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W·GM·도요타가 배터리 직접 만들려는 3가지 이유 [최원석의 디코드] 굳이 조 단위, 혹은 수십조원 단위의 투자의 위험을 안으면서까지 배터리 완전 내제화를 추진
배터리가 그나마 강국인데, 자동차 회사가 배터리까지 하겠다는 각오를 보면, 좋기도 하고, 문제가 되기도 한다. 배터리를 파는 입장에서는 기술이전 정도 남았을 것 같고, 잘 팔던 배터리는 문제가 발생되어 그냥 두면 안될 거라는 생각일 수도 있고, 어딘가 외부에 끌려갈 일은 좋지 못하다 생각했을 수 있겠다.
배터리 기술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그걸 해결할 수 있을지 그게 중요하다 본다. 해법을 찾아내지 않고서는 섵불리 덤비면 아맏] 힘든 상황에 빠지지 않을까?
왜 굳이 조 단위, 혹은 수십조원 단위의 투자의 위험을 안으면서까지 배터리 완전 내제화를 추진하는 것일까요?
VW·GM·도요타가 배터리 직접 만들려는 3가지 이유 [최원석의 디코드]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입력 2021.12.02 11:43
※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유럽·미국을 각각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GM이 모두 자사의 전기차용 배터리를 직접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폴크스바겐은 203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해 유럽에 배터리셀 공장 6곳을 세울 계획입니다. 총 240기가와트시(GWh), 연간 400만~500만대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엄청난 프로젝트죠.
GM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을 통해 1단계로 5조원을 투자해 미국 2곳(오하이오·테네시주)에 배터리셀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2개 공장만으로 2024년이면 총 70GWh 이상의 배터리셀 생산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GM이 연간 전기차 100만대 이상에 탑재할 배터리를 자체 확보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9월엔 EV시프트에 가장 뒤처졌다던 도요타마저 2030년까지 16조원을 쏟아부어 연간 20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를 내제화(內製化)하겠다고 밝혔죠. 연간 300만~400만대의 전기차에 탑재할 수 있는 엄청난 양입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발·제조 비용을 전부 자체 부담으로 한다고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와 협력은 하되, ‘돈’은 도요타가 전부 낸다는 것에서 배터리 내제화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자동차업계에서 각각 유럽·미국·일본 1등인 이 3개 회사는 왜 모두가 ‘배터리셀’까지 직접 만들겠다는 것일까요? 배터리셀은 전문기업에 맡기고, 자동차회사는 앞으로 대세라는 전기차 통합 플랫폼과 이를 제어하는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에만 매진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왜 굳이 조 단위, 혹은 수십조원 단위의 투자의 위험을 안으면서까지 배터리 완전 내제화를 추진하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요. 그 이유를 3가지 포인트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배터리를 내제화해야만, 자동차회사들이 구축하려는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통합될 때 최고 성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 배터리 내제화는 자동차회사가 자동차와 에너지라는 인류 2 대 산업군의 탈탄소화와 시너지를 극대화할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3. 배터리를 내제화해 관련 생산 인력을 유지해야만, EV시프트로 인한 구조조정 충격을 완화할 수 있고 자동차회사의 기득권도 유지. 배터리셀 공장을 내제화하면, 그 외에 관련 부자재 산업의 연관 고용효과가 크게 유발. 이는 자동차회사가 해당 시장에서 지역정치의 역풍을 맞지 않고, 전략을 관철할 수 있는 방책이 될 수 있다.
GM은 2021년 10월5일 미시간주 워런의 GM 테크니컬 센터 인근에 건설 중인 ‘월러스 배터리셀 혁신 센터’의 완공 예상 사진을 처음 공개했다. GM은 현재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해 차세대 배터리인 얼티엄 배터리 개발에 착수하고 합작공장 2곳을 건설하고 있으며, 조만간 여러 곳의 배터리 공장 프로젝트가 추가로 공개될 예정이다. /GM
이 3가지를 분석하기에 앞서 두 가지 점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건너뛰고 아래의 본론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첫 번째는 전기차 배터리의 제조 단계에 관한 것인데요. 앞서 자동차회사들이 배터리’셀(cell)’까지 직접 만든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냐는 겁니다.
설명드리면, 배터리 제조는 3단계를 거칩니다. 음극재·양극재·분리막·전해질 등으로 구성된 기본 단위 ‘셀’을 만드는 작업이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이 만드는 ‘배터리’는 대개 이 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셀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셀을 여러 개 묶어 ‘모듈’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듈이 또 여러 개 합쳐져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배터리‘팩’을 이루게 되죠.
위에서 폴크스바겐·GM·도요타 등이 배터리를 내제화하겠다는 것은 배터리의 기본 단위인 ‘셀’까지 자신들이 혹은 자사 전기차에만 공급하는 합작사를 통해 만들겠다는 의미입니다. 기존에도 배터리팩을 만드는 것은 대부분 자동차회사가 스스로 하거나 그룹 내 자회사를 통해 해왔거든요.
두 번째는 GM·폴크스바겐·도요타의 배터리 내제화 계획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고, ‘도박’ 혹은 ‘위험이 큰 승부’인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몇 년 안에 환경·기술적 요인으로 시장이 급변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3사가 배터리셀까지 내제화하는 이유를 아래의 3가지로 분석한 것이 꼭 맞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들로서도 미답(未踏)의 길을 가는 것이고, 각사 전략도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왜 이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자신들이 그동안 잘해왔던 분야와 전혀 다른, 즉 모험처럼 보이는 배터리셀 내제화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추정해 보는 정도로만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폴크스바겐·GM·도요타가 모두 배터리 내제화로 가는 이유를 3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도요타는 지난 9월 7일 '배터리·카본뉴트럴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도요타는 2030년까지 1조5000억엔을 투자해 (연간 전기차 300만~400만대 분에 해당하는) 연간 200GWh의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마에다 마사히코 최고기술책임자(CTO), 오카다 마사미치 최고생산책임자(CPO), 곤 겐타 최고재무책임자(CFO) 가이타 게이지 CN(카본뉴트럴) 선행개발센터장. /도요타 온라인 캡처
◇1. 배터리를 내제화해야만, 자동차회사들이 구축하려는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통합될 때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회사가 배터리셀까지 직접 만드는 것, 즉 배터리 제조의 모든 단계를 장악하려고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원가 인하와 공급망 통제이겠죠. 전기차 총 제조원가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이면서 핵심인 배터리셀을 직접 만든다면, 그만큼 원가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배터리 원가를 떨어뜨리는 것이 목적의 전부라면, 자동차회사들이 써야 할 배터리의 일부만 내제화해도 됩니다. 전부 내제화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셀 제조는 자동차회사의 전문분야도 아니기 때문에 위험 부담도 크죠. 일부만 내제화한 뒤에 배터리 전문업체와 협상할 때의 카드로 써도 될 겁니다.
하지만 폴크스바겐·GM·도요타 모두 자사의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 대부분 혹은 100%를 내제화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자동차회사가 배터리의 셀 단위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전체 전기차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과, 셀을 외부에서 단순 납품받아 전기차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재 시점보다는 폴크스바겐·GM·도요타 등에서 2024년~2025년쯤부터 쏟아져나오게 될 전기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자동차)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주력이 될 전기차는 소프트웨어가 인포테인먼트, 즉 내비게이션이나 음악·영상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차량의 거의 모든 기능을 통제하게 될 겁니다.(테슬라는 지금 나오는 차량도 SDV 라고 할 수 있지만, 테슬라는 일단 제외하겠습니다.)
지금 그게 안 되는 것은 차량의 모든 기능을 통제할 중앙집중적이고 강력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운영체제가 (테슬라 차량을 빼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GM·폴크스바겐·도요타 모두 자체 혹은 외부 협업을 통해 소프트웨어 인력만 수천명씩 투입해 개발 중이고 대부분 2024~2025년까지는 시스템이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요? 배터리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전기차 시스템 전체에서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배터리의 상태를 디테일하게 관리하고, 그 정보를 자동차회사로 즉시 보내 분석·활용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도 가능해 질 겁니다.
이것은 물론 BMS(Battery Management System)라고 해서 지금도 중요한 기술입니다만, 아직 기존 자동차회사 차량의 경우 이를 무선 업데이트한다든지, 셀 단위 상태 정보를 전체 시스템과 연동해 최적의 성능을 끌어내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지요. 하지만 3~4년 안에 전기차가 통합제어용 프로세서와 통합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로 바뀜에 따라, BMS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배터리의 물리적 용량을 늘리지 않고도 성능이 크게 높아지게 되겠죠. 현재의 전기차가 70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400km를 달린다면, SDV로 바뀐 전기차는 같은 용량으로 500km, 600km를 달릴 수 있게 되거나 혹은 400km를 달리는데 50KWh 정도의 적은 용량 배터리만 탑재하는 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이죠.
소프트웨어 관리를 통해 배터리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소프트웨어만 바꿔서 되는 게 아니라, 용도에 따라 셀·모듈·팩의 각 레벨에서 배터리 성능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파라미터(parameter·매개변수)를 근본부터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배터리의 기본단위인 셀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죠.
배터리의 상태는 온도 환경, 사용량, 충전속도 등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다양한 충전 인터페이스에서의 에너지 변환도 중요합니다. 배터리의 셀과 모듈과 팩의 상호 연결, 전기차의 실제 주행환경에 따라 어떻게 성능이 달라지는지를 깊이 알아야 종합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터리셀을 전부 외부에 맡길 수 없다는 겁니다. 자동차회사가 직접 이해하고 만들어야, 배터리의 최종제품인 배터리팩은 물론 전기차 전체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나 예를 들면, GM은 내년부터 양산하는 신세대 전기차 플랫폼에 ‘무선(Wireless) 배터리 관리시스템’을 탑재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차량 내부적으로도 셀 단위 상황을 무선으로 관리할 뿐 아니라, 차량의 BMS 성능을 원격 업데이트하는 즉 ‘OTA(Over The Air)’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차를 판매한 이후에도 배터리를 포함한 전기차 전체 성능을 향상시키고 관련 데이터를 취합해 더 나은 BMS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가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할 때의 첫 번째 효과는 배터리의 셀과 연결된 배선이 필요 없기 때문에, 배선만큼의 무게도 줄어들고, 그만큼 배터리팩 크기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GM에 따르면 BMS 배선의 90%를 줄일 수 있고, 배터리팩의 크기는 15%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배터리는 열관리가 매우 중요한데요. 너무 뜨거우면 화재위험이 있고, 너무 차가우면 배터리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기차는 최신으로 갈수록 첨단의 열관리 시스템, 일반적으로는 ‘히트펌프’, 테슬라의 경우는 ‘옥토밸브’라는 열관리 장치가 들어갑니다. 배터리·모터·공조장치 등의 열을 통합제어함으로써 같은 배터리 용량으로도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지요.
또 전기차의 구동계통은 충전기와 DC-DC 컨버터(배터리의 직류를 차량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압으로 바꿔주는 장치), 인버터(배터리의 직류를 모터가 쓸 수 있는 교류로 바꿔주는 장치)가 현재는 개별부품으로 탑재되는 경우가 아직 많은데요. 이것을 하나로 통합하고 나아가 BMS까지 묶운 시스템을 만드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소프트웨어적으로 관리되고 소프트웨어적으로 개선되어 나갈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기차가 SDV로 바뀌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이 모든 것을 통합관리하게 될 때, 결국 자동차회사가 배터리를 셀 단위에서부터 깊이 이해하는 것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배터리셀의 핵심기술까지 내재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메리트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입니다.
전기차의 소비자체험에서 중요한 ‘충전’도 마찬가지입니다. 800볼트 고압·고속 충전이 점차 보급될 것으로 보이는데요.(현대·기아차의 최신 전기차인 아이오닉5와 EV6는 이미 적용) 800볼트 충전이 일반화된다면, 즉 이 방식으로 충전되는 전기차와 충전기가 늘어난다면, 충전시간이 길어 생기는 불편함은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겁니다. 배터리 전체 용량의 절반 정도를 충전하는데 5~10분밖에 걸리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고압·고속 충전으로 갈수록, 관련 전력반도체·소프트웨어 기술은 물론, 배터리셀 관련 기술력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고압·고속 충전에 잘 견딜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배터리셀 상황을 잘 관리해 더 빨리 충전하면서도, 내구성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지가 전기차 전체 만족도를 좌우하게 될 테니까요.
폴크스바겐은 203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해 유럽에 배터리셀 공장 6곳을 세울 계획이다. 총 240기가와트시(GWh), 연간 400만~500만대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 분량이다. 폴크스바겐의 헤르베르트 디스 CEO가 2025년에 연간 150만 대, 2030년에 자사 신차의 50%(약 500만 대)를 전기차로 팔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동영상 캡처
◇2. 배터리 내제화는 자동차회사가 자동차와 에너지라는 인류 2 대 산업군의 탈탄소화와 시너지를 극대화할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자동차회사가 배터리 내제화를 하는 것은 에너지와 자동차라는 인류 2 대(大) 산업의 탈(脫)탄소화를 추진하고 양쪽을 연결해 시너지를 내게 해줄 핵심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자동차회사가 전기차에 탑재하는 배터리는 차량이 폐차된다고 활용가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성능이 일부 저하돼 전기차용으로 쓰지 못하는 배터리도, 리튬이온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저장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ESS) 용으로는 충분히 쓸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날씨에 의한 변동성 위험이 큰 재생가능 에너지(태양광·풍력 등)를 안정적으로 사용하려면 ESS가 빠질 수 없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동차회사가 베터리셀 레벨까지 깊이 연구하고 관련 기술과 사용 데이터를 축적해 나간다면, 자동차회사일 뿐 아니라 에너지기업으로서도 더 큰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게 될 겁니다.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자신들이 판매한 전기차가 폐차될 시점에서 그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를 ESS용으로 쓸 수 있을지를 폐차하기 전부터 OTA를 통해 자동차회사가 모두 파악할 수도 있게 되겠죠. 이걸 정밀하게 파악하려면, 역시 배터리셀 단위의 정밀한 모니터링과 제어·관리가 필요합니다. 배터리셀을 직접 만드는 자동차회사는 셀을 외부에서 사다 쓰는 자동차회사보다 이 부분의 경쟁력을 더 가질 수 있습니다.
ESS에서도 못쓸 만큼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배터리의 활용가치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배터리에 사용된 고가의 희소재료들을 분리·추출해 재활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만든 배터리셀 회사인 ‘얼티엄셀’이 최근에 미국의 배터리 소재 재활용 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회사는 배터리셀 내제화를 통해 배터리 자체 원가를 낮추는 것은 물론, ESS등에 활용될 수 있는지를 소프트웨어적으로 실시간 파악함으로써, 배터리 제조비용을 더 낮추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또 리튬이온배터리에 사용되는 재료는 자원이 한정돼 있거나 지역적으로 편중된 경우가 많아 공급 불안 요인이 있는데요. 배터리 자원 재활용을 통해 이런 문제도 일부 해결할 수 있겠죠.
또 이 자체가 환경보호·탄소배출저감이라는 사회적 과제 달성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고, 앞으로 일반화될 수도 있는 LCA(Life Cycle Assessment·전과정평가) 측면에서도 자동차회사에 이점을 줄 겁니다. 이 모든 밸류체인의 중심에 자동차회사가 있으려면, 자동차회사가 배터리를 완전 내제화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3. 배터리를 내제화해 관련 생산 인력을 유지해야만, EV시프트로 인한 구조조정 충격을 완화할 수 있고 자동차회사의 기득권도 유지. 배터리셀 공장을 내제화하면, 그 외에 관련 부자재 산업의 연관 고용효과가 크게 유발. 이는 자동차회사가 해당 시장에서 지역정치의 역풍을 맞지 않고, 전략을 관철할 수 있는 방책이 될 수 있다
폴크스바겐·GM 그리고 도요타마저, 전기차 배터리 내제화로 갈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고용’ 때문입니다.
앞으로 자동차회사들이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주로 만들게 된다면, 내연기관차 공장만큼의 조립인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전부 전기차로 바뀐다면 현재 조립인력의 절반, 혹은 5분의 1, 궁극적으로는 10분의 1로도 충분해질지 모릅니다. 이미 GM은 지난 수년간 전미자동차노조(UAW)의 격렬한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립인력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인원 감축을 진행해 왔지요.
이것은 EV시프트를 선언한 자동차회사들이 공통으로 겪는 고민입니다. 하지만 자동차회사에서 극단적인 구조조정은 여러 정치적 난관과 맞닥뜨리게 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회사의 고용유지는 자국 정치에서 매우 중요하고요. 다른 나라에 차를 대량으로 파는 업체 입장에서는 그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난관을 덜 겪고 차를 팔 수 있는 방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본차 회사들이 미국에서 차를 그렇게나 많이 팔고도 정치 역풍에 덜 휘말린 것은 그들의 미국 현지공장이 미국인을 대량 고용하기 때문인 측면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자동차회사가 해당 지역에서 힘을 발휘하고 지역 정치인과 주 정부, 주 정부와 연결된 연방정부의 전폭적 협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지역 내 투자 특히 고용창출 때문이었죠. 고용을 더는 하지 못하는 자동차회사, 고용을 오히려 줄이려는 자동차회사는 그런 이점을 충분히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만든 회사 얼티엄셀이 지난 4월 미국 테네시주에 GM 전기차용 2번째 배터리셀 공장 건립을 발표한 현장을 보면, 이것이 지금도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발표에는 GM의 메리 바라 사장, LG에너지솔루션의 김종현 당시 사장뿐 아니라, 테네시주의 주지사, 연방상원의원, 주 경제개발기구 수장, 해당 공장이 들어서는 시의 시장 등이 총출동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지역 정치인들이 자신들 지역구 고용을 다른 어떤 것보다 최우선시하며, 고용을 늘려주는 기업에 대해 연방정부와 협의해 모든 편의를 봐줄 태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GM·LG 합작의 배터리셀 공장이 처음 들어서게 될 오하이오주, 2번째 공장이 들어서게 될 테네시주는 모두 GM의 내연기관차 주력 공장이 있던 곳이었지만, 최근에 공장이 폐쇄되거나 사실상 가동이 중단돼 대량실직이 일어난 곳입니다. GM 입장에서 노동자 친화적인 민주당 소속의 바이든 정권, 각 주 정부와의 관계를 외면할 수가 없죠. EV시프트로 고용을 줄이기만 한다면, GM의 생존전략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연기관차 공장의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지만, 대규모 배터리셀공장 등을 건설해 노동자 수천 명의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GM의 영향력을 높이고 앞으로 정치권과의 협상에서도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배터리셀 공장을 유치하면 거기에서 끝나는게 아닙니다. 관련 부자재 공장, 업체들이 따라 들어오게 되고, 연관 산업과 고용 효과가 확대될 수가 있지요. GM이나 LG 입장에서는 이런 효과를 통해 지역·연방 정치권을 우군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역으로 보면, 미국의 연방 정부가 주 정부 입장에서는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리고 해당 기업에 당근을 주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또 하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도요타는 2030년까지 16조원을 투자해 200GWh의 배터리를 내제화한다고 밝혔는데요. 이후 첫번째 나온 구체적 투자 발표가 미국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요타는 항상 미국 정치권과 민심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지요. 잘못 건드리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역사를 통해 뼈저리게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요타로선 미국 배터리 공장 투자와 추가 고용을 미국에서 앞으로도 차를 안정적으로 팔기 위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폴크스바겐·GM·도요타가 모두 전면적인 배터리 내제화로 가는 3가지 이유를 설명드렸는데요. 다시 정리하자면, 자신들이 배터리 내제화를 통해 향후 배터리에서 파생될 많은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죠. 빠르게 실행만 할 수 있다면 자동차회사가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배터리는 최종제품인 전기차에 탑재되는 것이고, 자동차회사가 설계한 전체 전기차 시스템 안에서 기능하니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배터리 관련 부가가치 창출의 주도권이 배터리회사에서 폴크스바겐·GM·도요타처럼 배터리 내제화를 추진하는 자동차회사 쪽으로 넘어가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배터리 전문회사의 고민으로 연결됩니다. 지금은 자동차회사마다 앞다퉈 물량을 달라고 하고 먼저 협력하자고 하기 때문에, 한국 배터리회사의 앞길이 탄탄대로처럼 보입니다만,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소프트웨어로 모든 시스템이 제어·관리·분석·활용되는 차량(SDV)과 배터리가 연결됐을 때, 이후 창출될 부가가치, 다양한 서비스시장에서 배터리전문회사가 가질 수 있는 몫이 얼마나 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ESS도 배터리업체에 당장은 황금어장 같지만, 5~10년 뒤 전기차 폐배터리가 쏟아져나올 때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배터리회사는 자동차라는 최종제품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리할 수도 있죠. 배터리회사가 배터리 운용 데이터도 장악하고 이후 관리를 통한 서비스로 돈도 벌면 좋겠지만, 한번 돈 받고 베터리셀을 넘긴 다음의 배터리 사용과 재활용에 배터리회사가 얼마나 접근할 수 있을 것인지가 과제입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자동차회사가 이 모든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배터리 셀까지 내제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배터리회사가 역공을 펼치려면 전기차 배터리·구동 통합 시스템 혹은 완성형 전기차 시장에 직접 진출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폴크스바겐·GM·도요타는 배터리 내제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가 중요하고 그 규모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3개 회사 모두 전면 내제화를 추진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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