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암담하면서도, 민족의 명맥이 끊겨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고 살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광복이 있었고, 대한독립이 이뤄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최근 일본의 경기침체로 1인당 GDP도 우리나라보다 떨어졌다고 하니, 통쾌한 일이 아닌가 생각되면서도, 더 잘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어나서 잠시 여유롭게 지내다가 오전 9시가 되어서야 국기를 게양했다. 너무 늦었나보다. 그래서 구글링을 좀 해봤더니, 국기를 매일 게양하는 경우라면 7시에 게양한다고 한다.
* 국기를 다는 시간
국기는 매일·24시간 달 수 있으나 야간에는 적절한 조명을 해야 한다.
학교나 군부대는 낮에만 단다.
* 국기를 매일 게양·강하하는 경우
- 다는 시각 : 오전 7시
- 내리는 시각 : 3월 ~ 10월까지는 오후 6시, 11월 ~ 2월까지는 오후 5시
국기가 심한 눈·비와 바람 등으로 그 훼손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달지 않는다.
(출처:행정안전부)
국기 게양완료 모습이다. 마침 바람이 아래로 불길래 손으로 살짝 잡아서 촬영을 해봤고, 마침 반대로 잡았길래 좌우를 뒤집어보았다.
건곤감리가 제대로 보이게끔 해보았다.
국기보관함(?)에 둥글게 말려서 있어서 빼서 한번 찍어보았다.
국기 계양 모습이다. 맞은편에는 태극기가 보이지 않는다. 뒷쪽이기 때문일 거다. 고개를 살짝 내보니 간간이 태극기가 보인다. 바람이 몹시 불어서 그냥 둬도 되나 싶은 마음이 생겼다.
대한독립만세라도 한번 외치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자세한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행안부 홈페이지에는 정부차원에서 적어둔 내용이라 다소 딱딱한 느낌이 있고, 규정집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동영상이나 홍보물도 보이는 것 같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제강점기 상황이 너무 가슴아프고, 지금까지도 민족을 두 동강, 세 동강 내기에 부족함 없이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민족을 하나로 합치고,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오히려 선진국에서 퇴락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나갈 것인가,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이미 선각자들이 우려하고 걱정하면서 준비한 것이 제대로 펼쳐졌으면 좋겠다. 작지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그렇게 흘러온 것이 대한민국이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온 민족이, 앞으로도 더 나은 방향을 어렵사리 찾아서 힘차게 나갈 것을 기대해본다.
광복절
光復節
National Liberation Day of Korea
1945.8.15
1945년 8월 15일
2022년 제77주년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그날이 오면>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천국에서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동포에게 고함> 중
광복절(光復節, National Liberation Day)은 영예롭게 회복한(光復) 날(節)이란 뜻으로 1945년 8월 15일 수요일(음력은 7월 8일)에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8.15 광복을 맞아 한반도가 일제에게서 해방되어 주권을 되찾은 일을 기념하는 해방 및 정부수립 기념일이자 대한민국의 법정 공휴일이다.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국경일로 지정되었으며, 3·1절, 제헌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대한민국 5대 국경일이다.
(출처:나무위키)
대한독립만세
大韓獨立萬歲
일제강점기때 사용된 한국의 독립운동 구호이자 표어.
3.1 운동 당시 사용된 구호로 유명하다. 사실 3·1운동 당시에는 '조선독립만세'가 더 많이 쓰였다. 얼마 지속되지 못한 대한제국보다는 오백 년 동안 지속된 조선이라는 이름이 한민족에게 더 익숙했고, 일제가 한반도를 지칭해 부르는 공식적인 지방명 또한 '조선'이었으며, 3·1 독립선언의 결과 수립될 새로운 나라의 이름 또한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독립만세'가 안 쓰인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조선독립만세'에 비해서 덜 쓰였을 뿐. 당장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1920년대 신문기사만 검색해도 ‘대한독립만세’를 고창(高唱: 소리높여 부름)했다거나 크게 써서 붙여 처벌되었다는 기사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이는 3·1운동을 기점으로 한국 독립운동의 목표는 옛 조선왕조의 부활이 아닌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건국으로 빠르게 패러다임이 전환되었으며, 특히 3·1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공식적인 표어로 채택하여 대내외에 선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임시정부 산하의 한인애국단, 한국광복군 등 단체들은 모두 '대한독립만세'를 표어로 사용하게 된다. 물론 임시정부의 강령이나 지휘체계를 따르지 않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인정하지 않는 다른 독립운동 단체들은 '조선독립만세'를 계속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대한(조선)독립만세'는 대표적인 불온표어였기 때문에 신문지상에서는 몇 글자가 검열 때문에 지워져 '○'와 같은 기호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한○○만세’, ‘대○독립만세’처럼.
(출처:나무위키)
행안부 국가상징에 대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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