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SI 업체에 취업 성공했다.
지금으로 부터 약... ??년 전의 일이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학교에서는 축제(?)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이곳 저곳에서 술판을 벌이기도 하고,
행사를 준비하고 찾아온 친구들을 응대하느라 바빴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는 형이 맥킨토시를 전시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부스를 열어서
거기서 도와주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조교 형님이 황급히 나를 찾았다.
면접 빵구가 났으니(결원이 발생했으니...), 너라도 지금 면접 보러 가라는 거였다.
땜빵???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되겠어? 하면서 주섬주섬 챙겨서
찢어진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당시 모친께서는 면접을 봤다고 말씀드렸더니,
당장 양복을 사러 가자시며
어딘가로 날 데려가시더니 콤비 양복을 사주셨다. (로가디스???)
'아직 결과도 안나왔는데 옷부터 사면 어떡해?' 생각했지만
모친의 발빠른 대처가 정답이었던 것처럼
전혀 준비없이 갔던 면접에서 덜컥 1차 합격을 하고 말았다.
2차 면접이 또 있었다. 장차 동기가 될 친구/형님들과 함께 간단한 적성검사, IQ테스트(?)를 거친 뒤
당당히 2차 면접에도 통과해서 합격, 채용되었던 것이다. (짝짝짝~)
당시는 IMF 가 있기 전이라 나름 경제, 시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인생 최대 변화의 시기였다는 걸 되돌아보며 느낄 수 있다.
영업 쪽으로 빠진 동기도 있었고, SI사업팀, IBM서버운영팀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배치되었다.
금융사업부가 있었고, ERP, 제조업체 전산시스템 유지보수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회사인 걸
신입이(?) 활동 중 분위기를 살피고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 SI 회사 정직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당시 많았던 지방 은행 전산실로 가게 됐다.
행원이 된 것이 아니라 SI, SM만 해주는 역할이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도 관련해서 먹고 (쿨럭) 살고 있다.
IMF 직격탄을 그대로 맞은 회사는 휘청거렸다.
아마도 방만한 경영을 한 것도 문제였던 것 같고,
그룹사에서 긴급히 소방수를 투입시켜 정상화시키려고 했으나,
원만하게 정리되진 않고, 축소의 축소를 거듭해서
작은 회사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를 기억해보니,
꿈도 희망도 없어진 듯한 요즘과 비슷한 상황(코로나 경제 폭망과는 좀 차이가 있지만서두...)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동기 중에는 여러가지 사건으로 회사를 그만 두는 친구도 생겼고,
사기 치다가 걸려서 회사를 그만 두는 친구도 생겼고,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났다.
선배들 중 상당 수도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놀랍게도 그 선배들 중 ??년이나 지나서 만난 선배도 있다.
이 바닥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회전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두번째 큰 기회가 왔다.
군대를 갈 것인가, 병역특례를 받을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고민이 됐다. 군대를 갈 수도 있는 거고, 회사에 그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병역을 마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쿨럭~~~)
결론은 병역특례를 받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직 취득하지 못한 조건을 위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영끌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특례를 받고 회사에 동기 중 가장 오래 남은...
집안 일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다.
그리고...... (중간 생략)
그리고, 다시 취업을 위해 고민하게 되었다.
JOBKOREA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과거 ○○은행 전산실 경험은 또 다른 기회를 허락받게 되었다.
○○은행이 인수합병, 인수합병을 거쳐서
□□은행이 되었는데, 그 은행에서 다시 SI를 시작하게 되었다.
거기서 ○○은행 전산실에서 같이 있었던 은행 형님들 다시 만나게 된다.
어렵사리 면접을 통과하고 서울살이가 시작되었고, 이사까지 하게되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은행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은행에서 봤던 또다른 은행 형님을 만나게 되고
또 다른 프로젝트로 투입되어 끊임 없이 SI, SM 을 하게 된다.
그 뒤 여러 형님들, 누님들, 친구들, 후배님들의 도움을 받아
알음알음으로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빠지고 또 투입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긴 세월을 버텨오게 되었다.
(사기꾼 같은 (헤드헌터) 업체들이 없지 않음을 실감한 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 식솔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필자는 거의 쉼없이 일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끝나면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도 있고,
1달 정도, 2,3달 정도 쉬다가 지루해질만하면 다시 일하는 친구도 있었다.
가장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일부 친구들은 살고 있었다.
부러웠지만 그들의 인생이니,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거라.
게다가 프로젝트에서 여러 부류를 만나게 되었는데,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이 많은 것이 신기했다.
나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은 어느 정도 틀리지 않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살아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오래오래 버텨 주는 형님들을 만나면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또 어떤 분은 프로젝트 도중 몸이 아프다는 핑게로 지방 병원에 입원하시는 분도 있었다.
또 어떤 분은 욕하고 싸우고 나가시는데, 후문에 한 두 번이 아니셨다고 한다.
장기간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계약을 했더니, 갑자기 후속 프로젝트가 연결되지 않아 중도 하차한 경우도 있고,
힘든 프로젝트라고 해서 단단히 각오하고 갔더니, 생각보다 널널해서 웃음을 감추지 못한 경우도 있고,
이전 하던대로 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대박 팀을 만나서 똥 치우다가 죽을 뻔한 적도 있고,
같이 일하던 잘안다고 생각한 형님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경우도 있다.
혹시나 했지만 책상에 올려져있는 국화꽃을 보고서 황망했던 돌아가시 전의 그 형님의 눈빛이 떠올라 암울하기도 했고,
건너 건너에서 일하던 친구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화장실 청소하시는 여사님께서 화장실 청소를 해야하는데,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며 발을 동동 구르셨으나
저녁 야근을 하려고 동료를 늦게사 찾던 전화로 이미 고인이 되신 개발자를 끌어낸 것을 직간접으로 보기도 했다.
같이 술마시고 퇴근한 뒤 아침에 출근하지 않은 형님이 계셔서 직접 찾아갔더니
누운 채로 일어나지 못하신 형님도 계셨다.
불과 1,2주 전에 같이 회식했던 형님이셨다.
게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암울해하던 형님도 늙은 노모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셔서
출근안하신 경우도 있어서 적잖이 놀랬던 기억도 있다.
프로젝트에서 똥을 밟아 겨우겨우 끝내긴 했지만 병을 얻어 입원한 친구도 보았지만,
공동 책임이 없지 않아서 매우 미안한 적도 있었다.
되지도 않을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사람 투입시켜놓고 대책없이 잘해보라고 권하는 사장도 만난 적이 있고,
투입된 프로젝트에서 스펙이 맞지 않으니 철수하시라고 해서 벙 찐 적도 있었다.
일을 좀 나눴으면 잘됐을 업무를 굳이 자기 직원들 편하게 해주려다가 똥을 선물하는 사장도 만난 적이 있고,
일 잘하는 줄 알았던 업체가 알고보니 잘하는 팀이 아닌 다른 팀이 와서 폭망한 경우도 봤고,
노련하게 일하는 형님이 캐파를 제대로 파악해서 훅 처리해놓고 좀 편하게 마무리 짓는 경우도 봤고,
업체와 사바사바 해서 대략 덮어놓고 다음 프로젝트에 얹어서 처리해주겠다고 협상하는 형님도 봤고,
10년 20년은 너끈하게 한 은행에서 SM하고 계신 형님들 누님들은 정말 존경스러워보이기도 했다.
은행직원들보다 짬밥이 더 있어서 혹시나 그만두실까봐 조바조바해하는 형님들 누님들인데,
어떻게 생각하면 늘 보직이 움직이는 행원들보다 붙박이 SM 들이 더 좋은 조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출산을 한 뒤에 경력단절이 있었지만 잘 쉬다가 애 좀 크면 다시 컴백해서 훌륭하게 프로젝트하는 누님들도 많이 봤고,
출퇴근이 일정치 않아서 결혼을 못한, 때를 놓친 형님 누님들도 많이 봤다.
뭣도 모를 때 결혼은 해두는 것이 안전빵인데 말이다. (LIKE ME)
일은 뒷전이고 뒷담화에 열심인 분들도 만난 적이 있는데, 이런 분들이 오히려 오래 살아남는 경우도 봤다.
어떻게 정치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신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편한 보직에 오래오래 계신 분도 봤고,
평범한 어르신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은행 전산실에서 정년퇴임하신 분도 만나봤고,
은행 다니다가 명퇴한 뒤 SI에 뛰어들었다가 신세한탄하시는 형님도 봤고,
신세한탄하다가 SI업체 차려서 돈버는 형님도 봤고,
자녀와 아내는 해외에 보내놓고 홀로 기러기아빠가 되어 퇴근도 안하고 일하다가 술 한잔하면 주정하시는 형님도 봤고,
써놓고 보니, 정말로 다양한 군상들을 만나봤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연히 IT관련 칼럼을 보다가 몇십년을 되돌아보게 되어서 기분이 울적하기도, 감사하기도 하다.
쉽지 않은 IT업계에 어떻게든 붙어있어서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라는, 경제는, 부침이, 기복이 있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심지어는 자녀에게도 IT를 권할만큼 나름 먹거리, 일거리로서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술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수도 있는 IT는 그나마 양반이다 싶었다.
더 큰돈을 벌거나 기회가 더 많은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그게 다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뭐라 단정 짓기는 좀 그렇기는 하지만 말이다.
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1/06/2020110600350.html
구직자의 보유기술에 맞는 포지션 제안
자바 기술자 구하는데 자바스크립트 개발자를 추천하면 당연히 실패한다.
제안 기업과 근무지에 대한 공개
채용을 진행 중인 기업에서 공개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고 그런 경우엔 어쩔 수 없지만 어디에 있는 어느 회사인지도 모른 채 지원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요구하는 기술 분야
예를 들어 프론트엔드, 백엔드, 서버 등 개발 분야가 명시되어야 한다.
요구하는 스킬 명시
기업에서 사용하게 될 개발 도구와 인프라 환경(클라우드인지 망분리인지 온프레미스인지 등) 업무상 필요한 프로그래밍 언어 및 프레임워크에 대한 내용을 명시해야 해당 업무가 가능한 인력을 찾을 수 있다.
자격 요건에 맞는 제안
채용을 진행하는 기업에서 10년 이상 경력의 풀스택 개발자로서 PM역할까지 할 수 있는 인원을 찾는데 5년 경력의 개발자를 면접에 데려다 놓으면 모두가 난처해진다.
연봉 조정 여부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개발자에게 얼마 이상의 연봉으로 협상 가능하다고 해서 면접갔더니 회사 측에서 제시한 금액은 전혀 다른 경우가 의외로 많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