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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2회 수상 강형원 "LA 폭도 방망이에 맞아죽을 뻔 LA폭동 단골손님 폭도로 돌변 약탈 폭동 당시 흉기 위협 받아가며 한인 피해 취재 귀국후 한국 문화 전세계 알리는 기록작업중

시사窓/국제

by dobioi 2021. 8. 1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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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사진 기자, 유명한 분이 나왔다. 

LA타임스, AP통신, 로이터통신에서 근무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 LA폭동, 9.11테러, 이라크전쟁 그리고 북한까지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어떻게 하다보니 귀한 직업을 갖게 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

 

해커들도 범죄를 저지르지만 아주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이렇게 전세계를 발로 뛰는 분은 어땠을지 상상해보면, 그리 빡빡하게만은 움직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좋은 직업이라고 특별히 분류할 수는 없겠지만 재미있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나름의 챙길 수 있는 걸 챙기면서 사는 게 좋은 직업이라 할 수 있다.

 

http://cbs.kr/6t4DTW

 

퓰리처상 2회 수상 강형원 "LA 폭도 방망이에 맞아죽을 뻔…"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손수호 변호사 (김현정 앵커 대신 진행) ■ 대담 :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귀한 분을 모셨습니다. LA타임스, AP통신, 로이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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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의 뉴스쇼

퓰리처상 2회 수상 강형원 "LA 폭도 방망이에 맞아죽을 뻔…"

 

  • CBS 김현정의 뉴스쇼 
  • 2021-08-12 09:44

 

 

LA폭동, 단골손님이 갑자기 폭도로 돌변해 약탈
폭동 당시 흉기 위협 받아가며 한인 피해 취재
귀국후 한국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기록작업중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손수호 변호사 (김현정 앵커 대신 진행)
■ 대담 : 강형원 (포토저널리스트)
 
귀한 분을 모셨습니다. LA타임스, AP통신, 로이터통신에서 근무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 LA폭동, 9.11테러, 이라크전쟁 그리고 북한까지. 목숨 걸고 현장을 발로 뛰면서 그 순간을 기록한 사진기자입니다. 모든 사진기자의 꿈이라고 불리죠. 퓰리처상도 받았는데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받았어요. 게다가 미국 백악관 전속 사진기자이기도 했습니다. 이게 오랜 시간을 북미에서 보냈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대단합니다. 사실 그래서 모셨습니다. 오늘 화제의 인물, 강형원 사진기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 강형원> 안녕하십니까?
 

 


◇ 손수호> 오늘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제가 명함을 좀 전에 받았는데 호입니까? '감로' 강형원. 감로? 이게 뜻이 뭔가요?
 
◆ 강형원> 중생한테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주라고 한국에 와서 만난 지봉스님이 저한테 선물하신 겁니다.
 
◇ 손수호> 그렇군요. 감로 강형원 선생과 오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단 퓰리처상 수상 부분 일단 엄청난 일인데 관심도 많이 가고요. 궁금합니다. 사진기사 생활은 얼마나 하신 거예요?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 강형원> 솔직하게 저는 대학교 때부터 일간지 일을 했습니다. UCLA 대학에는, 미국 대학에서 몇 개 없는 일주일에 5일씩 나오는 일간지가 있는데 거기에서부터 UCLA는 스포츠가 NCAA 최고로 좋은 스포츠를 많이 하기 때문에 스포츠 취재하면서 제가 사진기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 손수호> 지금 미국으로 이민가신 지 45년쯤 됐죠. 그리고 30년 이상 미국에서 사진기사로 지금 계속 활동하고 계신 거고. 그런데 그거를 감안하면 한국어를 너무나 유창하게 잘하시네요.


◆ 강형원> 솔직하게 컴퓨터실에 들어와서 아버님이 컴퓨터를 하시면서 저하고 이메일을 한국말로 주고받다 보니까 제가 영어 자판기에서 한글 표시 없이 한글을 타이핑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한글이 많이 늘었습니다.
 
◇ 손수호> 그거는 저도 못 하겠는데요. 안 보고는 못할 것 같은데. 이렇게 오랜 기간 외국 생활을 했는데도 이제 우리 말, 우리 글, 또 우리 문화에 대해서 여러 가지 관심을 갖고 계신 강형원 기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일단 이 퓰리처상 사실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정확하게 이게 누가 누구한테 언제 왜 주는지를 몰라요, 저도. 이거 간단히 설명을 하고 넘어갈까요?
 
◆ 강형원> 미국에서는 주류 언론에서 매년 언론 분야,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언론인들하고 그 기자들, 언론사를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보통 세 명 이상이 수상을 할 때는 스태프 한테 이 상이 주어지고요. 독불장군이 이 세상에 없지는 않습니까? 항상 컬래버레이션을 해서, 팀워크를 잘해서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언론사들이 많이 인정받고 있습니다.
 
◇ 손수호> 사실 두 번 수상을 하셨는데 지금 직접 사진을 보면서 얘기하면 좋기는 할 것 같거든요. 첫 번째로 수상하신 게 92년 취재입니다. 수상은 93년에 하신 거죠?
 

 


◆ 강형원> 네, 그렇죠. 92년도에 보도한 것을 가지고 평가해서 93년도 봄에 수상을 하는데 92년도에 미주 이민 역사가 1903년에 시작해서 1992년도에 가장 비극적인 일이 바로 LA 4.29 폭동입니다. 그때 이제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폭동이 일어났는데, 또 가장 큰 피해자는 한인들이었습니다.
 

사진 = 강형원 사진기자 제공


◇ 손수호> 맞습니다.
 
◆ 강형원> 그 당시 제가 만나본 한인 shopkeeper(가게 주인)들은 '단골이 하루아침에 폭동이 (시작)되니까 짐승으로 변해서 내 가게를 습격했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도 계시고. 아무튼 미국 주류 언론에서 흑백의 문제를 어떻게 흑인과 한인들의 갈등으로 왜곡되게 나름대로 끌고 가면서 피해를 본 게 한인들이 LA 폭동에서 피해 본 이유 중에 하나거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국 주류 언론에서는 한국말은 못 하니까 한인 커뮤니티나 미주 한인에 대한 보도가 항상 취약했어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취재하러 오지, 좋은 일이 있어서 오는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LA타임스만 해도 미국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하루에 100만 부 이상 나가는, 하루에 110면 이상 나가는 커다란 신문인데 거기에서 한국말 하는 기자가 없었습니다. 그때가 87년인데.
 
◇ 손수호> 나름 미국 안에 한인도 많고 그런데도 그랬군요.
 
◆ 강형원>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주류 사회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다 보면 주 언어가 영어이지 않습니까? 영어를 제대로 하려면 또 한국말을 못 하는 그런 1.5세들이 많기 때문에 그분들한테 우리 한인들의 역사나 언어를 다 이해하면서 취재하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고요. 사실 이중언어 문화권에서 산다는 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 머릿속으로 기계체조를 해야 합니다.

 


 
◇ 손수호>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그게.
 
◆ 강형원> 그러니까 생각은 영어로 하고 또 표현도 영어로 해야 되는데, 또 한국에서 교육받고 한글로 배운 사람은 한글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한글과 영어를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머릿속으로 기계체조를 매일 하는 거죠.
 
◇ 손수호> 쉽지 않은 그런 일이죠.
 
◆ 강형원> 그렇죠.
 
◇ 손수호> 이런 상황에서 92년 LA 폭동을 취재하면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그런데 또 두 번째 수상은 그러면 일단은 몇 년도입니까?
 
◆ 강형원> 1998년도에 미국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클린턴-르윈스키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 손수호> 기억납니다.
 

 


◆ 강형원> 클린턴 대통령이 함구하고 아무 말도 안 했으면 문제가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분이 자기가 변호사라고 너무 과신해서.
 
◇ 손수호> 변호사가 그게 문제예요.
 
◆ 강형원> 말을 많이 했어요. 그 말에 걸려들어서 사건이 탄핵까지 받았는데.
 
◇ 손수호> 그런데 그때 어떤 사진으로 상 받았어요?
 
◆ 강형원> 제가 그때 AP통신의 세계에서 제일 큰 지국이 워싱턴 지국인데.
 
◇ 손수호> 한 번 이직을 하신 거예요?
 
◆ 강형원> LA타임스 있다가 AP에서 스카우트해서 갔는데, 그 1년 동안 클린턴-르윈스키 스캔들을 취재를 제가 지휘를 했습니다.

사진 = 강형원 사진기자 제공

 

◇ 손수호> 쭉 취재를 하신 거군요.

◆ 강형원> 그래서 제가 여러 기자들을 데려가다가 제가 책임자이니까 실시간으로 편집을 해서 사진을 내보내면서 그거를 취재한 공로로 해서 제가 피처 카테고리(feature category) 에 기획 취재한 걸로 해서 상을 받았습니다.
 
◇ 손수호>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한 게 너무 기초적인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퓰리처상이라는 게 사진 한 장에게 주어지는 겁니까? 아니면 어떤 사건을 쭉 취재했을 때 주어지는 겁니까? 아니면 둘 다 할 수도 있어요?
 
◆ 강형원> 처음에 초창기에는 사진 한 장에 결정적인 순간들을 (담은 사진이) 많이 수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아까 말씀드렸던 컬래버레이션을 많이 하면서 팀워크로 취재를 하다 보니까 요즘에 와서는 추세가 그 팀한테 상을 줍니다. 기획적으로 합쳐서 잘했을 때 그 스태프한테요.
 


◇ 손수호> 그렇군요. 그런데 이렇게 상을 받을 정도라면 정말 여러 군데에서 취재를 다 하셨을 텐데 위험한 곳도 굉장히 많았잖아요. 가장 어떤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그런,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정말 위험했다. 정말 다행이다. 살아 돌아와서. 이런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 강형원> 네, 그렇죠. LA폭동 때 사실 여러 명의 사진기자들이 폭도들한테 카메라도 뺏기고 또 벽돌로 머리도 맞고 해서 다친 사람도 있고 그런데, 저는 다행히 그때 죽지는 않고 야구방망이 들고 저를 쫓아온 그런 사람들도 그러는데 발 빨리 피해서 제가 모면했습니다. 물론 이제 총알도 날아다니고 그럴 때는 엎드리고 그렇게 하죠.
 
◇ 손수호> 저는 진짜 담력도 있어야 되고, 사명감도 있고 의지가 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 강형원> 네, 그런데 이제 LA 한인타운이 보통 한국말 주로 하시는 분들이 사시는데 저희 데스크에서도 자기네들이 뭘 모르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할 그런 지식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기자는 항상 뉴라는 것은 기자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 뉴스거든요. 그냥 직접 봤을 때 그것이 보도가 되니까. 그래서 저는 한인타운을 아니까 제가 들어가서 제가 취재해서 바로 올렸죠.
 
◇ 손수호> 이렇게 미국 현지 그리고 또 기타 분쟁 지역 등에서 활발하게 취재를 해 왔는데, 30년 동안. 그런데 이제 단순한 그런 성취뿐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요. 왜냐하면 현장에서 이렇게 지금 미국에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왜 한국에 있지? 이런 궁금증부터 생기거든요. 지금 한국에서 뭐 하시는 겁니까?
 
◆ 강형원> 저는 지금 제가 우리 조상의 나라에 주변 문화들하고 차별화되는 내용으로 소위 한국의, 또 한국 사람의, 한국말, 그거의 정의가 무엇인가. 그것을 제가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영어문화권에서 봤을 때, '주변 국가하고 한국은 다르네'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제가 (사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손수호> 최근에 또 가장 관심 있는 것 중 하나가 김치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 강형원> 왜냐하면 김치보다 소위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음식이 없지 않습니까?
 
◇ 손수호> 가장 대표적이죠, 사실.
 
◆ 강형원> 그렇죠. 사실 명사에서는 고유명사라고 이름, 김치, 한글, 한자, 그렇게 소위 영어로도 그냥 그대로 써야 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영어로 풀어서,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에 와 보니까 제일 잘못 쓰고 있는 내용 중에 하나가 있는데요. 
 
◇ 손수호> 뭐예요?
 
◆ 강형원> 한자를 한자 캐릭터라고 안 쓰고 차이니스 캐릭터라고 씁니다. 그 말은 중국말입니다. 중국말하고 한자는 달라요. 한자는 이유 조상들이 쓰던 동아시아의 문자 언어이지 결코 차이니스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래서 정부 웹사이트에도 한자를 차이니스 캐릭터라고 잘못 표기했는데, 그런데 영어 문화권 시각으로 안 보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잘못 그렇게 해 놓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 손수호> 저도 반성해야 될 것 같습니다.
 


◆ 강형원> 그런데 제가 가장 놀란 것 중에 하나가 일반명사 아버지 같은 것은 중국말로 푸친, 그렇게 불러도 문제가 없는데.
 
◇ 손수호> 푸친인가요.
 


◆ 강형원> 그런데 김치를 다른 언어로 '신치'인가, 다른 언어로 국가에서 정해 줬다는 말을 듣고 제가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영어가 세계 영어의 표준이 되고 있는 이유가 가장 많이 쓰는 인구가 쓰는 단어가 이 표준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인구 많은 나라에서 김치를 다른 말로 불러버리면 영어 문화권에 있는 사람한테는 기준이 바뀌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게 표준이냐라고 했을 때 그러면 지금 인구말살정책으로 없어지는 문화들이 많은데 우리는 100년 전에 우리 문화말살정책의 피해자 아닙니까? 창씨개명도 강요당하고. 또 한국말도 못 쓰게 하고 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글 고유 단어를 다른 말로 만들어서 주변 국가한테 쓰라고 하는가. 그것은 제 생각에는 아주 깊숙이 생각해야 될 문제고, 제가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 뉴스를 보고.
 


◇ 손수호> 사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이거 참 안타까운데 정말 20초 남았거든요. 어디 가면 지금 강형원 기자님 사진 볼 수 있습니까?
 
◆ 강형원> www.kang.org에 가시면 제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왜냐하면 영어 문화권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뉴스를 접합니다.
 
◇ 손수호>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듣겠고요. 오늘 지금까지 강형원 사진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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