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무슨 사업 접을까?” 대기업도 ‘조용한 해고’ 시작됐다 구직급여 신청 온 사람들은 각양각색 국비 지원 무료 교육생 모집 글로벌 경기 하락 고금리 2023년 경기 위축 전망 고용 한파
1990년대 말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당시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신입 사원이었고, 초급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이나, 분위기를 다 아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유사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당시에 일하던 선배들이 다른 직장으로 옮기거나, 쉬거나, 은행직원은 희망퇴직하거나 치킨집을 차렸다는 소문을 전해들었다.
그런데 그동안 잘 버티던 대한민국이 또 위기에 직면한 것인지 위태한 마음이 든다. 물론 어떻게든 상황은 잘 헤쳐나갈 거라 믿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혹한에 어려울 수도 있고, 응원이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겨내면 더 좋은 기회가 생기거나 한결 나은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고 본다.
어쨌든 극복해야 한다. 어렵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느 정도 눈에 선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의 준비를 하면 충분히 비켜갈 수 있다고...
“신년을 막 넘긴 지난 1월 3일,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신청하러 경기 성남시의 고용노동부 센터를 찾은 사람은 100여명이었다”
“올해 무슨 사업 접을까?”...대기업도 ‘조용한 해고’ 시작됐다
[주간조선]
조윤정 기자
입력 2023.01.08 05:40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성동구청 희망일자리센터에서 한 시민이 구인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신년을 막 넘긴 지난 1월 3일,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신청하러 경기 성남시의 고용노동부 센터를 찾은 사람은 100여명이었다. 그 전날도 80~100여명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새해 첫 주부터 구직급여를 신청하러 온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휴대전화를 보고 혼자 양식을 쓱쓱 작성해서 제출하는 젊은 여성이 있는가 하면,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취업지원센터 책상에 앉아 직원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렵게 신청 양식을 작성하는 50~60대 남성도 있었다. 성남시 센터 관계자는 “원래 12월에서 3월까지는 신청자가 몰리는 편인데, 이번에는 좀 일찍부터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며 “11월쯤부터 사람이 많아져 직원들이 힘들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고용센터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수급자격 신청자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강의실에는 온라인에서도 받을 수 있는 교육에 익숙지 않은, 50~60대를 넘긴 사람들이 20명 정도 앉아 있었다. 검은 패딩을 입은 한 50대 남성은 교육장에 들어가기 전 ‘국비 지원 무료 교육생 모집’ 등이 쓰인 팸플릿 매대를 한참 바라봤다. 그는 “11년 다닌 회사에서 최근 정리해고를 당했다”며 “정년까지 아직 조금은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돼서 너무 당황스럽다”고 했다. 말을 더 붙여보려 했지만,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갔다.
글로벌 경기 하락과 고금리 등으로 2023년 경기 위축이 전망되는 가운데, 고용 한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본격적인 조직 슬림화에 들어가면서 인력을 조직적으로 구조조정하거나 채용 확대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투자 위축 등 혹한기에 접어들면서 몸집 줄이기를 이어가고 있고, 2년간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해온 은행·금융권도 희망퇴직 절차를 계속할 예정이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대기업들은 가시적인 고용 성과를 기대하는 정부의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조용한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 저성과자나 고연차 직원 등을 대상으로 간접적으로 사직을 권유하거나 희망퇴직을 받는 식이다. 대기업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중견·중소기업들은 ‘태풍급’ 고용 한파를 맞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마련된 실업급여 설명회장. photo 뉴시스
본격적인 경기 둔화의 시작
관련 통계도 올해 본격적인 경기 둔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코로나19 회복 효과가 사라지는 2023년 월평균 취업자 수 증가 폭은 8만~9만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한은 집계 기준으로 2022년 월평균 취업자 수 증가가 82만명인 것과 비교하면 10분의1 수준이다. 물론 2022년 수치는 코로나 사태 중 찍었던 저점에서 회복한 결과가 상당 부분 반영됐지만, 예년 대비 낮은 취업자 수 증가는 이제 ‘뉴노멀’로 자리 잡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2023년은 경기 둔화의 시대를 넘어 ‘침체’ 초입에 돌입할 걸로 보인다”며 “코로나19 확산과 글로벌 양적완화, 전쟁 등으로 촉발된 고물가가 지속하는 만큼, 고금리 기조도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겨울이 지나도 고용 한파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왔다. 김광석 실장은 “기업들을 만나보면 2021년까지만 해도 ‘신사업 중에 어떤 걸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2022년 들어선 이후에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 중에 어떤 걸 먼저 접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며 “결국 구조조정이다. 고용의 절대적인 비중이 임금 근로자인데, 당분간은 가계와 기업, 정부가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스타트업계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 시작부터 혹한기를 보내고 있다. 유동성이 줄어들어 시장에 돈이 안 돌면서, 유니콘으로 불리던 기업들도 몸집 줄이기에 들어갔다. 이에 따른 고용지표 악화도 순차적으로 따라왔다. 지난해 12월 300명의 구조조정을 감행한 샌드박스네트워크가 단적인 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소속된 샌드박스네트워크는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업계 1위 기업이다. 대거 해고의 배경에는 경영진의 방만 운영 등도 문제로 꼽히지만, 적자 구조를 일순 견디면서 사업 확장을 시도하던 기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게 권고사직에 대한 경영진의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22일 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 등 정부 합동으로 출범한 ‘일자리 TF’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첫 회의를 가졌다. photo 뉴시스
스타트업계부터 불어닥친 해고바람
실제로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견·중소기업은 신년이 시작되면서 소극적인 경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3개월 전 100억여원 투자를 받은 한 IT기업은 새해 인사 대신 “올해는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 같다”는 내용으로 전 직원에게 메일을 돌렸다. 탈잉, 정육각, 뤼이드 등 전도유망 스타트업으로 평가돼 수억원대 투자를 받아 주목을 받은 곳들도 2023년 최대 70%까지 인력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1월부터 신한·국민·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권 희망퇴직 철이 시작되면서 은행권에서도 역시 연초부터 수천 명이 짐을 쌀 거란 전망이 나온다. 수년간 은행권은 희망퇴직을 계속해왔지만, 이번에는 대다수 은행이 만 40세까지로 대상자를 확대했다. 신한은행은 44살 이상부터의 계약직 직원을, 하나은행은 15년 이상 근속한 만 40살(1983년 1월생) 이상의 직원 등을 희망퇴직 대상자라고 밝혔다. 지난해 5대 은행에서 2310명이 퇴직했는데, 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퇴직자가 발생할 거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 중구 신당동 한 은행에서 근무하는 50대 남성은 “점포 수를 줄인다고 하면서 사람을 계속 자르고 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떠나니 심란하다”며 “내 나이에는 일하는 것만으로 사실 눈치가 보일 지경”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대기업의 ‘조용한 해고’는 권고사직과 일방적 해고 중간에서 이뤄진다. 회사 사정이 이만큼 어렵고, 불가피하게 근무 시간이나 장소를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쌍방 마음이 편치 않으니 사직서를 제출해줬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비공식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셈이다. 롯데면세점, 롯데하이마트, 하이트진로 등은 아예 공식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유통업 관련 외국계 대기업에 다니던 32세 여성 A씨도 회사에서 이런 식의 ‘은근한’ 권유를 받고 결국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계약직으로 3년간 일한 A씨는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도, 인사 담당자가 자리에까지 찾아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퇴직 의사를 묻고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는 등 지속적으로 사직 압박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 소재 노무법인을 찾은 A씨는 “모양은 자발적 퇴사지만 사실상 해고당한 기분”이라며 “사직서를 내 손으로 내긴 했지만, 절차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확인하고 싶어서 노무사의 도움을 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인사팀도 이러한 압박을 가해야 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자동차 대기업에서 일하는 인사팀 직원은 “지난해 자동차 업계는 호황이었고, 우리도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매출 실적을 찍었다”면서도 “조금만 위험 신호가 보여도 위에서 조직 슬림화를 단행할 기세”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방침을 계속 전달받고 있어 우리도 인사 평가 등 실적 평가를 꼼꼼히 해놓는 중”이라며 “막상 직원들에게 희망퇴직 의사를 물어보러 다녀야 할 때가 올 텐데 미리 걱정이 든다”고 우려를 표했다.
“지금의 고용 한파는 전조증상”
이러한 고용 한파는 경기가 이제 막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김광석 실장은 “지금의 고용 한파는 일종의 전조증상이다. 본격적인 건 올해 2분기부터 시작될 것 같다”며 “고용은 경기 후행 지표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금리의 역습을 초래한 고물가의 원인이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양적완화 등 다양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직적 노동시장 구조 개선, 민간 일자리 활성화 등에 앞장서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용노동부와 기재부는 지난해 12월 22일 일자리 태스크포스 첫 회의를 열고, 2023년도에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원안을 담은 ‘고용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정부가 직접 상반기에만 94만명을 채용하겠다는 기본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전체 일자리의 90%가 넘는 규모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결국 민간에서 일자리가 풀려야 고용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본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코스피 지수, 부동산 시장 등을 보면 실물경기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같은 상황에서 고용 시장 역시 악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국가 주도의 일자리보단 민간 경제가 살아나고 민간 시장에서 일자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시장의 유연화,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기업들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01/08/XJS7GFPUXJEGFEZ3YANKZ5E5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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