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인 공방은 안타깝게도 진실과는 멀 때가 있을 것이다. 주어진 증거로 판단을 하기 때문이고, 셜록홈즈 같은 수사관이 현실에는 없다는 것이 문제다.
완벽한 살인용의자였던 A순경은 임 복역했고, 안타깝게도 좋지 못한 결말을 맞으셨단다.
법적인 허술함이 사람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그런 사건이 허다할 것이다. 현재는 진실하다, 정의롭다 생각하고 싶겠지만, 뭔가 잘못된 시각으로 판단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거나,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벌을 받거나 할 수 있고, 그 보상은 어디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법이란 것이 왔다리갔다리 하는 나라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정말 감옥에 가거나 사형당해야 할 인물들은 두발로 활보하고 다니고 있고, 선의의 피해자들은 받지 않아도 될 불이익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깝다.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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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 (법무법인 지혁 대표변호사)
탐정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 봅니다. 탐정 손수호. 손수호 변호사 어서 오세요.
◆ 손수호>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오늘 우리가 들여다볼 사건은 뭔가요?
◆ 손수호> 1992년 서울 관악구 한 여관에서 발생한 ‘A순경 사건’입니다.
◇ 김현정> ‘A순경 사건’, 이렇게만 들어서는 어떤 사건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 손수호>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우리나라 사법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고 싶습니다.
◇ 김현정> 사법 역사상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꼽고 싶을 정도의 사건이에요?
◆ 손수호> 세상에는 참 별일이 다 생길 수 있다는 걸 이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또한 사건 뒷얘기도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요. 특히 최근 재심을 통해서 무죄 받은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잖아요.
◇ 김현정> 맞아요. 낙동강변 살인 사건이나 이춘재 살인 사건 이런 것들.
◆ 손수호> 그렇습니다. 낙동강변 살인 사건은 31년 만에 무죄, 윤성여 씨는 32년 만에 무죄. 그 외에도 간첩 조작 사건, 제주 4. 3사건 등등 최근 계속 나왔죠.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접할 때 제일 위험한 생각이 어떤 거라고 보세요?
◇ 김현정> 사건 접할 때 제일 위험한 거? 단정하는 건가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딱 봐도 범인이다. 안 봐도 뻔하다. 보나 마나 유죄다, 빨리 사형시켜라.” 이런 반응이 가장 위험하죠. 섣부른 단정으로 인해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상황이 꼬이면 정말 얼마나 괴로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지를 오늘 이 A순경 사건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 김현정> 상황이 꼬이려면 어디까지 꼬일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 손수호> 네. 사실 이 사건이 간단하지 않아요. 그래서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한데, 오늘 15분 만에 다 해야 하니 걱정이 됩니다.
◇ 김현정> 늘 그래요, 늘.
◆ 손수호>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이 이야기는 하고 싶은데요. 이 사건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자는 게 아니에요. 수사와 재판이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정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 김현정> 물론이죠.
◆ 손수호> 그런 목적 달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만 이야기하겠습니다.
◇ 김현정> 도대체 어떤 사건이기에 이렇게 손 탐정이 중요하다 강조하시는지 차근차근 한번 들어가보죠. 1992년 11월로 갑니까?
◆ 손수호> 네. 11월 29일 오전 서울 관악구의 한 여관에서 여성 투숙객이 목 졸려 살해당했습니다. 사망자는 당시 18세의 주점 종업원이었어요.
◇ 김현정> 18살이요?
◆ 손수호> 네, 그리고 같이 투숙했던 남자가 경찰에 신고했는데요, 바로 그 남자가 용의자로 지목됐어요. 놀랍게도 인근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현직 경찰, A순경이었습니다.
◇ 김현정> 현직 경찰이 18살 주점 종업원과 숙박했다가 그 여성이 살해된 걸 발견해서 신고를 했다, 경찰이?
◆ 손수호> 그렇습니다. A순경은 경찰에서 자신이 죽였다고 자백했어요. 사건이 해결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자백을 번복했고 계속해서 억울함을 호소했죠.
◇ 김현정> 자백까지 했으면 뭐 끝난 사건 아니에요?
◆ 손수호> 그래서 검찰이 살인죄로 기소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A순경은 89년 임용된 다음에 한 파출소에서 근무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91년부터 교제하던 피해자와 결혼하려 했어요.
◇ 김현정> 그 여성과 결혼하려고 했는데.
◆ 손수호> 하지만 가족이 반대했고 또 피해자의 행실 문제 등으로 단념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가끔씩 만났는데요.
◇ 김현정> 그러니까 애인 관계였다는 거잖아요. 남자친구, 여자친구.
◆ 손수호> 네, 그랬던 거죠.
◇ 김현정> 그러면 피해자가 죽은 그날 구체적으로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되겠네요.
◆ 손수호> 네,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요약해 보겠는데요. 92년 11월 28일 밤 10시경 A순경은, 할 얘기가 있으니 만나자는 피해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 김현정> 여자친구 전화 받고.
◆ 손수호> 그리고 자정 지나 날이 바뀌고. 휴무시간이었던 11월 29일 새벽 3시 20분경 만나서 잠깐 돈 얘기 나누고 여관에 함께 투숙했어요. 그 후 피해자에게 추가 성관계를 요구했는데 거절을 당하니까 화가 나서 때렸다.
◇ 김현정> 여러분, 이건 검찰의 공소장 내용입니다.
◆ 손수호>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피해자가 “결혼할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요구를 하냐. 너 결혼해서 딸 낳으면 내 신세처럼 될 거다.” 이런 악담을 퍼부었다.
◇ 김현정> 그래서 화가 나서 죽였다는 게 공소사실이에요?
◆ 손수호> 네. 침대 위에 쓰러뜨리고 배 위에 올라타서 양쪽 무릎을 양팔로 눌러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주먹으로 얼굴 때리고 한 손으로 이마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휴지 들어 입과 코를 막았다. 그런데 계속 대드니까 양손으로 목을 수 분간 눌러 살해했다는 겁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러니까 피해자가 목 졸려 살해된 건 팩트고.
◆ 손수호> 네.
◇ 김현정> 그렇다면 관건은 그게 누구냐잖아요. A순경이냐 아니면 제3의 인물이냐. 이걸로 좁혀지는데.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A순경이 그랬다는 거고, 여기에 대해서 A순경은 뭐라고 반박했어요?
◆ 손수호> “외부 침입자가 피해자를 죽였을 거다. 나는 억울하다.” A순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요. 성관계 요구한 건 맞지만 거절하니까 단념하고 잤다. 자다가 새벽 6시 55분경 여관 주인의 인터폰 소리에 깨서 같이 나가자고 했지만 더 자겠다고 해서 여관 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파출소로 출근했다. 근무 다 마친 다음 오전 10시경 피해자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다시 여관으로 와서 방문을 두드렸는데 소리가 없어서 카운터 가서 열쇠 받아서 방문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서 숨져 있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을 뿐이다.
◇ 김현정> 외부 침입자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어떤 다른 증거가 있었습니까?
◆ 손수호> 침대 위에서 A순경 것이 아닌 희미한 족적 2개가 발견됐고요. 또 혈액형도 이상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모두 A형이에요.
◇ 김현정> 남녀 다 A형.
◆ 손수호> 그런데 침대에서 혈액형 B형인 체모가 발견됐고, AB형인 정액이 묻은 휴지도 발견됐습니다. 또 수표도 문제였는데요. 당시 피해자가 10만 원권 자기앞수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2장을 누군가 은행에서 현금으로 교환해 갔어요. 그런데 A순경은 사건 당일 조사받다 구속됐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그걸 바꿨다는 얘기인데, 바로 그 사람이 침입해서 훔쳐간 거 아니냐. 이런 주장을 편 거죠.
◇ 김현정> 외부 침입자 가능성은 이런 근거들이 있고. 그러면 A순경 말이 맞으려면 또 한 가지 걸리는 게 시간이에요. A순경이 출근하러 나간 아침 7시 이후에 피해자가 사망했어야 하는 거잖아요. 사망 시각 부분은 어땠습니까?
◆ 손수호> 그렇습니다. 감정을 해 보니 사망 추정 시각이 새벽 5시 이전으로 나왔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 손수호> A순경 본인 주장에 따르더라도 7시에 나갔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사망 추정 시각인 새벽 5시 이전에 피해자와 객실에 함께 있던 사람은 A순경 한 명이다. 따라서 A순경이 범인일 수밖에 없다.
◇ 김현정> 그런데 아까 처음에 그러셨잖아요. 자백을 했다고. 그럼 자백한 것은 검찰이 아니라 경찰 단계에서 한 거예요?
◆ 손수호> 네, 자백을 번복한 후 그 이유도 설명했어요. 형사들이 같은 경찰인데도 정황 증거 들이대면서 다그치고, 자백하면 감형 도와주겠다고 회유했다.
◇ 김현정> 회유를 했다.
◆ 손수호> 조사하면서 잠도 안 재웠고 심지어 검사가 손찌검도 했다는 주장도 했는데요. 또한 피해자와 관계가 원만했기 때문에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했죠.
◇ 김현정> 자백을 번복했는데, 그럼 이후 재판 결과는 어떻습니까?
◆ 손수호> 1심 유죄 판결. 징역 12년. 그리고 항소했지만 기각. 2심에서도 징역 12년형이 유지됐습니다. 판결문을 다 봤는데 1, 2심 판결문이 각각 9쪽이에요. 앞뒷장 빼면 실제 내용은 7쪽이고요.
◇ 김현정> 사람이 살해된 사건인 것에 비해서는 굉장히 내용이 적어 보이네요.
◆ 손수호> 굉장히 단호했습니다. 결국 검찰에 이어서 법원도 두 번이나 A순경을 살인범으로 본 거죠.
◇ 김현정> 지금 유튜브와 레인보우 앱 통해서 1심 판결문 첫 페이지 보여드리고 있는데요. 피고인을 징역 12년에 처한다고 되어 있네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검찰도 이렇게 단호하게 생각하고 법원도 두 번이나 살인범으로 본 근거가 있을 거 아니에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우선 외부 침입자는 없었다고 봤어요. 즉 밤새 카운터에 여관 주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 여관 주인이 외부인 출입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족적하고 그 다른 사람 체모나 혈액형, 이런 거는요?
◆ 손수호> 족적은 경찰이 현장에서 부주의하게 조사하다가 만들어진 거다.
◇ 김현정> 경찰 거고.
◆ 손수호> 그리고 여관은 원래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곳이고, 여관 주인이 청소를 대충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니 다른 투숙객의 것이라고 판단한 거죠. 또 사망 시각 추정도 매우 중요했는데요.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음식을 먹은 게 새벽 2시였다. 그런데 부검 결과 위장 내용물이 황색의 죽 형태인 걸 보면 식후 2~3시간 후에 사망한 것이다. 따라서 사망 시각은 사건 당일 5시 이전이다.
◇ 김현정> 5시 이전에 그 여관을 드나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 A순경은 언제 나갔냐? 7시에 나갔다. 그럼 A순경이 범인이다. 이런 거네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손가락, 발가락까지 굳는 등 강한 시체경직이 있었고, 시반도 그렇다는 거죠. 이렇게 1, 2심 모두 단호하게 살인범으로 판단했고, A순경은 억울하다며 상고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반전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거든요.
◇ 김현정> 그렇네요. 아니, 지금까지 솔직히 얘기 들으면 끝난 상황 같은데요?
◆ 손수호> 그런데 여기서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 김현정> 엄청난 일이 뭡니까?
◆ 손수호> 93년 당시 연말연시 단속 강화 기간에 경찰이 당시 19살이던 서 모군을 잡았어요. 그리고 여죄를 추궁했습니다. 그런데 서 군이 고민하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서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은 겁니다.
◇ 김현정> 설마?
◆ 손수호> 그날 아침 7시 30분경 그 여관에 들어가서 여성을 목 졸라 살해했다고 말 한 겁니다.
◇ 김현정> 세상에. 아니, 이것 때문에 잡은 게 아니라 다른 걸로 단속하다가 걸렸는데 살인을 자백 한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진범이 나타난 거예요, 말하자면?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손 탐정님, 아까 사망 추정 시각이 결정적인 근거였는데. 5시 이전이었다면서요?
◆ 손수호> 네.
◇ 김현정> 그런데 이 사람은 7시 30분에 여관에 들어갔다면, 이게 앞뒤가 안 맞잖아요.
◆ 손수호> 아주 간단합니다. 사망 시각 추정이 잘못됐습니다. 틀린 겁니다. 아주 간단하죠.
◇ 김현정> 그러면 7시에 A순경은 나가고 그 다음 진범이 들어왔다?
◆ 손수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여관 주인은요? 여관 주인이 카운터에 계속 있었는데 아무도 못 봤다면서요.
◆ 손수호> 이것도 간단합니다. 여관 주인이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사실은 아침에 뉴스 보느라고 누가 들어갔는지 제대로 못 봤고 말을 바꿨습니다.
◇ 김현정> 내가 계속 앉아있긴 했지만 뉴스 봤다?
◆ 손수호> 네.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도 간단하게 달라진 거죠.
◇ 김현정> 세상에, 당황스럽네요.
◆ 손수호> 진상을 들어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진범이 길을 걸어가다 우연히 그 여관 그 방 열쇠를 주은 거예요.
◇ 김현정> 그 호실 열쇠를 주웠어요.
◆ 손수호> 그런데 보통 여관에는 오전 시간에 사람이 없으니까, 열쇠 주은 김에 몰래 거기 들어가서 씻고 나오자.
◇ 김현정> 씻고 나오자.
◆ 손수호> 그래서 7시 20분경 그 방에 들어간 겁니다. 그랬더니 자고 있던 피해자가 놀라서 소리를 지른 거죠. 그래서 목 졸라 죽이고 핸드백에 있던 돈과 수표를 가져갔다는 겁니다. 진범이 사건 현장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요, 결정적으로 침대에 찍힌 족적 길이가 진범의 발 크기와 일치했어요.
◇ 김현정> 그 족적이 진범 거였던 거예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희미했지만 알고 보니 진범 발자국이었던 거죠.
◇ 김현정> 그럼 체모는요?
◆ 손수호> A순경 체모가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수표도 문제됐는데, 진범이 훔쳐간 수표 금액과 잃어버린 금액이 일치했고요. 당시에 수표를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꾸면서 뒷면에 이서했는데, 그때 이름을 ‘수한남’으로 적었어요.
◇ 김현정> ‘수한남’?
◆ 손수호> 그런데 확인해 보니 ‘남한수’라는 사람이 여관 근처에 실제로 살고 있었고, 그 사람은 진범의 지인이었습니다.
◇ 김현정> 거꾸로 쓴 거네요.
◆ 손수호> 네. 그렇게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간 거죠.
◇ 김현정> 세상에. 그러면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졌어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대법원이 무죄로 보고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이후 무죄 판결이 선고되면서 정말 하늘이 도와서 누명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그 연말연시 단속 강화 기간에 진범이 걸리지 않았더라면, 평생 살인범 누명 쓰고 지냈겠네요.
◆ 손수호>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데요. 1, 2심은 다양한 무죄 근거들을 모두 배척하고 간결하고 단호하게 A순경을 살인범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문은 완전히 달라요. 하나하나 세세하게 무죄 이유를 밝혔습니다. 무죄 판결문이 더 자세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이건 당연한 일이죠. 왜냐, 대법원 판결 전에 이미 진범이 잡혔으니까요.
◇ 김현정> 그러니까요.
◆ 손수호> 진범의 자수가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주었을 거에요. 물론 당시 진범이 잡히기 전에 대법관들이 원심 판결 잘못됐고 피고인 무죄니까 다시 재판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았는데 진범이 잡히니까 거기에 맞춰서 판결을 내린 것인지. 제가 그 순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범이 우연한 기회에 드러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요? 억울하게 12년 옥살이 했을 가능성이 커요. 평생 살인범 누명 쓰고 살았을 겁니다.
◇ 김현정> 처음 시작할 때 손 탐정께서 성급하게 단정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 손수호> 1, 2심 판결문과 대법원 판결문을 꼼꼼히 비교 분석해 볼 필요 있어요. 하나의 동일한 사건인데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정보에 따라서, 마음가짐에 따라서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가. 얼마나 다른 내용의 판결이 나올 수 있는가. 이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 김현정> 또 있어요?
◆ 손수호> 뒷얘기도 참 서글픕니다.
◇ 김현정> 어떤 뒷얘기요?
◆ 손수호> 진범은 이 사건에서 강도살인으로 징역 7년형 받았는데요. 99년에 모범수로 광복절 특사 받아서 출소했습니다.
◇ 김현정> 출소했어요?
◆ 손수호> 네. 하지만 3년 뒤인 2002년에 또 다시 살인을 저지릅니다. 직장 동료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아들에게 덮어씌우려다 발각됐어요. 무기징역형이 확정이 됐는데. 그때도 경찰이 속을 뻔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A순경은 어떻게 됐어요?
◆ 손수호> 사실 94년에 한 공중파 TV 뉴스에 실명으로 누나와 함께 나왔습니다.
◇ 김현정> 억울한 사연으로요.
◆ 손수호> 네. 그때 이런 이야기도 했어오. “수사 받을 때 5일 동안 잠을 못 잤다. 소송 과정에서 1억 6,000만 원이나 썼다. 무죄로 풀려났지만 아직 복직이 안 돼서 파면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소송에서 이긴 다음 복직 가능했고 3년 후 퇴직했는데요. 그 후 큰 병을 치르는 등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억울한 일도 있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억울한 일이 다 있네요.
◆ 손수호> 사실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합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습니까?
◇ 김현정> 그러네요.
◆ 손수호> 재판이 잘못되었을 가능성 없다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도 재심 무죄 사건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진범 체포되지 않았으면 대법원에서 이런 판결 나왔을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억울한 일을 당한 그 당사자가 될 수도 있어요. 상상만 해도 무서운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부터라도 상식과 지성에 기초해서 모든 사건을 섣부르게 단정하지 말고 또 누군가를 성급하게 비난하면 안 되겠습니다.
◇ 김현정> 큰 교훈을 주는 사건이네요. 그리고 진범이 밝혀져서 다행이기도 하고요. A순경 사건 살펴봤습니다. 손수호 변호사 고맙습니다.
◆ 손수호>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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