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독특한 가수다. 그룹으로 활동할 때도, 처음 등장했을 때도, 놀라웠고, 솔로로 나타난 것도 놀랍게 나타났다.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갈래를 만들어나갈지 알 수 없지만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요즘 노래 같지 않은 노래를 들고 나온 느낌이다. 예전 통기타 하나로 읍조리듯 말하듯 노래하던 가수들의 전성 시대가 있었는데, 그 때로 다시 회귀하는 기분이 든다.
무소유 음악으로 케이팝 뒤통수 ‘빡’
입력 | 2022-02-24 03:00:00
‘공중부양’ 솔로로 돌아온 장기하
‘…얼굴들’ 해체 3년여 만의 신작
“다 비운 앨범… 목소리-말이 먼저”
23일 가수 장기하 씨는 “굳이 제 신작에 장르명을 붙인다면 케이팝이 좋겠다. 완전 우리말로 창작하는 저는 그러고 보면 누구보다도 더 케이팝 아티스트”라며 웃었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제공
법정 스님(1932∼2010)이 발라드 힙합 앨범을 냈다면 이랬을까. 무소유의 팝 음악이라고 할지. 3분짜리 한 곡에도 무슨 콘텐츠든 꽉꽉 채워 넣는 글로벌 케이팝의 시대에 이토록 허한 질감이라니….
싱어송라이터 장기하 씨(40)의 신작 ‘공중부양’(22일 발매)은 비움의 미학, 공허의 미니멀리즘으로 케이팝의 뒤통수를 휘돌아 친다. 이따금 툭툭 던지는 장 씨의 보컬은 그 지분이 퍽 작다. 비트와 리듬, 가사와 선율 사이를 부유하는 묵음과 공백보다 더…. 마치 몇 음만으로 공간을 장악하는 미국 재즈 연주자 웨인 쇼터(89)의 콘서트 같다.
앨범 초반부, ‘뭘 잘못한 걸까요’ ‘얼마나 가겠어’ ‘부럽지가 않어’의 뚝뚝 끊기는 건반 반복 악절, 베이스와 스네어 드럼, 하이햇의 허허한 공백 사이를 유영하는 장 씨의 보컬은 성기어서 더 서글프다. 자제하기에 리드미컬하다.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는 때로 발라드스럽지만, 한국어의 입맛을 살려 또르르 굴리거나 무뚝뚝하게 뱉는 장 씨 특유의 말 같잖은, 동시에 매우 말 같은 노래가 절묘하다.
2008년 괴이쩍은 싱글 ‘싸구려 커피’로 혜성처럼 등장한 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로 활약했다. 2018년 ‘얼굴들’ 해체 뒤 3년 반을 쉬었다. 23일 영상 통화 간담회에서 만난 장 씨는 “한 2년간 경기 파주 출판단지 쪽에 살며 임진각 쪽으로 드라이브를 하며 말과 노래를 낚았다”고 했다.
“임진각 지나 철원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사람이 멍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뭔가 떠올라요. 빈손으로 귀가하는 날도 있지만 문장 하나 건져온 날에는 작사 작곡으로 발전시켰죠.”
비우고 비운 신작에도 채우고 채운 트랙은 있다. 4번 곡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는 마치 댄스뮤직의 한 갈래인 하우스를 뒤튼 레프트필드 하우스(Left-Field House) 장르를 연상시킨다. 이자람의 판소리 ‘심청가’ 대목을 기막히게 콜라주한 게 신의 한 수. 장 씨는 신작에서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이고 처음으로 믹싱 엔지니어 역할도 손수 맡았다.
“목소리와 말이 먼저였어요. 그걸 녹음해 놓고 거기 맞는 드럼이나 다른 소리를 넣는 스케치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제가 믹스 단계까지 거의 혼자 하고 있더라고요.”
장 씨는 “완성해 보니, 그러고 보니 베이스가 빠져 있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붕 떠 있는 소리의 질감이 나쁘지 않았다고. 그러고 보니 가요계에, 참, 장기하가 있었다. 이 허한 사내가 이래저래 공중부양을 시작했다.
임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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