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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한발짝 앞서 ‘저항 현장’ 나섰던 임보라 목사 별세 성소수자 차별 반대·평화운동 앞장 “큰 언덕 잃었다” 곳곳 애도 분위기 혐오와 차별 불평등에 저항 기독교인들 숨어서 체면 위..

창(窓)/기독교窓

by dobioi 2023. 2. 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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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대한 책이 있다. 쉽게 기독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제대로 알지도 못했기에 로마 카톨릭과 기독교가 힘든 선택을 하고, 기독교 박해를 하기도 했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입장에 따라서 변질되어 기본 진리를 벗어나고 말았다는 것이 역사로 남아있다.

 

그래서 잠시 참고로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나오는 서문을 공유하고 싶다.

 

책 속으로
인간은 무한히 의문을 갖는 피조물이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다. 인간은 항상 미지의 세계를 파고든다. 지칠 줄 모르는 정력으로 지식을 추구한다. 인간의 삶은 발견을 위한 항해이다. 그는 항상 의문을 갖고 탐구하고 조사하고 연구한다. 그칠 줄 모르는 ‘왜?’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께 이르게 되면 좌절감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찾는 것이다. 인간은 그 어둠의 심연에서 몸부림친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분이시든 여하간 영원불멸하는 분이신 데 반하여, 인간은 유한하고 반드시 멸망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우리의 이해 차원을 넘어선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의 지성이 다른 과학 영역에서 아무리 놀랍고 효과적인 도구라 하더라도 이 부분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생각에까지 오르지 못한다. 오르는 사다리가 없는 것이다. 다만 무한히 깊고 넓은 심연만 있을 뿐이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깊음)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11:7). 욥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으셨다면 사태는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어쩔 수 없는 불가지론자가 되어 본디오 빌라도처럼 ‘진리가 무엇이냐’(요18:38) 물으면서도 대답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감히 대답받을 것을 바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성으로 인해 예배자가 되겠지만, 모든 제단에는‘알지 못하는 신에게’(행17:23)라고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나타내셨다. 기독교의 계시 교리는 근본적으로 합리적임이 이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았더라면 인간에게 감춰져 있었을 것을 드러내 보이셨다.
하나님의 계시의 한 부분은 자연을 통한 것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19-20)

 

사실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성경에 일부 표현이 되어 있기도 하지만, 아마도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차별 반대하신느 분들 입장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부정하고, 나름대로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사실 기독교가 힘들었던 것은 사회문화와 썪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천주교, 카톨릭처럼 포교되는 지역의 종교와 교합, 혼합했다면 모를까, 기독교(보통 개신교)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몹시 핍박을 당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사자 등 짐승에게 물어뜯겨 죽기도 하고, 고문과 살해의 현장에서 죽어갔다.

 

그래서 지하 교회, 카타콤으로 숨어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면서 기독교의 순수성을 보존한 체 오랜 기간을 이어나가다가 최근에서야 미국에서 기독교(개신교)를 믿었었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인 당시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대한민국에 30% 이상의 포교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퍼센테이지는 점점 떨어져서, 현재는 30% 정도로 추정된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10% 정도라고도 보는 입장이 있다. 결국 그리 많은 기독교인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맞겠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나름 소수의 의견이나 견해로 치부될 수 있기도 하지만, 여하튼 기독교, 개신교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던 것이 과거 우리나라 역사에 영향을 준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쨌든, 성 정체성에 대해서는 그게 신체적으로 구분되든, 생각으로 구분되든, 성전환수술로 구분되든, 어쨌든 기본적인 것에 대한 깊은 탐구와 토론이 필요해보인다.

 

언제나 한발짝 앞서 ‘저항 현장’ 나섰던 임보라 목사 별세

조현 기자

등록 2023-02-05 13:02

수정 2023-02-06 13:48

 

성소수자 차별 반대·평화운동 앞장

“큰 언덕 잃었다” 곳곳 애도 분위기

 

고 임보라 목사. <한겨레> 자료사진

 

성소수자 차별 반대와 여성인권, 평화 운동에 앞장서며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던 임보라 목사가 4일 별세했다. 향년 55.

 

임 목사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시민운동계와 진보 개신교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성소수자들과 차별철폐운동가들은 “큰 언덕을 잃었다”며 비통해하고 있다.

 

고인은 1987년 한신대 영어영문과를 입학하고 마친 후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고, 1993년 향린교회가 강남향린교회로 분립할 당시 전도사 신분으로 어린이부를 맡아 목회를 시작했다. 이어 캐나다 유학 도중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했고, 2003년에는 귀국해 향린교회 부목사로 사역했다. 민주화운동의 개신교계 본산 격인 향린교회에 몸담은 고인은 약자들을 위한 사역에 몸을 던졌으나, 그 누구도 아닌 기독교인들에 의해 가장 박해받고 비난받고 상처를 입었다.

 

고인은 2010년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연대’ 공동대표를 맡은 뒤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우리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누가 누구를 차별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며 일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동성애를 혐오하는 근거로 삼아 폭력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을 회개해야 한다”고 외쳤다. 2012년 무지개인권상을 수상한 고인은 수상 소감에서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 출판을 기념하며, 먼저 간 벗들을 애도하는 예식에서 함께 목 놓아 울었던 그 자리를 기억하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농성장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 10대 퀴어들의 울음소리를 기억한다”며 “당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방해하는데 앞장섰던 기독인들이 ‘형제님, 자매님’이라며 서로를 부르면서도 저를 밀쳐내고 ‘자매님, 더러우니 얼른 가서 손을 씻고 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기도 했던 그 농성장에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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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인 2013년 향린교회가 60주년 기념으로 섬돌향린교회를 분립하면서 담임 목회자가 된 고인은 섬돌향린교회를 성소수자 크리스천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피난처로 만들어 한국교회의 성소수자 혐오에 맞섰다. 고인은 일부 목회자·신학자들과 함께 2017년 <퀴어성서주석>(무지개신학연구소) 번역본 발간을 위해 출판위원회를 꾸렸다. 이후 개신교계 대형 교단들은 임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해 개신교계 최대 교단 가운데 하나인 예장합동교단과 고신, 합신 등이 2017년 9월 총회에서, 예장통합과 백석대신 교단은 그다음 해 9월 총회에서 각각 임 목사를 ‘이단 혹은 이단성이 있다’고 결의했다. 고인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자신을 이단시하는 보수 개신교계의 탄압에도 토론회와 세미나 등에서 “성소수자는 성경적으로도 죄인이 아니고, 사회에서 어떤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항변해왔다.

 

고 임보라 목사. 이정아 기자

 

고인은 성소수자들뿐 아니라 신학교와 교단 내 성폭행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해 애쓰고, 제주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 등 평화운동과 동물권 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향린교회 김희헌 목사는 “누적된 삶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며 비통해했다. 며칠 전 한백교회에서 열린 교육 강사로 온 고인을 보았다는 한백교회 이상철 목사는 “평소 그가 지구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만큼 지구와는 다른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성소수자와 동물과 장애인과 생명 일반에게 보여준 분이었다”면서 “늘 언제나 한 발짝 앞서 고통의 현장에 서 있었던 그의 뒤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숨어서만 겨우 체면과 위신을 유지했는데 큰 벽이 무너졌다”고 애통해했다.

 

그의 별세 소식에 여러 인권 단체의 추모가 이어졌다. 비온뒤 무지개 재단은 페이스북을 통해 “성소수자들을 향해 축복을 아끼지 않았던 임보라 목사님을 추모”한다며 “무지개를 두르고 환하게 웃던 고인의 밝은 미소와 연대의 마음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그의 인터뷰를 공유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연대가 필요한 어디에서나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시던 당신의 미소가 벌써 그리워집니다”라고 애통해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혐오와 차별, 불평등에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늘 먼저 나와 곁이 되어 주신 덕분으로 우리 세상이 조금 더 따뜻했습니다. 이 때문에 떠난 자리가 오래 시릴 것도 같습니다”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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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으로는 남편과 딸 2명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2호실이며, 발인은 2월7일 화요일 오전 7시,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5일 일요일 오후 4시에는 임 목사가 소속했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예배가, 5시에는 향린공동체협의회 주관 부활증언예배가, 7시에는 강일교회 예배가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장수경 기자

 

※ <한겨레>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10783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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