 좀 어려워요. 부모님은 뭐 하던 분이었나?

◇ 김현정> 유관순 열사 부모님이 뭐 하던 분이었나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 손수호> 한번 오늘 들어보시죠. 유관순 열사는요.

◇ 김현정> 이게 끝입니까, 퀴즈는?

◆ 손수호> 한번 들어보세요.

◇ 김현정> 그러고 보니까 정확히 아는 게 없어요, 제가.

 


◆ 손수호> 답이 오늘 내용에 들어 있습니다. 1902년생인데요. 충남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가 고향입니다. 지금 지명으로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예요.

◇ 김현정> 아, 그러면 병천 맞네요.

◆ 손수호> 맞습니다. 정답입니다. 천안에 지금 유관순체육관도 있죠.

 

◇ 김현정> 그래요.

◆ 손수호> 3남 2녀 중에 차녀였는데요. 부친 유중권. 역시 고향에 학교를 세우고 교육 운동에 헌신한 계몽 운동가였어요.

 


◇ 김현정> 아버님이 교육자셨군요.

◆ 손수호> 또 오빠 유우석 역시 독립 운동가인데요. 공주에서 만세 운동을 펼쳤고요. 또 유관순 열사, 동생이 사망 후에도 활발하게 항일 투쟁을 벌여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 김현정> 집안이 그러니까 갑자기 이런, 이런 훌륭한 분들이 튀어나오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의 가르침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저도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계몽 운동가, 교육자. 어린 시절은 어땠습니까?

◆ 손수호> 안타깝게도 자세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영명학당에 다니다가 14세인 1916년 미국인 선교사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편입합니다.

 


◇ 김현정> 아, 천안에서 학교 다니다가 선교사가 서울로 유학 시켜준 거군요.

◆ 손수호> 14살 때입니다.

◇ 김현정> 14살 때.

◆ 손수호> 그리고 졸업한 다음... 그런데요. 그때 이 학교, 이화학당에서 학교를 다 다니고 졸업한 다음에 그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기로 하고 학비를 면제받았어요. 그걸 교비생이라고 하죠.

◇ 김현정> 장학생같이. 그러다가 3.1 만세 운동은 어떻게... 아니, 지금 서울 이화학당이면 지금 서울 이화여고에 다녔다는 얘기인데 천안에 있는 아우내장터에서 만세 운동한 거잖아요. 어떻게 된 건가요?

 


◆ 손수호> 당시 1919년이죠. 만 17세입니다. 이때 3.1 운동이 일어났는데 고종 황제가 승하하고 장례를 치르던 날이었어요. 나라 잃은 울분이 전국에 팽배한 그런 상황이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파고다공원에 모여서, 서울의. 파고다공원에 모여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때 서울에 있던 유관순 열사도 참여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서울에 있었던 최초 운동이 지방에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어요. 당연히 일제가 막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하나. 이때는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기 전이었거든요. 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되기도 전입니다. 따라서 대한 독립 만세가 아니라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을 텐데 서울에서 있었던 최초의 3.1 운동이 결국 일제의 탄압을 받았고요. 결국 3월 10일에 휴교령까지 내려졌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일단 유관순 열사가 처음 참여한 만세 운동은 아우내장터가 아니라 서울이었고.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서울에서 만세 운동이 막 들불처럼 번져나가니까 휴교령을 내렸죠, 일제가. 그러자 고향으로.

◆ 손수호> 고향인 천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요. 여기에서 고향 천안에서 새로운 만세 운동을 기획한 거죠.

◇ 김현정> 그렇군요.

 


◆ 손수호> 당시 이화학당을 같이 다니던 사촌 언니가 있었습니다. 유예도. 이 사촌 언니와 함께 교회, 학교, 유림 대표 이런 사람들을 다 만나서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만세 운동을 준비했어요. 그리고 음력 3월 1일 정오에 아우내장터에 수천 명이 모여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 만세를 외치게 됐죠.

◇ 김현정> 그러니까 정확히는 음력 3월 1일이에요? 양력이 아니군요.

◆ 손수호> 서울에서 있었던 3.1 운동은 양력 3월 1일이고요.

◇ 김현정> 그렇군요, 그렇군요. 그렇게 되는 거군요. 그러면 아우내장터. 아우내는 정확히 어디 있는 거예요?

◆ 손수호> 아우내가 이게 천안 병천면에 있는 장터인데요.

◇ 김현정> 병천 하면 순대 그 병천 순대.

◆ 손수호> 맞아요.

◇ 김현정> 거기구나.

◆ 손수호> 이걸 순우리말로 바꾸면 아우내가 됩니다. 이게 2개의 천, 내를 아우른다는 의미예요.

◇ 김현정> 그런 뜻인 거군요.

◆ 손수호> 아우내입니다.

◇ 김현정> 아우내, 아우른다.

◆ 손수호> 그렇게 조금 전에 날짜 얘기 나왔잖아요. 이걸 또 한번 정리해 보면 서울 파고다공원 만세 운동이 양력 3월 1일이었고요. 그리고 천안 아우내장터의 만세 운동은 음력 3월 1일이었어요.

◇ 김현정> 간격이 얼마나 돼요?

◆ 손수호> 한 달이요.

◇ 김현정> 한 달 정도.

 


◆ 손수호> 왜냐하면 천안 만세 운동이 음력 3월 1일이고요. 양력으로 4월 1일입니다. 그러니까 한 달 차이가 났던 거죠.

◇ 김현정> 그렇군요. 아우내장터의 만세 운동. 그다음은 어떻게 됐는가 저는 궁금해요. 우리가 항상 아는 건 그 아우내장터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던 유관순 열사의 장면. 그것까지만 딱 아는데 그 후를 모르겠어요.

◆ 손수호> 그렇죠. 이게 비폭력 운동이고 비폭력 행동이었지만 일제의 순사들이 해산 요구했고 불응하자 발포했습니다. 사망자가 발생했고요. 하지만 군중이 더 늘었어요. 그러자 헌병까지 투입돼서 계속해서 발포했는데 안타깝게도 유관순 열사의 부모 포함해서 20여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 김현정> 아까 그 교육 운동하시던 그 아버님, 어머님 다 거기서 돌아가셨어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시위에 참석했던 진명학교 교사 김구웅도 있었는데요. 이 교사도 총에 맞아 숨졌어요. 그런데 그 비보를 듣고 달려온 모친이 아들의 시신을 안고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헌병들이 그 노모마저 창과 칼로 찔러서 죽였어요.

◇ 김현정> 잔인하네요, 진짜.

 


◆ 손수호> 이 운동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유관순 열사는 체포돼서 공주교도소에 수감되는데요.

◇ 김현정> 처음에 그러니까 공주교도소군요, 공주교도소. 거기서 고문도 받았다 전해지는데 이건 확인이 됩니까?

◆ 손수호> 당시 사진을 보면 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졌을 때 그때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보면 눈과 볼 부분이 심하게 부어올라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을 기반으로 표준 영정, 공식적인 초상화를 만들었는데 이화학당 동창들이 그걸 보고 너무 다르다.

◇ 김현정> 너무 다르다.

◆ 손수호> 평소 얼굴과 너무 다르다. 알아보기 힘들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예요.

◇ 김현정> 부풀어올라서.

◆ 손수호> 실제로는 갸름한 편이었는데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퉁퉁 부어올라서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사실 지금 제가 질문을 드렸지만 당시 수감된 독립 운동가들이 다 고문받았다는 건 뭐 당연한 사실, 기정 사실이죠. 상식이죠.

 


◆ 손수호> 그렇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더라도 그런 내용들이 굉장히 많이 전해지고 있어요. 그리고 재판, 결국 재판도 받았잖아요. 재판도 이상했어요. 공주지방법원에서 재판 열렸는데 처음에 검사가 징역 5년형을 구형하고요. 3년 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재판장이 이렇게 물었던 거예요. 다시는 독립 운동하지 않고 대일본제국 신민으로 살아가게 될 것을 맹세하는가? 그러자...

◇ 김현정> 여기서 만약 예스 했으면 살 수도 있었던 거예요.

◆ 손수호> 일단 3년 형이 선고되는 거고 그후에 여러 가지 그런 가석방 등도 있었겠죠.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언젠나 왜놈들은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고 반드시 망하게 될 거다. 그러면서 말만 한 것도 아니에요. 재판장에게 의자를 던졌습니다.

◇ 김현정>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법원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무시무시한 일제 강점기에 그 일본 판사 앞에 서 있는 건데 의자를 던지면서 뭐라고 했다고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겠다. 너는 천벌을 받고 반드시 망할 거다라는 이야기를 18살 소녀가.

◆ 손수호>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징역이 갑자기 7년으로 늘었어요.

유관순 열사의 수형카드 (사진=문화재청 제공)


◇ 김현정> 3년이 7년으로...

◆ 손수호> 당시 법에 따르면 여성에게는 최고 징역 7년까지만 선고 가능했거든요.

◇ 김현정> 그러면 최고 형량이 내려진 거네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게 당연히 말도 안 되고 잘못된 판결이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다시 3년으로 줄어들었고요. 형무소에 있으면서, 서대문형무소에 있으면서 옥중에서도 수시로 아리랑도 부르고 간수들에게 대한 독립의 당위성을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 김현정> 여러분, 여러분의 18살 때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판사 앞에서 의자 집어던지면서 나는 왜놈들한테 굴복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한 유관순 열사인데 감옥에 가서도 독립 운동.

 


◆ 손수호> 그래서 3.1 운동 1주년이 1920년 3월 1일인데요. 이때 옥중에서 기념식을 치르고 옥중 만세 운동까지도 펼칩니다. 수감자들까지 호응해서 소리가 밖으로까지 퍼지고 결국은 인파가 몰려들어가지고 전차 통행 마비되고 기마대가 출동하기까지 했는데 결국은 그 길로 다시 추가적인 고초를 겪게 되는 거죠.

◇ 김현정> 그런데 아까 7년 형이 내려졌다고 하는데 유관순 열사 옥중에서 돌아가신 거 아니요.

◆ 손수호> 맞아요. 7년 형이 다시 3년 형으로 바뀌기는 했는데요. 1920년 영친왕 결혼 기념 특사령이 있었어요. 그래서 형기가 1년 6개월로 단축됐습니다. 하지만 석방 예정일을 이틀 앞둔 1920년 9월 28일 옥중에서 순국하고 마는데요. 당시에 지인들이 시신 인도 요구했지만 처음에는 거부했고요.

◇ 김현정> 그러니까 일단은 옥중에서 숨진 이후는 모진 고문을 못 이기고 몸이 쇠약해져서 숨졌다. 이렇게 공식 발표는 난 거죠.

◆ 손수호>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타살설도 있어요.

◇ 김현정> 타살설이 있어요?

◆ 손수호> 면회를 가서 보니까 고문 후유증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병색이 완연했다. 이런 이야기 전해지고요. 특히 간수들의 어떤 폭행. 발길질로 인해서 방광이 파열됐기 때문이었는데요. 특히 신장, 방광이 파열됐기 때문에 맞잡은 손을 보니까 이게 자국이 눌린 채로 안 회복됐다는 거예요. 회복이 안 됐다는 거예요.

◇ 김현정> 세상에.

◆ 손수호> 부어있었고.

◇ 김현정> 세상에.

◆ 손수호> 또 손가락으로 눌러서 만져보니까 살이 썩어서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결국 고문 끝에 옥사한 거니까 타살이라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은 상황인데 그런데 그런 수준을 넘어서, 그런 수준을 넘어서 석방 앞두고 헌병들에게 살해됐다.

◇ 김현정> 그게 그러니까 타살설인 거잖아요, 지금.

 


◆ 손수호> 심지어 신체를 여러 부분으로 토막내서 살해했다.

◇ 김현정> 훼손설까지 있는 거예요.

◆ 손수호> 그런데 사실 그건 뚜렷한 근거는 없어요. 그리고 사망한 후에 훼손했다는 주장도 있었고. 또 김삼웅 독립기념관장도 그런 주장했지만 아직까지 증거로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 김현정> 이렇든 저렇든. 그러니까 이게 타살이든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죽음이든 다 타살이에요. 따지고 보면 일제에 의한 타살인데. 장례 후에는 어디에 묻혔습니까?

◆ 손수호>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는데요. 그 후에 일본이 군용 기지로 사용하면서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됐죠. 그런데 이장할 때 아무런 통보 없이 무덤을 파헤치는 바람에 유골이 사라졌어요.

◇ 김현정> 세상에.

◆ 손수호> 그게 실수냐 고의냐. 여기에 대한 논란도 있죠.

◇ 김현정> 그럼 유관순 열사 기념 사업회에서 만든 묘에는 그럼 시신이 없는 거예요.

◆ 손수호> 초혼 묘를 만들기는 했는데요. 여기 석관이 있습니다. 이 석관 안에 시신은 들어 있지 않은 거죠.

◇ 김현정> 세상에. 진짜 마음이 너무 아픈데 그렇게 짧은 생을 마친 유관순 열사. 그런데 아까 유관순 열사를 둘러싼 논란도 한번 우리가 팩트 체크해 보자고 그랬잖아요. 어떤 논란이 있는 겁니까?

◆ 손수호> 첫 번째 과장됐나.

◇ 김현정> 업적이 과장되지 않았느냐는 논란.

 


◆ 손수호> 3.1 운동 후에 해방까지 26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해방 후에 이화학당이 나서서 업적을 찾아내고 기념 사업회를 구성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친일 논란이 있었던 이화학당이 유관순이라는 독립 운동가를 방패막이로 내세운 거 아니냐 이런 의혹을 받기도 했죠.

◇ 김현정> 아니, 그런데 방패막이든 뭐든 독립 운동하다가 순국한 건 이건 팩트잖아요, 사실이잖아요.

◆ 손수호> 그렇죠. 하지만 3.1 운동 당시에 목숨 잃은 사람이 7500명입니다. 그리고 이때 체포된 사람은 4만 명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옥중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가 특별히 그중에서 부각될 이유가 없다. 이거 일부러 만들어낸 영웅 아니냐. 이런 의혹을 누군가는 제기하는 거죠. 게다가 최초로 유관순 전기를 쓴 것으로 알려진 전영택. 이 전영택도 친일 인명 사전에 등재된 친일 행위자래요. 그래서 뭔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거죠.

◇ 김현정> 그런데 유관순 열사의 생애를 쭉 들었잖아요, 우리가. 7500명 중에 1명이었든 뭐든 이거는 당연히 대단한 일을 한 독립 운동가임에 분명하고.

◆ 손수호> 당연하죠.

◇ 김현정> 유관순 열사 같은 일을 한 분이 여럿 있다면 왜 그들을 못 찾았는가를 우리가 탓해야지. 유관순 열사를 왜 이렇게 띄우느냐를 탓하는 거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특히 제야 사학자 임명순 씨가 그런 부분을 자세히 반박했는데요. 처음 유관순 열사의 이런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거는 조카 유제한 씨가 대한민국 최초의 국어 교과서를 만든 박창해 씨에게 제보하면서부터였다는 거예요, 처음 알려진 게. 그래서 이화학당이나 전영택이 자신들의 친일 논란을 덮기 위해서 무리하게 영웅으로 만든 게 아니라는 얘기죠. 다만 이 유관순 열사라는 영웅이 뒤늦게 알려지게 되고. 그리고 여기에 편승해서 본인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 여부는 또 별개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

◇ 김현정> 그래요, 그래요. 그러면 이제는 과장됐는가 논란은 일단락은 된 거예요?

 


◆ 손수호> 사실 과장됐다 아니다가 핵심이 아닐 수도 있어요.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만 보면 되거든요. 되게 간단하거든요. 독립 운동을 했죠. 옥중에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저항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순국한 거고요. 이런 사실만 봐도 유관순 열사는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하고 또한 후대가 본받아야 할 인물임은 당연한 거죠.

◇ 김현정>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두 번째 논란은 뭐예요?

◆ 손수호> 서훈 등급 논란.

◇ 김현정> 아,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이거는 얼마 전에도 이슈가 됐었어요.

◆ 손수호> 맞아요. 우리나라 유관순 열사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서훈 등급, 서훈 제도에 대한 얘기가 되는 건데요. 국가에서 훈장도 주고요. 그리고 또 포장도 줍니다. 그리고 표창도 할 수 있고요. 그런데 유관순 열사에게는 건국 훈장이 추서됐어요. 이건 상훈법에 따르면요.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순장인데요. 이런 건국 훈장은 총 5개 등급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유관순 열사에게는 그중에서도 세 번째 등급. 3등급인 독립장이 추서됐어요.

◇ 김현정> 수여가 됐어요.

◆ 손수호> 추서가 됐는데.

◇ 김현정> 김구, 안창호, 안중근. 이런 애국지사들한테는 1등급 수여했잖아요.

◆ 손수호> 네, 대한민국장. 그리고 신채호, 신돌석을 비롯한 92명의 애국지사에게는 2등급인 대통령장이 수여됐고요.

◇ 김현정> 그런데 왜 유관순 열사는 3등급이냐 이거죠.

◆ 손수호> 823명이 함께 받은 그런 3등급인 독립장인데요. 친일 행위가 인정돼서 나중에 서훈이 박탈된 동아일보 창업자 김성수. 처음에 2등급에 추서됐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 손수호> 이런 것에 비교하면...

◇ 김현정> 너무 낮은 거 같은데 .

◆ 손수호> 유관순 열사의 등급이 낮은 거 아닌가. 이런 논란이 있었던 것이죠.

◇ 김현정> 알겠습니다. 지금 이건 계속 올려야 된다는 주장들, 운동들이 진행 중인 거죠.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아직은 조정은 없는 거고.

◆ 손수호> 충남 지역에서 서명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하고 있고요. 또 정치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등급 격상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요. 하지만 이게 진짜 문제는 62년도에 3등급 결정할 때 어떤 근거로, 어떤 절차를 거쳐서 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얘기가 지금 나오고 있거든요. 게다가 가짜 독립 유공자 얘기가 자주 나오는 상황에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상향 조정뿐만 아니라 아예 전체 내역을 좀 조사해서 정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 김현정> 이번 기회에...

 


◆ 손수호> 그런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 김현정> 유관순 열사와 관련된 논란 세 번째도 있습니까?

◆ 손수호> 역사 부정 논란.

◇ 김현정> 역사 부정이요? 그거는 또 뭡니까?

◆ 손수호> 어이없는 일이지만 친일 반민 족 행위자들이 지금도 존재하고 또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맞아요.

◆ 손수호> 대표적인 사람이 김완섭.

◇ 김현정> 김완섭?

◆ 손수호> 그대로 한번 발언을 소개해 드릴게요.

◇ 김현정> 그러세요.

◆ 손수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해외 여행 겸 쾌락의 즐거움을 준 일본에게 감사해야 한다.

◇ 김현정> 누구예요, 이 사람? 해외 여행 갔다 왔다고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 손수호> 망언이죠.

◇ 김현정> 쾌락의 즐거움을 느끼고 왔다고요?

◆ 손수호> 망언입니다. 아주 그냥 극한 망언이죠.

◇ 김현정> 이게 한국 사람이 한 말이에요?

◆ 손수호> 최고 수준의 망언인데. 그뿐 아니고요.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불렀고 김좌진 장군을 산적대 두목이라구조 비판하고 비하하고 비난했어요.

◇ 김현정> 유관순 열사한테 뭐라고 했는데요.

◆ 손수호> 폭력 시위를 주도한 여자 깡패다.

◇ 김현정> 여자 깡패다?

◆ 손수호> 네. 특히 3.1 운동을 종교 폭동이라고 하는 둥 여러 망언들을 했는데요. 그러자 사자 명예 훼손, 모욕죄 등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사자 명예 훼손죄는 유죄가 인정돼서 벌금형 받았고요. 하지만 모욕죄는 무죄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게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우리 형법에 사자 명예 훼손죄는 있어도 사자 모욕죄는 없어요.

◇ 김현정> 그래요?

 


◆ 손수호> 그래서 무죄가 나온 건데 이거는 내가 정당하다라고 하는 주장을 여전히 펴고 있고요. 또 그뿐 아니라 5.18 망언의 지만원 씨. 역시 김구 선생을 가리켜서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사람이다. 실력은 모자라면서 사사건건 이승만 대통령을 시기 질투한 사람이다라고 말을 했죠.

◇ 김현정> 누구냐고 자꾸 질문들을 많이 하시는데.

◆ 손수호> 홍보해 주기 싫어요, 그런데.

◇ 김현정> 인터넷 논객으로. 63년생 인터넷 논객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공무원이나 이런 거 아니고요.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네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최근에 5.18 망언 사태 겪으면서요. 역사 부정 처벌법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잖아요. 이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끝까지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죠. 반드시 해야 됩니다. 얻어내야 됩니다. 그런데 그전에 우리 사회 내부, 우리 국가 내부에서 이런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부터 처리해야 되지 않을까.

◇ 김현정> 3.1 운동 100주년의 해입니다. 여러 가지 행사들도 있고 우리가 기념합니다만 이런 것 하나하나 알아가고 바로잡고 하는 게 그 시작 아닐까,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탐정 손수호 조사 잘해 오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 손수호> 감사합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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