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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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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화재 위험이다. 다양한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도 화재가 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튀니지 노동자는 그냥 일을 했을 뿐이고, 그인지, 누구인지 발화원인을 밝히기에는 과학수사가 헛점투성이인 것이다.

마녀사냥처럼 불합리한 근거로 그냥 튀니지 노동자를 몰아간 것이다.

한국 사람은 일하지 않는 곳에서 일해준 고마운 노동자인데 말이다. 여차하면 돈벌러 왔다가 큰일 당할 뻔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그간 갖혀서 조사받느라 일하지 못한 부분까지 다 보전해줘야할 것이겠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

해외에 일하러 갔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뻔했다. 안타까운 상황에 처할 뻔 했다.

 

http://cbs.kr/TZg4Qy 

 

군포 물류센터 화재…담배꽁초 버린 외국인 근로자 무죄

담배꽁초를 버려 물류센터에 불이 나게 해 630억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외국인 근로자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형사2단독 허문희 판사는 11일 중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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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물류센터 화재…담배꽁초 버린 외국인 근로자 무죄

 

지난 4월 군포물류센터에서 화재 발생해 630억원 재산피해
法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 책임 증명하기 어려워"

군포복합물류터미널 화재.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담배꽁초를 버려 물류센터에 불이 나게 해 630억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외국인 근로자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형사2단독 허문희 판사는 11일 중실화 혐의로 기소된 20대 튀니지인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4월 21일 오전 10시 13분쯤 한국복합물류 군포터미널 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담배꽁초를 버려 옆 건물 2동에 불을 낸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이 불로 연면적 3만 8천여㎡인 건물의 절반 이상과 8개 입주 업체의 가구와 의류 등이 탔다. 재산피해는 63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버린 담배꽁초가 발화 원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허 판사는 "증거에 의하면 물류센터 화재가 담뱃불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피고인이 발화지점 부근에 담배꽁초를 버린 뒤 19분이 지나서 연기와 불꽃이 일어난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 화재가 피고인이 버린 담배꽁초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피고인은 담뱃불을 모두 털고 필터만 던졌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발화지점에 다른 담배꽁초들이 있었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담배꽁초에 불씨가 남은 상태로 발화지점에 버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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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영웅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고마운 분들까지는 이해하겠지만, 영웅시 하는 건 좀 이상하다.

집단심리일까? 집단지성의 오류일까?

어쨌든 크게 동의하진 않는다.

 

천대받는 직종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직업의식이란 것이 이상해지는 요즘 아닌가?

 

친척 할머니는 거의 평생 생선을 파셨고, 그걸로 자녀들 대학보내고, 직장 구하고, 결혼하고, 다 건사하셨다. 자갈치 시장에 가면 좌판에 생선 파시는 분들, 동네 시장엘 가도 채소, 양말 뭐 이런 거 파시는 분들도 다 그렇다. 그 직업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마침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프로그래밍으로 시스템을 움직이게 만드는 근로자를 우리는 영웅리하 하지 않지 않은가? 알아주면 영웅이고, 몰라주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냄비근성이라고 해야하나? 왜곡된 생각을 왜곡되게 전달하는 상식에서 벗어난 영웅시는 지양하고 싶다.

 

언제는 새벽배송을 말자는 둥, 택배를 자제하자는 둥, 이상한 얘기들을 하더니, 이제는 그분들 덕이라니... 뭔소리인지 모르겠다.

이러기 전부터 그분들은 열심히 일해주셨고, 그래서 사회의 구성원들 덕에 사회가 돌아 가고 있는 거다.

 

강남대로에 쓰레기통을 콜라로 닦으시는 분을 봤다. 아마도 공무원이실 것이다. 이런 분도 영웅이라 말하지 않고 있지 않나? 숨어서 일하시는 분들 덕에 세상이 그나마 요모양 요꼴으로라도 돌아가는 것이겠다.

 

 

http://cbs.kr/0T84oF 

 

"코로나 일상의 영웅, 비대면을 배달하는 택배 노동자"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변성민(대학생) 오늘 뉴스쇼 마무리는 좀 훈훈한 인터뷰를 잠깐 진행해 볼까 합니다. 요즘 택배기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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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김현정의 뉴스쇼

"코로나 일상의 영웅, 비대면을 배달하는 택배 노동자"

 

https://youtu.be/8YKlsGgS_QQ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변성민(대학생)

오늘 뉴스쇼 마무리는 좀 훈훈한 인터뷰를 잠깐 진행해 볼까 합니다. 요즘 택배기사들이 과로로 연이어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들이 눈물의 호소를 하기도 하고, 동료들이 시위를 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들 보셨죠. 그런데 시민들 사이에서는 택배기사 응원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택배가 배달되는 그 문 앞에다가 응원 문구를 챙겨두거나 음료수를 내놓는 식의 캠페인이라는데요. 이 캠페인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죠. 대학생 변성민 씨, 연결돼 있습니다. 변성민 씨 안녕하세요.

◆ 변성민>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어디 사십니까?

◆ 변성민> 저는 청주에 살고 있는 21살 대학생 변성민이라고 합니다.

◇ 김현정> 청주 사세요. 아파트 사십니까? 아니면 개인 주택이세요? 혹은 빌라세요?

◆ 변성민> 저는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 김현정> 아파트에. 일주일에 택배는 몇 번이나 받으세요?

◆ 변성민> 저희가 좀 가족이 많은 편이라 그래도 한 두세 번 정도는 꼭 오시는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러면 그때마다 문 앞에 뭘 놓으시는 겁니까?

◆ 변성민> 저 같은 경우에는 문 앞에 간식을 놓지는 않은데 응원 문구로 대체를 하고 있어요.

◇ 김현정> 지금 저희가 유튜브를 통해서 또 레인보우앱의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변성민 씨가 문 앞에 놓는 응원카드 보여드리고 있거든요.

◆ 변성민> 네.

◇ 김현정> 뭐라고 적으신 거예요?

◆ 변성민> 기사님은 지금 비대면을 배달하고 계십니다, 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적었는데.

'택배기사 응원 캠페인' (사진=변성민씨 제공)

 

◇ 김현정> 그림은 누가 그리신 거예요? 그림도 보이네요.

◆ 변성민> 그림을 제가 못 그려서 동생한테 부탁했거든요.

◇ 김현정> 그러면 그 글씨는 우리 변성민 씨가 쓰신 거고 그림은 동생이 그려주고.

◆ 변성민> 네, 그렇죠.

◇ 김현정> 무슨 뜻입니까? 비대면을 배달하고 계십니다?

◆ 변성민> 말 그대로 기사님들이 단순히 물건을 배달하는 게 아니라 이 힘든 상황 속에서 비대면을 배달하고 계신다라는 의미를 전달 드리고 싶어서 그렇게 정해 봤어요.

◇ 김현정> 이 응원 카드를 발견한 택배기사님들 반응은 어땠어요?

◆ 변성민> 저한테 직접 말씀을 해주신 기사님은 없으신데 그래도 마음속으로 좀 뿌듯해하지 않으셨을까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아니, 우리 변성민 씨가 그린 응원문구 말고도 저희가 화면으로 여러 시민들이 지금 펼치고 있는 이 캠페인, 응원메시지, 선물바구니,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있는데 지금 보기만 해도 따뜻합니다. 이 캠페인은 이게 누가 어떻게 시작한 거라고 합니까?

◆ 변성민> 이거는 이제 제가 알기로는 시민분들께서 직접 제안을 하시고 또 기획을 하시고 하셔서 그 아이디어를 받아서 그런 식으로 시작이 된 걸로 알고 있거든요.

◇ 김현정> 그럼 어디 기업이나 어떤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한 게 아니에요?

◆ 변성민> 그거는 이제 서울시 자원봉사센터라는 데서 아이디어를 받아서 한 걸로 알고 있어요.

◇ 김현정> 시작은 거기서부터.

 



◆ 변성민> 네.

◇ 김현정> 그 지금 이 캠페인 참여하시는 분들 보면 주로 어떤 분들이십니까?

◆ 변성민> 되게 다양한 각계각층의 직장인분들도 계시고 저처럼 학생인 분들도 계시고 되게 다양한 분들께서 참여를 해주세요.

◇ 김현정> 그러면 문구도 상당히 다양할 것 같은데 기억나는 응원 문구.

◆ 변성민>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쓴 문구들이 제일 기억에 남더라고요. 아이들이 택배 기다리면서 설렌다, 사랑한다, 그런 식으로 쓴 문구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 순수한 마음이.

◇ 김현정> 기사님 설레는 선물 가져다주셔서 감사해요, 힘내세요. 이런 것들.

◆ 변성민> 네.

◇ 김현정> 사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택배기사님들한테는 큰 힘이 될 겁니다. 망설이지 말고 바로 오늘부터 실천하세요 하고 한 말씀주시죠.

◆ 변성민> 시민 여러분, 그렇게 어렵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으면서 큰 의미를 갖는 그런 활동인 것 같으니까 다 같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함께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그리고 지금 뉴스쇼를 택배기사님들이 많이 들으세요. 트럭 운전하면서 많이 들으시거든요. 지금 듣고 계실 택배기사 분들께 한 말씀.

◆ 변성민> 택배기사님들 정말 늘 감사하고 제 친구가 상하차 알바를 해서 아는데 요즘 추석 이후로 더 물량이 쌓여서 되게 힘들다고 들었어요. 항상 파이팅이고 늘 건강 조심하시면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김현정> 네, 변성민 씨, 그 예쁜 마음 고맙습니다. 널리널리 그 선한 영향력 퍼뜨려주세요. 고맙습니다.

◆ 변성민> 감사합니다.

◇ 김현정> 택배기사 응원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한 분의 이야기, 직접 들어봤습니다. 청주에 사는 대학생 변성민 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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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이 이렇게 지내고 계시는지 생각도 못했다. 아마도 그쪽에는 관심없는 시대를 살아서 그런가보다.

 

어쨌든 문대통령도 나서서 훈장을 추서한다고 하고,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단, 그때나 지금이나 근로환경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힘든 분야가 있기 마련이고, 부침이 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상식적인 상황으로 발전된 상태다.

오히려 3D 직종에 거꾸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름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거다.

쉬려면 쉴 수도 있다. 건강도 챙길 수 있다. 무리한 업무는 본인이 조절해야 하고, 회사가 적절하게 분배해줘야 옳다.

그게 아니면 그만 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거나, 앞서 언급한 창업이나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이 낫다.

 

아직도 70년대에 머물러 있거나, 오해, 곡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짝 우려스럽다.

 

노동운동이 무색한 상황인 것이다.

오히려 생산성 향상과 글로벌 기준에 맞춰 꾸주닣 향상되어온 근로환경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전국민이 다 힘들게 일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된다.

 

'정의연' 윤미향 사건 판사 같은 분도 근로환경이 좋지 않아 회식중 쓰러져 사망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현대차? 생산공장에 라인이 자주 멈춘다 한다.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시정되었나 모르겠지만, 세상이 70년대의 그 세상은 이미 아니다.

 

http://cbs.kr/RGw4ec 

 

[전태일 50주기]"오빠가 분노한 노동현실, 지금도 똑같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전순옥 전 의원 (전태일 열사 동생) 허리를 펴고는 일어설 수도 없고 환기도 안 되는 좁은 다락방에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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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전태일 열사 50주기

[전태일 50주기]"오빠가 분노한 노동현실, 지금도 똑같다"

 

전태일, 휴일엔 동생들과 놀아주던 다정한 오빠
母 이소선, 머리카락 팔아 근로기준법 책 사다줘
오빠 쓰러지자마자 돈가방 들고 온 안기부
50년이 지났지만 노동 사각지대는 더 심각해

 

https://youtu.be/qnRdT9vMF38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전순옥 전 의원 (전태일 열사 동생)

허리를 펴고는 일어설 수도 없고 환기도 안 되는 좁은 다락방에서 하루 18시간 미싱을 돌립니다. 손을 씻으려고 해도 씻을 공간이 없습니다. 결국 들이마신 먼지 때문에 폐병에 걸리고 쫓겨날까 봐 병을 숨기면서 그렇게 일했던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을 대신해서 노동법 준수를 외치다가 결국 분신으로 목숨을 끊은 청년이 바로 전태일 열사죠. 내일 모레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꼭 50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열사의 동생이죠. 전순옥 전 의원, 스튜디오로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전순옥> 안녕하세요.

◇ 김현정> 벌써 50년 됐어요?

◆ 전순옥> 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벌써 50년, 반세기가 지났죠.

◇ 김현정> 오라버니가 살아 계셨으면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 거죠?

◆ 전순옥> 22살에 돌아가셨는데요. 72세.

◇ 김현정> 전태일 하면 그 앞에 수식어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렇게 붙는데 사실 할아버지시네요.

◆ 전순옥> 그렇죠.

◇ 김현정> 그때 오빠가 첫째였고 우리 전 의원님이 셋째?

◆ 전순옥> 제가 셋째.

◇ 김현정>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셨어요?

◆ 전순옥> 나이 차이가 6살.



◇ 김현정> 6살 차이. 그러면 그때 전태일 열사는, 오빠는 미싱 일을 하셨고.

◆ 전순옥> 처음에는 미싱 일을 했고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시다들, 어린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재단사가 돼야지 공장의 책임을 맡게 되거든요. 책임을 맡으면 어린 시다들을 많이 도와줄 수 있는 거라서 재단사로 다시 또 재단을 배웠죠.

◇ 김현정> 전순옥 전 의원은 그때 같이 일하셨잖아요. 같이 미싱하신 거예요?

◆ 전순옥> 저는 보조일, 그러니까 미싱. 자꾸 일본말을 쓰게 되는데 그게 알아듣기 쉬운 거니까.

◇ 김현정> 미싱의 꿈이라는 노래도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미싱, 미싱 예전에는 그랬으니까.

◆ 전순옥> 그래서 보조 일을 했죠. 시다 일을.

◇ 김현정> 시다 일, 이것도 일본말입니다마는 그 당시 그때를 떠올리면 우리가 확 와 닿는 어떤 수준의 환경에서 어떤 수준의 대우를 받으면서 일했겠구나를 떠올리려면 그 용어가 사실 적합해서 쓰는 겁니다. 양해를 부탁드리고요. 시다라고 하는 미싱 보조일을 한 거예요. 오빠를 떠올리면, 그리고 그 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떠오르는 장면 같은 거 혹시 일화 같은 거 있습니까?

◆ 전순옥> 항상 오빠하면 떠오르는 것은 일을 할 때는 공장에서 오빠랑 같이 일을 하면서 공장에서 항상 시다들 어린 소녀들을 돌보기 위해서 관심 가지는 거, 그리고 집에서는 어쩌다가 일요일날 한 달에 한 번 쉬어요. 그러면 동네 분들이 아버지 친구, 어머니 친구, 제 친구들 다 동네로 와요. 오빠 친구까지 저희 집으로 와요. 그러면 오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기가 읽었던 책, 봤던 영화 얘기, 그러면서 결국에는 평화시장이라는 곳은 이런 곳에서 내가 일을 하고 있어, 그렇게 이야기를 아주 열변을 토해서.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슬픈 내용이지만 너무 재미있게 하니까 다들 그 얘기를 들으러.

◇ 김현정> 와요?

◆ 전순옥> 몰려 와요. 그때는 TV도 없는 때였거든요. 또 항상 동생들에게 너무 많은 추억을 만들어줬어요, 오빠 하면.

◇ 김현정> 아니, 그 어려운 와중에도 또 추억을, 어떤 거 기억나세요?

◆ 전순옥> 오빠가 노는 날이면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시에 있는 많은 유원지를 데리고 다녔어요. 초등학교 다니면서도.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그래서 서울시내에 있는 한강이나 뚝섬이나 자문밖이나 이런 데 물이 얼마나 깨끗했는지 저희는 그 물을 그냥 마실 정도로.

◇ 김현정> 한강물 그냥 퍼마시던 그 시절이에요, 여러분.

◆ 전순옥> 그런 곳을 많이 데리고 다녔고. 항상 저희들을 돌봐주는 오빠, 그러면서도 엄격하게 또 공부를 가르치는 오빠.

◇ 김현정> 공부도 가르치고. 배워야 된다 너희들.

◆ 전순옥> 그렇죠.

◇ 김현정> 그 오빠가 노동법을 혼자 독학하고 있다는 건 아셨어요?

◆ 전순옥> 독학하고 있다라는 것을 저는 몰랐고요. 우리 다 몰랐는데 어느 날 같이 밥을 아침에 먹으면서 저희 아버지가 오빠 얘기를 들으면서 ‘근로기준법이라는 책이 있다. 하지만 너는 그 책을 보려고 생각은 하지 마라.’

평화시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던 당시 전태일 열사의 모습. (사진=전태일 재단)



◇ 김현정> 아버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 전순옥> ‘그 책을 보기 시작하면 네 인생이 너무 힘들어지고 아버지도 한때는 관심을 가졌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 책이 있다.’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오빠가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더니 나중에 어머니한테 ‘엄마, 내가 지금 당장 그 책을 사야 되는데 월급 때가 아직 안 돼서 돈이 없으니까. 엄마, 돈을 얼마만 좀 구해 주세요.’ 그렇게 한 거예요. 그랬는데 어머니가 돈을 구해 줬어요. 어떻게 구해 줬느냐. 어머니 머리가 기셨어요.

◇ 김현정> 이소선 여사.

◆ 전순옥> 머리를 잘라서. 그래서 그 머리를 팔아가지고 100 몇 십 원인가 한 200원 안 되는 돈을 오빠한테 줘서, 청계천에 대학천 시장 있죠? 오빠가 헌책방에 가서 그 책을 샀어요.

◇ 김현정> 헌책방 가서.

◆ 전순옥> 그런데 나중에 엄마가 후회를 하시는 게 ‘내가 머리 잘라 주지 않았으면 그 책을 안 봤을 거고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런 후회를 하신 적도 있었고요. 엄마는 그러면서도 거기에 대해 잘 말씀을 안 하셨고, 어쨌든 제가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방을 청소하다가 앉은 책상에 있는 일기를 읽다가.

◇ 김현정> 오빠 일기 보셨어요?

◆ 전순옥> 네. 우연히.

◇ 김현정>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 전순옥> 거기에 보니까 평화시장의 현황에 대해서 다 써 놓은 거예요. 하루에 몇 시간씩 일을 하고 있고 얘네들이 어떻게 폐병이 들어서 쓰러져가고. 제가 그걸 보고 막 울었어요.

◇ 김현정> 일기를 보고.

◆ 전순옥> 그리고 저도 일을 했으니까 알게 됐고. 그래서 오빠가 이런 일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자기 시간을 쏟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죠.

◇ 김현정> 아니, 그렇게 어렵게 일하고 쉬는 날도 없는데 또 그걸 쪼개서 공부를 한 거예요.

◆ 전순옥> 네, 오빠는 항상 공부했어요.

◇ 김현정> 노동법, 또 한문으로 돼 있잖아요. 한자를 독학해서 공부했다고 제가 들었어요.

◆ 전순옥> 한문책을 또 헌 거를 사서 한자를 찾아가면서 근로기준법 책을 전부 다 독해를 하고. 그래도 안 되는 건 동네에 대학을 중퇴하신 아저씨가 한 분 있었어요. 그분도 봉제 공장을 하고 있었어요. 이강식 아저씨라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한테 찾아가서 또 물어보고.

◇ 김현정> 그렇게 해서 이제 알았습니다. 노동법에 대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정부 부처에 가서 물어보는데 잡상인 취급하면서 내쫓아요. 아무도 이 노동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결국 택한 것이 스스로를 불살라서 세상에 이 사실을 알려야 되겠다. 내가 죽으면 세상이 나를 쳐다봐주지 않겠는가. 내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겠는가, 하고 택한 것이 분신이었는데. 그날 오빠가 돌아가신 11월 13일에 안기부에서 찾아왔다면서요?

◆ 전순옥> 그날은 아니고 다음 날. 그날은 제가 마지막 병원에 갔을 때 이미 10시 한 반 정도 돼서 오빠는 영안실로 옮겨졌고 어머니는 다녀가셔서 집으로 가셨고. 그래서 내일 아침에 다 병원으로 온다고 그랬는데 그다음 날 안기부에서 왔죠.

◇ 김현정> 뭐라고?

◆ 전순옥> 안기부에서 와서 그 사람들은 제일 관심은 ‘빨리 장례식 하자.’

◇ 김현정> 빨리 장례식 치러버리자?

◆ 전순옥> 어머니한테 ‘빨리 장례식을 해야 된다. 그리고 남은 자식들 데리고 살아야 되는 거 아니냐.’ 걱정을 해 주는 것처럼 막 그렇게 했어요. 그러고 나서 낮 정도 되니까 그날인지 그 다음 날인지 그 날짜는 기억 안 나는데 돈이 가득 들어 있는 큰 가방을 들고 와서 어머니한테 ‘자식들하고 살아야 되니 빨리 장례식을 치르고.’

◇ 김현정> 이 돈으로 살라고?

◆ 전순옥> ‘새로운 삶을 시작하셔야 되지 않느냐.’

◇ 김현정> 얼마쯤 됐어요? 그 가방 안에 가득 들어있는 현찰이.

◆ 전순옥> 만 원짜리가 가득 들어 있었는데 사람들의 얘기로 한 3000만원은 되겠다.



◇ 김현정> 그 시절에, 70년대에?

◆ 전순옥>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저하고 작은오빠, 막내를 데리고 나가서 물어봤어요. ‘이 돈을 받아야 되느냐, 안 받아야 되느냐.’ 그래서 제가 ‘받으면 어떻게 되고 안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어봤더니, 어머니가 ‘받게 되면 오빠는 빨리 장례식을 치르고 오빠가 원하는 뜻을 우리가 포기해야 된다. 그렇지만 너희는 대학도 갈 수 뭐도 할 수 있고 공장 일 안 해도 되고.’ 그래서 그렇게 얘기를 해서. 저는 일기장을 읽은 기억이 있어서 ‘엄마, 저는 계속 공장 다녀도 괜찮아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했더니, ‘나는 다 결정했다. 안 받기로.’

◇ 김현정> 안 받겠다.

◆ 전순옥> 그래서 그럼 나도 엄마의 뜻을 따라서 우리는 안 받고 일하겠습니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 김현정> 그 어마어마한 돈, 지금도 큰돈인데 그 시절에 그 돈이면 진짜 엄청난 돈 아닙니까? 우리는 안 받겠다, 그냥 공장 다니겠다, 그러고 나서 가족들의 삶도 바뀌었어요. 전순옥 전 의원은 잘 아시지만 노동운동을 하다가 35살에 유학을 가서 노동문제로 박사까지 따고 돌아와서 국회에서 일도 하고. 지금도 노동운동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 이소선 여사도 진짜 노동운동의 나머지 일생을 다 바치신 거죠?

◆ 전순옥> 그렇죠. 저희 어머니는 오빠 병실을 나오면서 오빠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라는 스스로의 결심을 하시고 40년 동안 사람들 앞에서 눈물 한 번 안 흘리셨어요. 그게 어머니한테는 병이 된 거죠, 사실.

◇ 김현정> 아니, 아들 생각하면. 저는 아는 얘기인데도 다시 들으면 눈물 나거든요. 어떻게 어머니가 안 우실 수가 있습니까?

◆ 전순옥> 눈물을 안 보이겠다고 스스로 결심을 하고 나와서 눈물이 나면 몰래 혼자 나가서 우시고 화장실에 가서 우시고 그러면서 그 강인함과 아들의 뜻을 꼭 내가 이루겠다고 3번이나 약속한 그 약속을 내가 지키겠다. 그러면서 40년을 거리에서, 투쟁 현장에서, 그리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또 감옥에서. 경찰서에 390번을 잡혀가셨대요.

◇ 김현정>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대단한 어머니 밑에 대단한 아들이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머님이 2011년에 돌아가셨던가요?

◆ 전순옥> 2011년 9월에.

◇ 김현정>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 전순옥> 저희 어머니 고혈압이나 당뇨는 있었는데 그날까지도 한진, 울산에서 한진 노동자들이 올라와서 점심도 같이 드시고 다 했어요. 뜨거운 날이었는데. 그런데 저녁에 한 10시쯤 다 돼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심근경색으로.

◇ 김현정> 갑자기 돌아가셔서 더 안타까우신.

◆ 전순옥> 병원에서 49일 딱 계시다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50주기 버들다리 축제에서 전태일 재단 이수호 이사장(오른쪽)과 서울봉제인지회 이정기 지회장이 전태일 동상에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그렇습니다. 가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얼마나 나아졌는가, 지금을 생각해 봐야 되는데 이런 노력들이 바탕이 돼서 많이 바뀌었어요. 많이 좋아졌습니다마는 여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런 곳들도 있을 겁니다. 어디를 주목해야 합니까?

◆ 전순옥> 저는 우리가 주목하고 관심 가져야 될 곳은 아직까지도 70년대 그 당시와 똑같은 노동 현장이 존재하고 있다.

◇ 김현정> 어디가 그래요?

◆ 전순옥> 비정규직 그리고 협력단체에서 원하청 관계에서 하청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그리고 비조직화 된 노동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어떠한 근로기준법에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러다가 김용균 노동자도 발전소에서 일하다가 혼자 죽었죠. 구의역에서도 가방에 라면 하나 들고 다니다가 그것도 못 먹고 거기서 죽었죠. 요즘에 또 우리나라가 비대면 시대로 바뀌면서 배달하시는 분들, 택배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고. 지금도 일일 7명씩 산재 노동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 김현정> 다양한 형태의 어떤 노동 현장, 시스템들이 생기면서 우리가 못 보는 사각지대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 전순옥> 사각지대가 더 심각합니다, 지금.

◇ 김현정> 그곳은 여전히 70년대다.

◆ 전순옥> 네.

◇ 김현정> 여러분, 50주기. 전태일 열사의 뜻을 기리면서 우리가 지금 돌봐야 할 곳들은 어딘지 되새기는 한 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순옥 박사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 전순옥> 감사합니다.

◇ 김현정>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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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기독교방송은 역사가 유구한 편이다. 오랫동안 라디오로, TV로, 신문(무가지)으로 다양한 매체를 섭렵했고, 시사나 정치에 있어서는 기울어짐 없다 보일 정도로 알릴 건 알리는 매체다.

신천지와의 악연은 기독교인들이 선호하는 매체다 보니 신천지의 실태를 폭로하는 기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CBS 관찰보고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타방송사에서는 다루지 못할 내용이기도 하고, 테러를 자행하는 위험한 집단에 대한 용감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https://youtu.be/Kn1GK2rDD10 

(시리즈가 있어, 꼭 보길 바란다. 신천지인이라면...)

 

 

그렇게 펼쳐진 악연은 어느 한쪽이 없어져야 끝날 일이다. 놀랍게도 신천지는 목동 CBS방송국 앞에서 대규모 집회, 시위도 하고, 세력을 과시하는 행동들을 하며, 위해를 가하는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그렇게 언론과 종교가 맞장을 뜨는 모양새를 보이더니, 코로나로 전세가 말할 수 없이 바뀐 것이다.

미리 예견된 건지 CBS는 이미 신천지의 행태에 대해 알고 있는 언론이고,신천지는 코로나 취약 집단으로 전국민의 질타를 받게 됐다.

 

결국 이만희 교주가 수감 재판을 받게 되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사기란 그런 것이다. 거짓말을 돌려막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도 역시 거짓으로 맹신도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전위부대화시켜 재판방청권을 타종교집단이나 일반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놈팽이인지, 직업이 없는 건지, 대기하고 있다가 뛰어들어가는 충성심을 발휘하는 모습이 또한 언론에 포착되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여러 모습을 추태로 보여준 사교집단, 사이비교주의 말로를 보게 될 것 같은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분들은 과연 일련의 사건들을 어떻게 호도하며 거짓을 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http://cbs.kr/6pAL7u 

 

540만원 있던 이만희 통장…어떻게 수십억원 쌓였나?

감염병예방법 위반,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단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지파장들로부터 요트 구입비, 해외 출장비 명목 등으로 헌금 수십억원을 전달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11일 수원지법

m.nocutnews.co.kr

540만원 있던 이만희 통장…어떻게 수십억원 쌓였나?

 

요트 구입비, 해외 출장비 명목으로 지파장들에게 금전 요구
지파장들, 요트 구입비용 등으로 수백만원에서 수억원 전달

이단 신천지 이만희 교주(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감염병예방법 위반,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단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지파장들로부터 요트 구입비, 해외 출장비 명목 등으로 헌금 수십억원을 전달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11일 수원지법 형사11부(김미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교주의 10차 공판에서 검찰은 그의 통장 입·출금 내역을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이 제시한 입·출금 내역에 따르면 2010년 12월 8일 이 교주 명의로 된 은행 계좌의 잔액은 540만원에 불과했다.

이후 수십차례에 걸쳐 수백만~수억원이 입금돼 2016년 12월 22일 잔액은 3억1235만원으로 불어났고, 이 돈은 모두 또다른 통장으로 옮겨졌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돈이 옮겨진 통장은 신천지 명의로 개설됐지만, 검찰은 이 교주가 횡령을 위해 통장을 개설해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교주 개인 명의 통장으로만 모두 11억원 가량의 수표, 현금이 입금됐고, 이 교주의 본처이자 대리인인 유천순씨가 지난해 8월 30일 통장에서 14억6천만원을 출금한 정황도 포착했다.

이 교주는 지파장들에게서 금전을 받아 통장에 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13년 각 지파장들에게 "고성리 집(가평 평화의궁전)을 다 지으면 지파마다 깃발을 달고 북한강에서 배를 띄어야 한다. 각 자파마다 배를 살 돈을 내라"고 지시했고, 실제 맛디아 지파장으로부터 수표 1억3천만원을 전달받았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또 해외 선교 활동을 진행하면서 수십차례에 걸쳐 적게는 200여만원에서 많게는 1천여만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이 교주에게 전달된 돈은 대부분 지파장 개인돈이 아닌 헌금인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피고인은 김남희가 계좌를 사용했을 뿐 본인하고는 전혀 상관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남희가 자신이 쓰지도 못하는 돈을 받아 피고인 명의로 입금해 대리인인 유천순이 쓰게한 것인데 납득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교주 측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는 김남희의 시각에서만 바라본 것"이라며 "일부 돈을 받은 것은 맞지만, 피고인은 이 돈이 교회 헌금이라는 사실은 몰랐다"고 반박했다.

(사진=자료사진)

이 교주는 신천지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 2월 신천지 간부들과 공모해 방역 당국에 신도 명단과 집회 장소를 축소해 보고한 혐의(감염병예방법 위반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구속기소 됐다. 또 신도 10만여 명의 주민등록번호 정보를 제출 거부하는 등 자료를 누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신천지 연수원인 평화의 궁전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50억여원의 교회 자금을 가져다 쓰는 등 56억원을 횡령(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하고,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방자치단체의 승인 없이 해당 지자체의 공공시설에서 종교행사를 연 혐의(업무방해)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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