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진이 곰·사자냐 탁현민 억지에 침묵하는 예술인 비겁하다 [노정태가 고발한다] 일본 창경궁 동물원 사쿠라 야간 개장행사 윤석열 정부 임기 내내 청와대 용산 사이에서 엄한 짓들
이전 정부의 대통령 의전비서관의 말이다. 아마도 미친 것이 아닌가 싶고, 뭔가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아마도 윤석열정부에서 일했다면 더 미친 소리를 싸잡아 문재인정부를 욕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터진 입으로 마구 쏟아내는 소리가 과연 의미가 있겠으며, 국민들이 이해해 줄 것인지 의문이다.
말은 또 두리뭉술하게, 의뭉스럽게 잘 한다. 그래서 욕을 하는 건지, 잘한다고 하는 건지,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이리 저리 말을 돌리기 바쁘다. 내가 아니면 다 욕을 먹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주절 거리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바로잡고 정리하고픈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정치적인 사건에만 관심을 갖고 정권 내내 싸웠던 문재인 정권에게 그 욕설, 분노를 뱉는 것이 옳다고 본다.
새로운 정부에 뭐라고 해봐야, 이미 상황은 바뀌었는데, 천지도 분간못하고 과거의 영화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방을 던지며 즐겁게 퇴근했던 분이 이렇게 나서서 주절거려봐야 그리 좋은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된다. 반성은 없고 비판만 있는 이들이 받을 것은 사법처리 아닐까?
한혜진이 곰·사자냐...탁현민 억지에 침묵하는 예술인, 비겁하다 [노정태가 고발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30 00:01수정 2022.08.30 04:21
문재인 청와대에서 의전비서관을 지낸 탁현민씨가 청와대를 배경으로 한 보그의 패션 화보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반일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도 있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고 사쿠라를 심고, 벚꽃 가지를 흔들며 야간 개장행사를 했듯이 아마도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내 청와대와 용산 사이에서 엄한 짓들을 하게 될 것이다. "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올렸다. 그가 이 글을 쓴 이유가 있었다. 같은 날, 패션지 보그 코리아가 청와대에서 촬영한 화보를 공개했는데, 이게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화보 촬영은 문화재청의 청와대 국민개방추진단과 보그 코리아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담는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한복을 탐구하는 기획 차원에서 이런 상징성을 가진 장소인 청와대를 배경으로 골랐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기획을 놓친 다른 패션지들이라면 배가 아플 법하다.
청와대에서 촬영한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의 사진 중 하나. [사진 보그 코리아]
그런데 청와대 개방에 원래부터 비판적이던 사람들,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다른 의미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모양이다. 탁현민의 이 페북 글은 울고 싶은 사람들 뺨을 때려줬다. 화보가 올라온 바로 그 날 저녁, 그는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한 걸 두고 "청와대라는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상징적 공간을, 과반의 국민적 동의 없이 폐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는 개방된 청와대를 일제의 창경궁 동물원에 비유했다.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긴 지난 문재인 권력의 핵심 인물인 그가 억울해하는 속내야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하다. 지금 개방된 청와대가 일제 시대 당시 동물원이 된 창경궁이라면, 톱모델 한혜진을 비롯해 그곳에서 사진 찍은 모델들은 사자·기린·코끼리·북극곰인가? 또 청와대 개방 이후 그곳을 찾은 100만 명 넘는 시민은 '일본에 나라 빼앗기고도 좋다고 놀러 다니던 조선인'이라는 말인가?
동물원이 있던 1974년의 창경원. 1980년대 중반에 복원된 뒤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동물원으로 만들자고 한 사람은 조선 왕족 순종이었다. [중앙포토]
부적절한 비유일뿐더러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창경궁을 창경원, 그러니까 동물원으로 만들자고 요구한 사람이 누굴까? 바로 조선 왕족 순종이었다. 동물원 수입을 본인이 가져간다는 조건을 붙였었다. 왕실의 재산이라고 왕실 마음대로 처분해버린 거다. 조선 백성의 마음 따위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당시 사람들 관점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 고종·순종·영친왕 등 조선 왕족들은 '왕공족'이라는 작위를 받아 일본 천황 가문의 바로 아래 지위를 누렸다. 소수의 왕정복고 파가 아니라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꾼 건 일본 귀족이 된 비겁한 왕족들이 독점하던 서울 한복판 땅을 백성을 위한 공원으로 개방한 행위로 여기지 않았을까.
식민지 조선인에게 그리 큰 반감을 불러일으킬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창경원은 개원부터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중에는 일본인·대만인·오키나와인 등도 와서 구경하는 서울의 첫 손꼽히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네이버의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1909년 11월 1일 전후의 옛날 신문을 펼쳐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탁현민은 왜 굳이 반일감정을 들쑤시면서 청와대 개방을 일제 시대 창경원에 비유하는 무리수를 뒀을까. 한일관계뿐 아니라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로움 하나 없이 해롭기만 한데도 말이다. 아닌가. 외교 문제는 그렇다 치고 일단 문화, 특히 대중문화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문빠' 세력을 등에 업은 탁현민이 이를 대놓고 비난하는 건 상식의 틀을 깨는 예술 본연의 기능을 심각하게 위축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탁현민의 페이스북 포스팅 이후 화보를 찍은 보그 코리아와 한혜진을 향한 비난이 적지 않았다. 이처럼 정치적 목적 없는 문화적 행위를 정치적 잣대로 손가락질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문화예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복궁에서 열리기로 돼 있던 글로벌 패션 브랜드 구찌 패션쇼가 취소된 것에서도 탁현민의 '나쁜 영향력'이 드러난다.
2012년 5월 프랑스 베르사이유궁에서 펼쳐진 샤넬 패션쇼. [중앙포토]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탁현민은 지난 2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정부의 미숙함으로 인해 예술인들 평판에 해를 자꾸 끼치는 것"이라며 슬쩍 물을 탔다. "(청와대 화보를 찍은) 모델 한혜진 씨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보그 코리아도 화보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로지 윤석열 정부의 부적절한 판단 탓에 패션지와 모델이 욕을 먹는다는 투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 건 바로 탁현민 본인이다.
게다가 어설픈 물타기 발언 이후에도 탁현민은 반일주의에 기반한 대중적 분노 유발을 결코 멈춘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날 출연한 같은 방송에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복을 알리기 위해 찍었다고 설명하던데, 다른 여러 복장도 있고 심지어 일본 아방가르드 대표 디자이너인 류노스케 오카자키 작품도 있다." 일본이라는 키워드를 들이대 일본을 향한 대중의 반사적 분노를 자아내 보려는, 식상하지만 대체로 잘 통하는 선동 기법을 다시금 꺼내 들었다.
이런 선동가의 말에 속지 않으려면 생각을 해야 한다. 문화재청이 스스로 밝힌 취지는 한복의 고증이 아니다. '한복의 새로운 현대적 해석'을 제시하는 거다. 당연히 우리의 눈에 한복과 다른 복장이 섞일 수밖에 없다. 전위적인 패션지의 성격상 다소 과감하게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의상이 포함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걸 왜 반일 감정이나 기생과 연결하나. 한복에 신선한 멋과 개념, 약간의 성적 기호를 가미한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참신함이 더해졌다고 곧장 기생을 떠올리며 욕하는 사람이 문제다.
일본 디자이너 얘기도 해보자. 류노스케 오카자키는 일본의 대표적, 아니 글로벌한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다. 그가 '한복의 재해석'이라는 테마로 청와대라는 무대에서 자기 의상을 소개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고작 20여 년 전만 해도 보통 사람은 물론이요 한국의 소위 '패션 피플'이라는 사람들조차 일본 패션 잡지를 보고 따라 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 디자이너가 한복을 테마로 작업을 한다. 부끄럽고 치욕스럽기는커녕 자랑스럽고 뿌듯한 '문화 독립 선언' 아닐까.
2012년 대선 직전 탁현민씨(왼쪽에서 둘째)가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와 찍은 사진. 탁씨는 김어준씨(맨 오른쪽)가 진행하는 t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 [중앙포토]
사실, 탁현민의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그의 행보는 놀랍지도 않다. 괘씸한 건 그 많은 '양심적 문화 예술인'이다. 탁현민 같은 선동적 인물이 야만적인 대중 감성을 들쑤셔가며 문화계의 자율성, 그리고 예술계의 창조성을 공격하는데 그 허다한 '자유로운 영혼'들은 대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만약 지금 여야가 바뀐 상황이라면, 다시 말해 야당인 우파 세력이 좌파 정권의 문화 행사를 두고 창경원이니 기생이니 하는 자극적 언어로 선동하려 든다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 아닌가?
탁현민의 발언은 상대 진영이 내 권력을 빼앗아 가니 '청와대를 더럽힌다'는 식의 온갖 전근대적 전제 위에 반일 선동을 어지럽게 뒤섞어 놓은 데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솔직히 무시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침묵하는 문화예술인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가 대중 감정을 들쑤셔 문화 예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걸 보고도 입 꾹 다물고 있는 편향적 문화예술인들, 지금 침묵하려면 영원히 침묵하라.
노정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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