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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떼내니, 400년간 감춰진 조선 최대 용그림 운룡도(雲龍圖)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달과 해,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 7폭 병풍을 한 폭씩 떼어낼 때마다 뒤쪽 벽에 숨어 있던 용들

시사窓/사회

by dobioi 2022. 5. 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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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관왕묘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한중일 삼국의 역학관계 속에서 탄생한 것이어서 뭔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때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세월을 뛰어넘어 남겨진 의미와 당시의 분위기를 추정할 수 있는 나름의 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게다가 그냥 허름한 건물이 아닌, 나름의 의미와 커다란 용그림과 각종 당시의 유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하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유지되어 온 것도 신기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 것을 그대로 품고 있는 대한민국은 나름 보물이 숨어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광화문에서도 구청 건물을 헐었더니, 아래에 보물 같은 것이 발굴되는 등의 유서 깊은 곳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미 보물은 사라져버리지 않았을까? 전쟁에, 도굴에, 편지풍파를 견뎌낸 것들만 겨우 남은 게 이 정도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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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떼내니, 400년간 감춰진 조선 최대 용그림

중앙일보

업데이트 2013.02.20 17:58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달과 해,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 7폭 병풍을 한 폭씩 떼어낼 때마다 뒤쪽 벽에 숨어 있던 용들이 조금씩 자태를 드러냈다. 병풍을 모두 거둬내자 거대한 ‘운룡도(雲龍圖)’가 펼쳐졌다. 백룡 한 마리와 청룡 한 마리, 그리고 일곱 마리의 황룡이 구름에 휘감겨 있는 모습이다.

 

 

 400여 년간 병풍 뒤에 감춰져 있던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용 그림이 발견됐다. 서울 종로구 동관왕묘(東關王廟)의 정전(正殿)에 있는 금동 관우상 뒤편에서다. 흔히 ‘동묘’로 불리는 동관왕묘는 촉한(蜀漢)의 장수이자 무운(武運)의 수호신인 관우(關羽)를 기리기 위해 선조 35년(1602년)에 지어진 사당이다. 정전의 안쪽에 위치한 높이 2m51㎝의 거대한 관우상 뒤로 일월오봉도 병풍이 쇠못으로 벽에 고정돼 있다.

 

 

 이번 ‘운룡도’는 2011년 10월 동묘 유물을 조사하던 문화재 전문가들이 병풍에 박힌 쇠못을 뽑아내면서 처음 발견됐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다가 최근 종로구청이 낸 ‘동관왕묘 소장유물 기초학술조사 보고서’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의 크기는 높이 2m75㎝, 폭 4m95㎝다. 목재 벽을 감싼 모시 위에 먹으로 선을 그리고 안료로 채색했다. 파란 눈과 흰 수염을 가진 용 아홉 마리가 구름과 뒤엉켜 있으며, 아랫부분에는 파도 치는 바다가 있다.

 

 

 조선시대 용 그림은 왕의 권위를 상징했다. ‘관왕(關王)’이라는 호칭에서 드러나듯 당시 왕으로 추앙받았던 관우의 사당에 운룡도가 그려진 것은 이런 이유다. 그러나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궁궐의 용 그림은 대부분 불에 타 없어지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경복궁 사정전(思政殿)의 어좌 위에 걸려 있는 운룡도가 유일하다. 현재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중이고, 사정전에 걸려있는 것은 같은 크기의 사본(寫本)이다.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갖고 노는 이 그림은 높이 2m87㎝, 폭 4m77㎝ 크기다. 이번에 발견된 운룡도보다 폭이 20㎝가량 작다.

 

 

 전문가들은 용들의 생생한 표정과 세밀한 선 처리, 조화로운 배치 등으로 볼 때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그린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장경희(문화재보존학) 한서대 교수는 “그림이 벽에 붙어 있는 상태 등으로 볼 때 17세기에 그려진 후 한 번도 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병풍에 의해 공기가 차단되고 먼지가 묻지 않아 원래 색채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의 조선시대 용 그림이 용 한 마리나 쌍룡을 담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 회화에 주로 등장하는 구룡(九龍)이 그려져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문화재위원장을 역임한 안휘준 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용의 얼굴 표현 등이 다소 관습적이긴 하지만 궁중 용 그림이 현재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예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운룡도가 언제부터 일월오봉도에 가려져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쇠못의 형태가 조선시대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 선조 이후 수차례 진행된 동관왕묘 보수공사 과정에서 누군가 병풍을 벽에 고정시킨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또한 1960년대 이후 여러 번 진행된 보수공사에서 왜 운룡도가 발견되지 않았는지도 미스터리다.

 

 

 운룡도는 조사를 마친 후 다시 일월오봉도 병풍으로 덮인 상태다. 일반 관람객들은 볼 수 없다. 따라서 하루빨리 그림의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휘준 교수는 “운룡도 외에도 동관왕묘에는 17세기의 수준 높은 공예품이나 서화 등이 다수 보관돼 있다. 유물의 관리와 활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영희 기자

[사진=사진작가 최호식 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동관왕묘 소장유물 일괄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동관왕묘 소장유물 일괄

www.heritage.go.kr

 

◆동관왕묘(東關王廟)=보물 제142호. 서울 종로구 숭인동 소재.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장수 관우(160~219)의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관우 신령의 도움으로 조선과 명나라가 승리했다는 뜻을 담아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이 직접 건립 비용을 댔다.

 

 

 

병풍 떼내니, 400년간 감춰진 조선 최대 용그림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달과 해,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 7폭 병풍을 한 폭씩 떼어낼 때마다 뒤쪽 벽에 숨어 있던 용들이 조금씩 자태를 드러냈다. 병풍을 모두 거둬내자 거대한 ‘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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