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실무진들 "은행장 보고 없었다" 진술
채용비리 후에도 회장 자리 굳건…진술 믿을 수 있나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주]
2020.2.12. 서울서부지법 하나은행 채용비리 공판 중 변호인 발언 |
"초반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잘못된 진술이 있었습니다. … 채용 추천을 받았고 중간에 은행장에게도 보고했다는 부분인데요. … 은행의 채용 기준을 제시하고 총 채용인원을 확정하는 것은 은행장의 전결이지만 채용 과정상에서는 인사부장의 전결로 합니다." |
공들여 쓴 자기소개서에 각종 필기시험, 2~3차례 걸친 실무면접·합숙면접에 임원면접까지…. 공정할 수 밖에 없다고 믿었던 대형 시중은행들에서 발생한 채용비리, 기억하시지요? 2018년 6월 대검찰청은 각 지방검찰청 수사를 통해 우리·하나·KB국민·부산·대구·광주 총 6개 시중은행에서 조직적인 채용비리 695건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총 40명을 기소했는데 그해 10월엔 신한은행 채용비리도 마저 확인돼 조용병 회장을 포함한 8명이 추가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후 은행별로 채용비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만 1심에서 대부분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된 상황입니다. 꼭 실형만이 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불공정한 채용으로 많은 취업지원자들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고 사회 전반의 충격도 컸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결과죠.
(사진=2018년 6월 30일 대검찰청 반부패부 '은행권 채용비리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자료 갈무리)
2018.6.18. 대검찰청 반부패부 '은행권 채용비리' 중간수사 결과 발표 |
"채용청탁이 있었던 특정 지원자를 위하여, 서류전형, 필기시험, 면접전형(실무자면접, 임원면접) 과정에서 수회에 걸쳐 중복적으로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킨 경우가 대부분 은행에서 확인됨." |
더욱 황당한 점은 당시 인사팀 실무자들과 채용의 총 책임자였던 은행장들이 사퇴하거나 문책을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승장구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함영주 하나은행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연임됐고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신한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함께 기소된 실무자들은 물론이고, 기소되진 않았지만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는 당시 인사업무 관계자들도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인 셈이죠.
특히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하나은행의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CBS노컷뉴스가 금융권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종합하면, 피고인인 강모 인사부장(현 본부장)과 송모 인사부장(현 본부장), 같은 부서에 있던 박모 인사팀장(현 팀장), 오모 차장(현 부장)은 채용비리가 발생했던 2013~2016년 전후로 승진했고 기소된 후로도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이들 중 일부만 현업에서 배제된 상태이고 함 부회장은 올 상반기 중에도 은행 내부 직무 이동발령이 나는 등 활발히 근무 중입니다.)
당시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이모 차장(현 부장)과 김모 대리(현 과장)는 2018년 채용비리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후로 승진했습니다. 이들은 기소되진 않았지만 최근 공판에서도 계속 이름이 거론되는 중요 관계자들 입니다. 특히 김 대리는 30대 초반임에도 과장으로 역대 최연소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하나은행 직급은 행원(행원·대리)-책임자(과장·차장)-관리자(부장·지점장 등)로 나뉘는데, 40대 대리가 매우 흔할 만큼 책임자급 승진이 어려운 조직입니다.)
실제로 재판에서는 실무자들이 은행과 은행장에게 유리한, 혹은 자신에게는 불리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2월 서울서부지법 공판에서 피고인 측은 '각 채용단계별 필기나 인·적성 시험, 합숙면접 단계의 합격자에 대해서는 은행장의 의견이 들어가지 않고 강 본부장 책임으로 진행됐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증인들의 진술도 비슷합니다.
2020.7.10. 서울서부지법 하나은행 채용비리 공판 증인신문(2015~2016년 채용 합숙면접관 담당 A 인사부 차장) |
변호인 "합숙면접 조에서 2등을 한 지원자 A씨의 경우, 서류면접상 스펙 점수 미달로 송 부장이 사정(조정)을 통해 합격 처리했는데 왜 합숙면접 결과와 서류면접 결과의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났다고 생각하나요?) 증인 "서류심사관이 무성의했거나 편협한 시각으로 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중략)… 면접관의 점수가 존중돼야겠지만, 은행에서 특별히 필요한 인재들을 채용하기 위해 사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
A 차장은 2017년 금융감독원에서 검사를 나왔을 때 '추천리스트'라는 것의 존재를 처음 알았으며, 면접관이 아닌 인사부에서 점수를 변경 및 사정(조정)한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조정에 큰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A 차장도 올해 관리자급인 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하나은행 외에도 조용병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이나, 채용비리 당시 은행장이었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현직에 있는 KB국민은행 사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재판부가 피고인이나 증인들이 처한 상황과 진술의 신빙성까지 종합적으로 따져 유무죄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반인의 눈에서는 이번 재판이 마치 큰 '연극'처럼 비춰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20대는 영문도 모른 채 탈락해 계속 취업시장을 전전해야 했는데, 정작 그 장본인들은 법정과 직장에서 "그리 큰 잘못은 아니었다"고 입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연극의 결말이 부디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기를 바랍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