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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감시는 언론의 숙명 대통령 철저히 수사해야 이 정부의 인사 난맥 어디가 끝인가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언제적 정치판 이야기인지

시사窓/정치

by dobioi 2022. 9. 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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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거나, 초반이거나, 중반이거나, 막판이라면 언제든 생각과 다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판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뜨겁게 들끓는다. 그래서 정치는 언론과 함께 말만들어 돈벌고, 자신의 안위도 다지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는 뗄래야 뗄 수 없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정치는 반복되고, 언론도 반복되는 정치 상황에 발맞추어 맴돌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전정부에서 하는 기사를 보면, 현 정부에서 매우 걸맞는 내용을 보고서 깜짝 놀란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그 내용은 틀리지 않기 때문이고, 그런 복붙 같은 글을 언론은 재탕 삼탕 해가면서 우려먹고 있는데, 놀랍게도 정치인들도 재탕 삼탕 사탕 오탕도 해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줍잖은 편향된 이야기를 듣게 되면 기시감을 떨칠 수없는 것 같다.

 

[중앙시평] 권력 감시는 언론의 숙명

중앙일보

입력 2020.09.15 00:39

 

고현곤 제작총괄 겸 논설실장

 

‘대통령 철저히 수사해야’ ‘이 정부의 인사 난맥 어디가 끝인가’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 때 중앙일보 사설 제목이다. 정부를 연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 해명, 진심을 느낄 수 없다’ ‘대통령 친인척일수록 엄정한 수사를’. 어김없이 비판 사설이 이어졌다. 노무현·김대중·김영삼 정부에서도 그랬다. 군사 정권 땐 어려운 여건에서나마 진실을 알리려고 애썼다. 서슬 퍼런 시절인 점을 고려하면, “그때 언론이 한 게 뭐 있어”라고 쉽게 얘기할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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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언론을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부’라고 한다. 과한 표현이다. 언론은 권력이 아니다. 권력에 맞서 진실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알아보고, 국민에게 알릴 뿐이다. 요새 삼권 분립이 희미해지고 있다. 입법·사법·행정이 하나의 정권 아래 똘똘 뭉쳐 독주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청와대 출신 여당 의원이 포털사이트의 기사 배치가 마음에 안 든다며 책임자를 오라 가라 하는 세상이다. 공직자 입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독재의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학자들도 말조심한다. 정치풍자 코미디도 자유롭게 못 한다. 그나마 언론 외에는 권력을 견제할 곳이 마땅치 않다. 물론 언론이 불순한 의도나 감정을 갖고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해선 안 된다. 매사를 공정하게, 보편적 가치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때로는 보수에 가깝고, 때로는 진보와 뜻을 같이한다. 그러다 보면 60대40이나 70대30으로 보수 쪽으로 기우는 언론이 있다. 그 반대의 언론도 있다.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100대0은 나올 수 없다. 그 건 찌라시나 대자보, 댓글 부대다. 예컨대 자기편이라고 눈 딱 감고 조국·추미애나 전광훈을 감싼다면? 그건 언론이 아니다.

 

시시비비를 가릴 실력과 엄정한 논리를 갖고 있다면, 이념 성향에 따라 다양한 언론이 존재하는 건 환영할 만 하다. 오랜 역사의 선진국 언론이 그렇듯, 잘만 하면 여러 의견을 공론화의 광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논쟁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문화에 익숙지 않다. 생각을 달리하는 곳을 공격하는 데 열중한다. 치졸한 진영싸움에 말려들기도 한다. 기꺼이 좌·우 극단의 선봉에 서기도 한다. 한술 더 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조를 손바닥 뒤집 듯하며 친(親)정부로 갈아탄다면? 그건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언론을 곤혹스럽게 하는 또 다른 이슈는 가짜뉴스다. 검증되지 않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한 정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글과 영상이 디지털 공간에 넘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언론으로 위장한 자들이 만들어내는 가짜뉴스는 언론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진원지이기도 하다.

 

가짜뉴스를 이용한 언론 폄하는 또 다른 문제다. 멀쩡한 언론을 가짜뉴스와 묶어 언론 전체에 대한 증오와 불신을 키운다. 가짜뉴스는 1920년대 독일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언론을 “거짓말쟁이 언론”(뤼겐프레세)이라고 표현한 게 시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판 보도를 가짜뉴스로 몰아세웠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는 “가짜뉴스는 트럼프가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해 만든 정치적 용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가짜뉴스 프레임을 자주 활용한다. ‘분열의 정치’와 포퓰리즘에 능한 양국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가짜뉴스 탓으로 돌리는 게 묘하게 닮았다.

 

민주사회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건 언론의 숙명이자 존립 이유다. 정론을 펼치는 언론이라면 정권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불편한 게 정상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유착보다는 긴장 관계가 백번 낫다. 물론 역대 정부는 그런 언론에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노 대통령은 “일부 언론의 시샘과 박해 속에서 우리를 방어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했다. 언론이 비판하면 의도가 있다거나 거대한 힘이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지독한 피해의식이다. 엄혹했던 민주화 운동 시절에 내편 네편을 가르고, 내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 사고방식이다. 자신들만 정의롭다고 여기는 운동권의 시대착오적 우월감,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도 깔려있다.

 

문 대통령의 언론관도 노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가을 “언론이 진실을 균형 있게 알리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국 비판 보도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언론의 비판 기능을 해악이나 도발로 인식하는 듯하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정부는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고 꼬집었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은 빛 속에 살 것이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어둠 속에서 살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요즘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누가 정권을 잡든 언론의 감시와 견제는 계속될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현곤 제작총괄 겸 논설실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7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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