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만에 복직 김진숙 저 오늘부터 막 살거예요 [한판승부] 사람 취급 못 받던 지난 시간들 파노라마처럼 스쳐가 지난 과거 나에게 묻고 노동 존중받는 세상 돠길 먼저 간 동지들 제일 많이 생..
안타까운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걸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반 국민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살다보니, 곤란하게 엮이면 힘들어진다는 교훈을 받게 되고,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그나마 말이라도 한마디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어 손해만 본 것 같은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인사라 할 수 있다. 그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아보인다. 어떻게든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고, 가해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된다.
그저 피하거나, 가까이 가지 않거나, 미리미리 피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다 알고 있다. 그래도 걸려들면 헤어나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스스로는 어렵다. 누군가, 또는 어딘가 외부에서 지지를 해주지 않으면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37년만의 복직도 해결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일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과 같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장난처럼 전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다.
'37년 만에 복직' 김진숙 "저 오늘부터 막 살거예요" [한판승부]
CBS 한판승부 2022-02-26 09:00
■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사람 취급 못 받던 지난 시간들 파노라마처럼 스쳐가
지난 과거는 나에게 묻고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으로 가길
먼저 간 동지들 제일 많이 생각나
나의 복직은 시대의 복직, 이제 시작이다
소금꽃나무 김진숙이 문재인에게 전하는 말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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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박재홍> 대한민국 최장기라고 하죠.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소금꽃나무 김진숙 씨가 오늘 복직했습니다. 해고된 지 37년 만의 일인데요. 지난 2011년에는 309일 동안 크레인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인 뒤에도 동료들은 모두 공장으로 돌아갔지만 회사의 반대 때문에 김진숙 씨만은 복직을 하지 못한 바 있죠. 그런데 지난 23일 HJ중공업과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명예복직과 퇴직에 합의하는 서명식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복직행사가 있었는데요.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봅니다. 위원님 안녕하세요.
◆ 김진숙> 안녕하세요.
◇ 박재홍> 꿈에 그리던 복직입니다. 그토록 외치고 싶었던 "저 복직했어요"라는 말씀 저희 청취자들에게도 해 주시겠습니까?
◆ 김진숙> 저 김진숙, 오늘 37년 만에 복직했습니다.
◇ 박재홍> 너무 축하드립니다.
◆ 김진숙> 고맙습니다.
◇ 박재홍> 복직 소식 처음 들으시고 어떤 마음 드셨어요?
◆ 김진숙> 처음에는 실감도 안 나고 꿈같고 이랬는데 막상 오늘 이제 행사를 해 보니까 비로소 내가 공장에 37년 만에 들어가서 일했던 공장들도 돌아보고 그리고 행사를 끝내고 나니까 비로소 실감이 나네요.
연합뉴스
◇ 박재홍> 사실 37년이라는 숫자가 정말로 저희가 상상할 수 없는 기간 아니겠습니까?
◆ 김진숙> 그렇죠.
◇ 박재홍> 강산이 3번이나 변하는 동안 회사 이름도 대한조선공사에서 그리고 한진중공업 그리고 HJ중공업으로 3번이나 사명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오랜 세월 우리 위원님 어떻게 지내오신 겁니까?
◆ 김진숙> 해고자의 삶이라는 게 사실 보통의 정상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빼앗긴 삶들이니까 여러 가지로 결핍된 채로 살기는 했지만 그중에서도 하여튼 제일 꿈에도 그렸던 게 복직이고 그 희망들을 37년을 포기하지 않고 지니고 있었던 게 오늘 결실을 맺어서 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이루어냈다는 게 고맙고 감격스럽죠.
◇ 박재홍> 오늘 행사 무대에서 말씀하시면서 많이 우셨잖아요. 왜 그렇게 많이 우셨어요?
◆ 김진숙> 그냥 복받치는 게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때 해고됐을 당시에 두드려 맞고 끌려가고 하여튼 많이 맞았거든요, 그때는. 사람 취급 못 당하고 나타나기만 하면 때리는 게 일이었으니까. 그때는 내일은 안 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그걸 1년을 계속했었거든요, 그때 당시 출근 투쟁을. 그런 생각들도 많이 나고. 그 세월들이 정말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고요. 그런 순간들이 너무 아프기도 하고 왜 이렇게까지 한 인간이 고통을 오랜 세월을 고통을 받아야 했나 하는 생각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 박재홍> 예전에 일했던 곳을 보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을지 궁금해요. 이제 과거에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똥 싸는 곳에서 밥 먹고 일하고 너무 열악했다, 이런 말씀해 주셨잖아요. 지금은 어떤가요, 노동 현장이?
◆ 김진숙> 많이 달라지기는 했어요. 제일 눈에 띄었던 게 사람이 없는. 그러니까 그동안 한진중공업이 수주를 안 받았거든요. 의도적으로 수주를 안 받기도 했고 공장을 어쨌든 폐쇄를 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래서 비어 있는 야드들, 작업장들을 보니까 마음이 아프기도 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변화된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화장실도 생기고 어쨌든 식당도 생기고 그리고 작업하는 현장들도 예전보다는 훨씬 정리된 게 깔끔하게 보이고 그런 정리된 현장들이 단순히 어떤 사측의 개선의 노력들보다는 노동조합이 이제 민주화되면서 안전에 대한 것들, 워낙 조선소에는 다치거나 죽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리고 그런 것들을 일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 알잖아요. 어떤 게 위험하고 어떻게 하면 덜 다칠 수 있는 것들을 현장에서 제일 잘 아니까 그런 것들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들이 생긴 거예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바꿔낼 수 있는 힘들이 있었던 거고. 그렇게 깔끔해진 현장들이 눈에 많이 띄더라고요.
◇ 박재홍> 37년 전 우리 김진숙 위원님께서 뿌렸던 한 알의 밀알이 하나씩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될까요?
◆ 김진숙> 제 노력이었다기보다는 하여튼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노력했고 그리고 그걸 또 바꿔낼 수 있는 힘인 노동조합이 있었고 그런 결실들로 보는 거죠.
◇ 박재홍> 아닙니다. 오늘만큼은 김진숙 위원님의 그 눈물, 땀, 피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김진숙> 고맙습니다.
◇ 박재홍> 오늘 푸른 작업복 그리고 안전모를 쓰시고 행사에 참석하셨어요. 그런데 말씀하실 때 옛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미래로 가십시오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의미였을까요?
◆ 김진숙> 한진중공업 시절이 현장이 열악했던 것보다도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들이 너무 심했거든요. 그걸로 인해서 또 죽은 사람들이 많고 구속됐던 동지들이 너무 많았었으니까 그런 과거를 저한테 묻어두고 정말 여러분들은 활기차고 노동이 존중받는 그런 세상으로 가주십사 하는 바람이고 희망이고 당부였습니다.
연합뉴스
◇ 박재홍> 저는 무엇보다 가장 가슴 울렸던 것은 첫 노조이자 생애 마지막 노조인 금속노조, 한진조합원의 동지였다는 게 가장 빛나는 명예고 사랑이었다는 말씀이었는데 어떻게 이 37년의 세월을 한 길만 오롯이 가실 수 있었을까요?
◆ 김진숙> 그 일을 같이 했다는 그런 경험들도 있지만 그때 어떤 끈끈한 동료애 이런 것들도 있었지만 워낙에 한진중공업들이 큰 역사적 고비들, 투쟁들을 많이 겪어왔잖아요. 그러니까 열사 투쟁만 해도 몇 번을 했던 노조들이고 노조고. 그리고 또 2011년도에 정리해고 투쟁을 크레인 위에서 309일을 했었을 때 그 투쟁을 지켜주고 제 목숨을 지켜줬던 게 우리 조합원들이고 희망버스였고 시민사회단체였기 때문에 그런 힘들로 지켜왔다.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가장 벅찼죠.
◇ 박재홍> 먼저 세상을 떠났던 동료들 그러니까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 열사 이분들에 대한 기억도 다시 새롭게 좀 오늘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떠셨습니까?
◆ 김진숙> 그분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박창수 위원장도 작업장을 입은 채 끌려가서 감옥에 갇히고 그리고 결국은 죽고 아직까지도 의문사로 남아 있고 김주익도 크레인 위에서 못 내려온 채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맸던 그런 분들도 너무 현장에 돌아오고 싶어 했고 조합원들을 만나고 싶어 했고. 그 최강서 같은 경우도 사실은 복직하기로 합의해 놓고 그 약속을 또 회사가 안 지켰기 때문에 목을 맸던 거거든요. 얼마나 복직이 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꿈들과 열망들을 제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너무 아팠습니다.
◇ 박재홍> 그 동지들의 꿈과 열망을 담아서 마침내 우리 김진숙 위원님의 37년의 긴 싸움을 오늘로 마무리하신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다라는 말씀드리고 싶고 이제 앞으로의 삶 어떻게 사실 것인지 또 여쭤보고 싶네요.
◆ 김진숙> 복직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저는 이제부터 26일부터 막 살겠습니다, 이런 글을 제가 트위터에 올렸었는데.
◇ 박재홍> 막 살고 싶다.
◆ 김진숙> 정말 정상인의 삶을 살고 싶은. 그런데 너무 또 오랜 세월을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아서 그게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여러 사람들이 막 사는 데 도와주겠다고 그러더라고요.
◇ 박재홍> 막 사시면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세요, 위원님?
◆ 김진숙> 사실은 여행도 다니고 싶고 이런저런 꿈들이 있는데 이제는 또 몸이 또 여의치를 않아서.
◇ 박재홍> 그렇죠.
◆ 김진숙> 하여튼 우선은 건강을 회복하는 데 시간들을 써야 될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재작년에는 청와대까지 가는 도보 행진하실 때도 암 투병 중인 상태였잖아요. 지금은 건강 괜찮으세요?
◆ 김진숙> 재발하고 작년에만 해도 수술을 큰 수술을 여러 차례 해서 아직도 성치는 않기는 한데 회복해야죠.
◇ 박재홍> 이제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누리시는 그러한 막 사는 삶 정말 누리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 아시는 것처럼 대선 투표가 얼마 안 남았지 않습니까? 여야 대선주자들 요즘 노동 관련 공약들 내놓고 있지만 빈곤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 김진숙 위원의 복직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될까요?
◆ 김진숙> 이게 저 한 사람의 복직의 의미보다는 너무 많은 해고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저를 보시기보다는 그분들의 현재 삶들 그리고 회복되지 못한 명예들, 그런 것들도 눈여겨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여튼 옛날 70~80년대 해고됐던 동일방직이나 청계피복이나 YH나 그리고 부산의 수많은 신발공장 노동자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노동조원들도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명예라도 회복할 수 있는 길들을 모색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시대의 복직이라고 얘기했던 것들의 시작이었으면 좋겠어요.
◇ 박재홍> 시대의 복직 너무나 뭐랄까요. 가슴이 떨리는 말이기도 한데요. 남은 자들의 역할이 굉장히 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 재작년 12월에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도 하셨지 않습니까?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에서 함께 활동을 했던 옛날 동료이기도 하죠, 노동운동을 함께하셨던. 이제 임기를 마치는 문 대통령에게 어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김진숙> 아쉽죠. 그리고 최소한 약속하셨던 정규직화 약속만이라도 지키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최소한 그건 하시지 않겠냐는 기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선되시고 나서 취임하시자마자 인천공항에 달려가시고 비정규직들에게 그 약속을 하셨을 때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 뉴스를 들었던, 소식을 들었던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망을 걸고 눈물을 흘리고 자신들의 달라진 미래를 꿈꿨겠습니까? 그런데 그 노동자들이 아직도 싸우고 있고 사법 처리를 당한 노동자들도 많고 그래서 하여튼 문재인 대통령께서 모르겠습니다. 임기 얼마 안 남기는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라도 최소한 어떤 사죄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재홍> 다음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저희가 스튜디오에서 한번 뵀으면 좋겠습니다.
◆ 김진숙> 고맙습니다.
◇ 박재홍> 말씀 감사합니다.
◆ 김진숙> 고맙습니다.
◇ 박재홍> 해고된 지 37년 만에 복직하신 분이죠. 한진중공업의 해고 노동자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봤습니다. 사정상 사전녹음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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