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 운동경력 없던 文, 운동권 이념 과잉 최악 정권 됐다 그 땐 심장이 北에 가 있었다 北, 南에 전술핵 실제 쏠 수도 北,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로 생각하고 하대 文정부에 거의 관심 없었..
정치권이 움직이는 거 보면 정상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왜냐하면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뭔가 덮고 가려는 쪽과, 어떻게든 묻어가려는 쪽이 있는 것 같다.
문재인은 어떤 위치에 있나? 윤석열도 어떤 위치에 있나? 이걸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게 풀리는 것 같아보이는 정치다.
세상이 바뀐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략의 변화일 수도 있고, 유권자들이 바뀐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권이 어렵고, 혼탁스럽다 생각한다. 누굴 찍어야 할지 고민스러워하는 것은 유권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근래에 보면 운동권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 더 운동권스러워요. 그게 제일 문제죠.
민경우 “운동경력 없던 文, 운동권 이념 과잉... 최악 정권 됐다”
[월간조선] [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민경우 대안연대 대표
“그 땐 심장이 北에 가 있었다
北, 南에 전술핵 실제 쏠 수도”
배진영 기자 ironheel@chosun.com월간조선
입력 2022.05.22 11:26
민경우 대안연대(구 미래대안행동) 상임대표./월간조선
민경우 대안연대(구 미래대안행동) 상임대표는 1995년 중후반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해마다 8월이 되면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사람이었다. 2020년 이후 조국 사태, 윤미향 파문, 라임사태, LH공사, 코로나 방역(防疫) 실패, 탈(脫)원전, 대장동 의혹 등 문재인 정권의 비정(秕政)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곳에 미대행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민 대표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과 연결되는 문재인 정권의 평화철도사업이나 차이나타운 조성 사업에 반대하고 미국 중심의 반중(反中)동맹인 쿼드가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신영복 글씨체로 되어 있는 국정원 원훈석(院訓石) 철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시위를 벌였다.
6·25 참전용사인 윌리엄 웨버 대령이 타계한 직후인 4월 27일 민 경우 대표는 인터넷 매체 ‘넥스테이지’에 ‘UN day를 회고하며’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북핵, 미중 대치,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서 한국은 자유와 개방의 가치 아래 여러 우방국과 연대해야 하는 중차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 “그러하다면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건립과 한국전쟁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했던 UN을 되살리는 것은 80~90년대 민주화 시기 우리가 잃어 버렸던 자유의 가치를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안보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전통적 우파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것이 민경우 대표 인터뷰를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사실 기자는 민경우 대표가 작년 10월 펴낸 《86세대 민주주의》를 읽은 이후 줄곧 언젠가 그를 인터뷰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오고 있었다.
- 국정원 원훈석 교체, 유엔 데이 복원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 같습니다.
“원래 1990년대 중반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 2008년쯤에는 생각이 거의 바뀌었고, 2012년에는 운동 현장을 떠났어요. 사상과 역사관은 그렇게 바뀌었지만 조국‧윤미향 사태가 없었으면, 적극적인 활동을 하려고 나서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조국‧윤미향 사태는 일종의 도덕적 충격 같은 것이었습니다.”
-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하면서 범민련 북측본부가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산하 기구였다는 것을 몰랐습니까.
”처음 1~2년 정도는 범민련 북측본부를 남한의 전대협이나 한총련처럼 실체(實體)가 있는 조직으로 착각했어요. 그러다가 조금 더 범민련에 대해 알게 되고 북한 측과 문서교환을 하고 그러면서 통전부의 한 부서라는 것을 깨닫고 ‘아차’ 싶었습니다.”
- 이명박(李明博) 정권 때까지 운동 현장에 있었는데, 광우병(狂牛病) 사태는 범(汎)운동권의 기획이었습니까, 우발적인 것이었습니까.
“기획이 일부 있었고 그게 군중심리에 의해 대중에게 확산된 것이라고 봅니다. 기획에 의한 부분이 30%, 아주머니나 여고생들을 중심으로 확 커져 버린 게 70%정도…. 운동을 추진했던 사람들이 엄격한 자기검열을 하고 도덕성을 가지고 컨트롤 해 줘야 하는데 그걸 안 했어요.”
◇“586운동은 1970~80년대 이슬람권의 復古的·反動的 민족주의와 유사”
- 1980년대 586운동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그게 진짜 민주화운동이었다고 봅니까, 아니면 민주화의 외피(外皮)를 쓴 사회주의 내지 북한식 공산주의 운동이었다고 봅니까.
”민주화운동의 바탕에는 민주화에 대한 학생들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586들의 운동은 결국은 복고적(復古的)인 운동이었다고 봅니다.”
-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강철 김영환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지만,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1960~70년대 이슬람권의 복고적 민족주의와 유사한 것 같아요. 도시화‧자본주의화된 1980년대 중후반의 상황에서 직선제 개헌 이후 얼마든지 현대적인 민주주의를 향해 나갈 수 있었는데, 반동적(反動的) 민족주의로 나간 거죠. 김구(金九)를 내세우기도 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주의 북한과 연결되었고요.”
- 문재인 정권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국 역사상 최악(最惡)의 정권이죠.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권은 부정적인 면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소명(召命)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文在寅)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갖고 있던 부정적인 맹아(萌芽)들을 극대화(極大化)해서 그것의 위험성과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봅니다.”
-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예를 들어서 탈(脫)원전 같은 건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임대차 3법, 검경(檢警)수사권 조정 같은 것도 그렇고. 보기에 따라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관계에서도 친중화(親中化) 측면은 위험한 일이죠.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강한 이념성을 갖고 있는데, 제가 볼 때는 유사(類似) 주사파 같아요. 주사파의 뿌리에는 농업공동체나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 나오는 원시(原始)상태 같은 것을 높이 평가하는 사고(思考)가 자리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권은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현실에서 밀어붙였던 것 같아요.”
- 왜 그랬을까요.
“저는 문재인 전 대통령 개인의 캐릭터도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고 봐요. 이렇다 할 운동경력이 없는데, 어떤 시기에 운동권 이념을 과잉 투사(投射)한 경우죠. 근래에 보면 운동권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 더 운동권스러워요. 그게 제일 문제죠.”
- 과거 주사파 운동권, 범민련 출신으로서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노무현‧문재인 정권의 대북(對北)유화정책을 어떻게 봅니까.
“이 경우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평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은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閱兵式)을 하면서 ‘국가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할 경우’ 핵무력(核武力)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전술핵(戰術核)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건데, 이런 상황을 막지 못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의 대북화해정책은 근본적으로 틀린 정책입니다.”
◇ “北,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로 생각하고 下待…文정부에 거의 관심 없었을 것”
- 북한이 정말 전술핵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굉장히 오랜 기간 북한과 뭔가를 같이 했던 감각으로 보건대,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전술핵을 사용하겠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전술핵이 서울이나 인천에 떨어진다면, 이건 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죠.”
- 주사파는 북한이 한창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을 때에 ‘북한은 핵개발을 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주장했잖아요
“그게, 하, 정말, 이를테면…. 그때는 심장이 어디 있었나 하면 북한에 가 있었어요. 어떤 생각을 할 때에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한 거죠. 2000년대 초 이후 주사파는 ‘북한이 핵을 가지기는 하겠지만 같은 민족인 남한에게 쓸 마음은 없다’고 주장해 왔지만, 그건 선전선동용으로 하는 소리였습니다. 웃기는 얘기죠. 북한은 올해 들어서 남한을 향해 전술핵을 쓰겠다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는데, 주사파는 이를 모른 척하고 있어요.”
- 어느 사이엔가 대북(對北)정책‧통일정책은 좌파의 전유물(專有物)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보수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할까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이 느슨해지면 북한이 언제라도 남한을 향해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 강화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북한에게 문을 닫을 필요 필요는 없겠지요. 한미동맹이 공고하면 다른 일들은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 문재인 정권은 임기 내내 종전(終戰)선언에 매달렸는데, 범민련을 했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이 종전선언에 관심이 있었다고 봅니까.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을 걸로 봅니다. 제가 과거 북한과 접촉했을 때 느낀 것인데, 북한은 남한을 하대(下待)합니다.”
- 하대요?
“북한에게는 자기들은 승전국, 혁명세력이고,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굉장히 뿌리 깊은 인식이 있어요. 거기서 남쪽 사람들을 하대하고, ‘너희는 우리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풍토가 나옵니다.”
- 우크라이나사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우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몰리는 것을 보면서 군대까지도 자유주의 세계의 시스템이 우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하나는 우크라이나사태로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30년간 유지되어 온 세계질서가 변화하게 됐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그 변화는 우리에게 긍정적일까요, 부정적일까요.
“저는 우크라이나사태로 인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더욱 견고해지고 확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유라시아 대륙에서 중국‧러시아‧북한의 입지는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게는 긍정적인 일이죠.”
- 4‧19의 역사적 의의(意義)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었지만, 5‧18에 대해서는 여전히 뜨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민 대표는 약간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어떤 맥락에서 그렇다는 거죠.”
- 이를테면 5‧18 가짜 유공자 시비 같은 걸 두고 ‘그들만의 리그’ 아니냐는 시각이 있죠.
“저는 5‧18도 4‧19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좌우 모두 민주화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공적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기념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너무 과도하게 5‧18을 기념하거나 유공자들을 예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오히려 5‧18의 정신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년 말 한 달 사이에 노태우(盧泰愚)‧전두환 전 대통령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만감이 교차했어요. 저는 젊은 시절 전체를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전두환‧노태우 구속’을 외치면서 보냈어요. 1997년에 저는 두 사람과 같은 감옥에 같이 있었어요. 두 사람이 사면(赦免)을 받아 출소(出所)할 때 저는 샤우팅(shouting)을 했어요.
저는 두 사람 모두 공과(功過)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이 사실 그런 거죠. 5‧18은 그들의 과(過)이지만 전두환 정권의 고도성장, 노태우 정권의 사회복지 및 시스템의 정비, 남북관계 정비 등은 공(功)입니다. 그들의 공적도 올바로 재평가되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을 한 방향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경우 대표는 지난 4월 5일 국정원 앞에서 정광민 전 10·16 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왼쪽)과 신영복 글씨체 원훈석 철거 요구 시위를 벌였다./월간조선
조국 사태 이후인 2020년 2월 창립된 미래대안행동은 초기에는 주로 옵티머스, 라임 사모펀드 비리 등에 대해 비판해 왔다. 이후 페미니즘과 탈원전, 코로나 방역 등과 같은 정책 실패, 윤미향과 정의연 문제 같은 좌파진영의 내로남불 행태, 세무사 시험 논란 등 불공정‧부패 문제, 그리고 중국의 팽창과 내정 간섭적 행태, 쿼드 가입 문제와 같은 외교안보문제 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 4월 7일 미래대안행동은 운영위원회를 열어 명칭을 대안연대로 바꾸고 조직 체계를 개편했다. 공동대표를 맡았던 오세라비 작가와 김봉수 성신여대 교수는 공동대표직을 내려놓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대신 미래대안행동의 주요 사업인 ‘세금기생충박멸단’ 단장으로 활동해 온 서민 단국대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민경우 대표는 계속 상임대표직를 맡기로 했다.
- 미대행의 명칭을 대안연대로 바꾸고 조직 체계를 개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대행은 조국 사태에 대한 도덕적 분노에서 출발, 정권교체를 중심으로 모인 단체였습니다. 저는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양심적이고 시민적인 이해관계를 올곧게 대변하는 시민단체,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하고 일관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정권교체 후에 새 출발을 하자고 제안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이름과 체계를 개편하게 된 것입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6월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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