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무죄 조영남 조자룡처럼 싸워준 진중권 평생 은인[한판승부] 내 아이디어 조수 그려온 그림…사기죄대작 무죄 사건 최후 변론 때 눈물 진중권 대중 전체와 싸운 사건 황우석·심형래·조..
좋아했던 가수다. 이젠 그저 그렇다. 부정적인 선입견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가요계에서 꼰데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만했다. 하지만 점점 이상한 대작 논란이 일자 정나미가 떨어졌다. 정직과 정의로운 세상과는 뭔가 다른 모양새였던 것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작논란이 법원에서 무죄를 판결받았다. 이렇다면 그간 예술계에서 해오고 있던 관행이 인정을 받은 것이란 얘기고 그렇게 그렇게 이어져 오는 것들에 대해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겠다.
놀랍게도 지인이 미술전공하려다 때려쳤다. 입시 때문이었다. 여러차례 시도를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는데, 그 이유가 아주 가관이었다. 너무 학원 느낌이 나서라는 둥, 독창적이지 못하다는 둥,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둥... 헛소리 일색이며, 매우 주관적인 판단으로 떡잎부터 짓밟았던 것이다.
그래놓고는 인맥으로, 돈으로, 백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실력이 모자르거나 학원 삘이 나도, 독창적이지 못해도, 발전 가능성이 없어도 합격된 것을 보면, 너무너무 화가 나는 불합리한 구조인 것이다.
이게 예술계의 민낯인데, 다른 곳은 또 얼마나 지저분하겠는가? 살아남는 것이 실력같아 보이지만 사실 기만과 부정과 부패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도 들게 만든다.
법으로는 무죄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조영남은 노래는 잘하지만, 여자문제가 있고, 버릇없는 노땅, 꼰데 가수이지, 화가는 아니다.
CBS 한판승부
■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정치연구소 씽크와이 소장
■ 대담 : 가수 겸 화가 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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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 박재홍> 한판승부 개편을 맞아서 이제 한 주를 딱 돌았습니다. 금요일 2부에는 조금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말랑말랑한 코너를 준비합니다. 우리의 교양을 한 단계 높여보는 한판클라스 시간으로 시간으로 준비하는데요. 그래서 오늘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 어떤 분을 모실까. 고민 끝에 오늘 첫 손님은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만능 예술인 조영남 씨를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조영남> 안녕하세요.
◆ 진중권,김성회> 반갑습니다.
◇ 박재홍> 그리고 우리 진중권 작가님 잘 아시죠?
◆ 진중권> 잘 압니다.
◆ 진중권> 오랜만에 뵙습니다.
◆ 조영남> 잘 아는데 저는 처음 만나는 거예요, 오늘.
◇ 박재홍> 오픈에서 처음 만나시는 거예요?
◆ 조영남> 재판장에서 그냥 슬쩍슬쩍 지나치고. 그전에는 아무 관계도 없었고.
◆ 진중권> 제가 증인으로 나갔죠.
◆ 진중권> 제가 그 재판에 증인으로 나갔었고 1심 재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박재홍> 그러셨군요.
◆ 조영남> 제 재판 사건이 났을 때 저의 안티들. 그걸 혼자서, 혼자서 조자룡 칼 쓰듯이 혼자서 막 난리 치고. 나는 그래서 그때 진중권 씨를 처음 봤어요. 나도 모르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나하고는 굉장히 친한 줄 알아. 전혀 모르는 사람.
◇ 박재홍> 오늘 처음, 편한 자리에서 처음 뵈신 거군요.
◆ 조영남> 처음이에요.
◇ 박재홍>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2016년 얘기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지금 우리 조영남 씨가 얘기를 해 주셔서. 말씀하신 게 그림 대작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죠? 그림 대작 사건이었고 지난 5월에 그 재판이 다 끝난 겁니다, 그렇죠?
◆ 조영남> 네, 전부 끝났죠. 1심에서도 대법원까지.
◇ 박재홍> 그래요. 이제 검찰 얘기는 사기죄에 기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공소 제기를 했는데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판단이 최종적으로 나온 그런 사건이었어요. 5년이었습니다.
◆ 조영남> 5년. 한 6년 돼요. (5년?)
◆ 진중권> 2016년. 2016년부터.
◇ 박재홍> 2016년부터 했으니까.
◆ 진중권> 말은 5년인데 기간은 한 6년에 걸친 거죠.
◇ 박재홍> 지난 6년 어떠셨습니까?
◆ 조영남> 어른들이 유배생활 쫓겨가고 저는 아주 가장 역사적으로 호화로운 유배생활 6년. 완도 이런 섬 같은 데 안 가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좋은 아파트에서.
◆ 김성회> 마포.
◆ 조영남> 아니, 청담동. 어떻게 그렇게 유배생활 멋있게 했죠. 거기서 책 2권도 쓰고 그랬으니까.
◇ 박재홍> 그러셨군요. 그러면서 그동안 재판을 견뎌내신 거죠. (네) 그런데 당시에 이제 논란 당시에 진중권 작가님밖에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진 작가님은 그래서 아까도 우리 조영남 씨가 조자룡처럼 수많은 칼을 혼자 받아주셨다고 그러던데요.
◆ 조영남> 난리 났었어요.
◆ 진중권> 그때 난리가 났었는데 저한테는 이제 그런 경우가 3번 있었거든요. 첫 번째가 이제 황우석 사건 때 있었고 두 번째가 심형래 때고. 세 번째가 이 사건이었습니다. 대중 전체랑 싸워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저는 전공자잖아요. 전공자이기 때문에 이건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1917년에 뒤샹 이후에 예술가의 콘셉트와 물리적 실행이라고 그러거든요. 직접 만드는 것이 분리가 이미 됐거든요. 콘셉트를 가진 사람이 저작자지 실제로 그린 사람이 저작자가 아니다라는 게 그 관행이 확립된 지 지났는데 여전히 대중들은 그걸 모르고 심지어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예술계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걸 모른다는 사실이 저는 충격적이었거든요. 저는 제 전공의 관점에서 이건 아닌 건 아닌 거다라고 얘기를 했고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죠, 평생 먹을 욕을.
◆ 김성회> 그때 제가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열린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소속원이거든요. 저희가 검찰개혁이 되게 중요한 이슈인데 그래서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 박재홍> 잘되고 있어요, 그런데?
◆ 김성회> 열심히만 하는데 잘 안 되고 있습니다. 3명밖에 없고. 뭐 좀 해 보려고 하는데 잘 안 돼서 이렇게 방송에서 열심히 좀 하고 있거든요.
◆ 조영남> 그게 왜 안 될까.
◆ 김성회> 그러니까요. 그래서 이제 여쭤보고 싶은 건데. 저도 이 일이 되게 충격적이고 제가 우리 진중권 작가님이랑 같이 있지만 거의 사사건건 모든 의견이 부딪치는데 지금 말씀하셨던 세 가지 주제는 저는 진중권 작가님이랑 정확하게 동일한 입장이었거든요. 선생님의 사건도 같은 입장으로 봤는데 검찰은 뭐라고 하던가요? 그러니까 수사를 받으셨을 거 아니에요. 직접 가서. 검사들이 예술에 대해서 뭔가 이해하고 물어보던가요?
◆ 조영남> 그러니까 이 미술을 기본을 모르는 거예요. 모르시는 거예요. 검사님들, 변호사님, 재판장님들. 그러니까 그럴 만해요. 제가 이거를 그대로 그려와라. 그랬는데 김성회라는 조수가 그대로 그러왔어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보고 여기서 토씨가 틀린가. 틀린 거 보고서 내가 하라는 대로 했어요. 그러면 사인해요. 이렇게 했으니까 검사님들이 보시기에 이건 완전히 내 그림이 아니고 성회 씨가 그린 거죠. 그리고 내가 팔 때 이건 김성회 조수가 그린 겁니다 이런 걸 안 그렇게 관례상 그렇게 누가 안 해요. 그냥 물건 내놓고 파는 건데 그러니까 검사님들은 한 80%, 90% 했으면 네가 기망한 거다. 사기친 거다. 그래서 사기죄로 걸렸던 거죠.
◆ 김성회> 저는 무슨 질문을 했을지가 너무 궁금해요. 그리고 지금 선생님께서는 대법원까지 재판이 끝나셨기 때문에 일사부재리로 다시 처벌받으실 일은 없어서 검사들이라고 하셔도 됩니다. 님 자는 안 붙이셔도.
◆ 조영남> 그래도 하도 무서워서.
◇ 박재홍>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죠.
◆ 진중권> 검사 한 사람이고 그다음에 부장검사인가 그 사람이 그거를 인가를 해 준 거죠.
◆ 김성회> 그러니까 저는 뭐라고 물어봤을지가 궁금해요. 이거 그리셨냐 이런 걸 물어보던가요?
◆ 조영남> 그런 걸 물었죠.
◆ 김성회> 그래서 안 그렸으니까 사기다?
◆ 조영남> 그렇죠. 어느 부분을 그렸냐. 그러면 이게 그림을 갖다 놓고 조수가 그린 거 이쪽에 다 표시가 돼 있어요. 표시가 돼 있어요. 조수가 불러놓고 표시해 놨으니까 그러면 그걸 퍼센테이지로 보면 거의 한 70%는 조수가 그린 거고 파이널 터치니까.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이걸 내가 어디서 그걸 수학적으로 몇 퍼센트 이것도 제가 꾸며대는 거고.
◇ 박재홍> 그렇죠. 그건 측정이 불가능한 영역이죠.
◆ 조영남> 제가 무슨 방법으로 알아내요. 그런데 얼추 이렇게 보면 검사님들이랑 나랑 차이가, 조수가 그린 게 많고 그러니까 때려잡아서 너는 사기다 이렇게 된 거죠.
◆ 김성회>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는 검찰개혁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이렇게 느껴지시죠?
◆ 진중권> 검찰개혁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건 개인 검사개혁이 필요해.(웃음)
◇ 박재홍> 모든 건 검찰개혁으로.
◆ 김성회> 좀 웃긴 거 아닙니까? 좀 그렇습니다.
◆ 조영남> 왜 웃긴다고 그러세요. 지금 심각한데.
◆ 진중권> 5년 동안 고생하셨는데.
◇ 박재홍> 선생님 아직도 억울하신 것 같아요.
◆ 김성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지난 2016년 그림 '대작 논란' 사건으로 법정에 출두하던 조영남 이한형 기자
◇ 박재홍> 우리 조영남 씨는 여전히 그때 생각하면 굉장히 당황스러우시고 굉장히 마음이 아프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예술의 영역에서는 그런 것이 통용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우리 진중권 작가님이 법정에서 진술도 하시고 대중과도 좀 소통하시면서 설득하신 부분이 있는 거죠. 아까 이제 마르셀 뒤샹 얘기도 하셨고 또 그런 부분이 다미엔 허스트? 이 작품을 한번 띄워보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줘보세요. 저희가 유튜브로 보시는 분들께는 작품을 한번 화면으로 올려드릴게요. 저 작품이 마르셀 뒤샹 작품의 샘이라는 작품인 거죠, 그렇죠?
샘-마르셀 뒤샹. 조은정 기자.
◆ 진중권> 그렇죠. 저거는 시장에서 사온 거거든요. 거기다가 사인만 슬쩍 해 놓고.
◇ 박재홍> 변기를? 변기 맞습니다, 그런데?
◆ 진중권> 저거 변기죠. 소변기입니다. 소변기 엎어놓은 건데 그거를 이제 독립전시회라는 데가 있습니다. 인디펜던스전시회라고 하는 데 냈습니다. 원래는 1달러만 내면 누구 작품이라도 전시해 주겠다 약속을 했거든요. 1달러 내고.
◆ 김성회> 그리고 본인 이름은 안 쓰지 않았나요? 저때?
◆ 진중권> 그때 알 머트라고 썼잖아요. 그런데 저게 변기 제조회사 이름하고 상당히 비슷해요. 가명으로 냈는데 그래서 저게 이제 주최 측 입장에서는 현대미술을 대중한테 친하게 가져가려고 한 전시회인데 저렇게 가면 대중들이 또 현대미술 오해할 것 아닙니까? 이게 장난이야, 뭐 하자는 거야. 그래서 약속을 지키되 깼어요. 어떻게 했냐 하면 전시는 하되 커튼으로 가려놨습니다. 그때 뒤샹이 뭐라고 얘기했냐 하면 뒤샹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여자가 저 작품을 변호하는 글을 썼는데 거기서 물론 이건 작가가 만든 게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저것을 골랐다라고 해요. 그러니까 이때부터는 고른 거. 그러니까 그게 미적 행위가 되는 거예요.
◇ 박재홍> 고른 것도 미적 행위다? 변기를 사와도 그냥 자기 이름 적어도 그게 그 작품으로 인정될 수 있는 거다?
◆ 진중권> 그게 1917년이잖아요, 저게.
◆ 조영남> 그린 것은 사인밖에 없어요. 뭐 없어요.
◇ 박재홍> 그러니까 조영남 씨도 그림을 사오신 다음에 거기다 조영남 해도 조영남 독립적인 작품이 되는 거죠.
◆ 진중권>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걸 102년 전에 했어야 됩니다. 변기 2개는 필요 없습니다.
◇ 박재홍> 다른 사진 나오고 있습니다. 다미엔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작품인데 굉장히 작품 사진.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겁니까?
◆ 진중권> 다미엔 허스트 같은 사람들도 그러니까 모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는 다 자기가 작업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만들어서 팔리잖아요. 그럼 일단 작품 판 돈으로 조수부터 고용을 해요.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게 내 그림이 어디 가나 있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건 이제 그 맥락과는 좀 다른 건데 다이아몬드가 엄청난 액수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겁니다. 해골바가지인데. 저거는 뭐냐. 사회랑 연동이 돼 있는데 이게 펀드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저걸 만들기 위해서 자기가 뭐 펀드를 발행을 해서. 아마 다미엔 허스트가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을 거예요, 저거. 그다음에 3분의 2는 다른 회사가 소유하고 있고 이런 식의 금융자본주의 현상을 이제 예술계에 도입하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 조영남> 그리는 거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예요?
◆ 진중권> 아무 관계없는 거예요. 자기가 만들었겠어요, 저거?
◇ 박재홍> 다미엔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작품. 두 작품을 보면서 저희가 이제 어떤 예술작품의 창작활동을 어떻게 봐야 될 것이냐 이 부분을 다시 좀 배워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제 비판의 포인트는 뭐였냐 하면 이게 이 사건에 면죄부를 주면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부와 명성을 이용해서 이렇게 고수익을 올리는 폐단을 막을 수 있겠느냐. 그 논리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했었었어요, 사실은. 그러니까 이제 한 99% 정도 미술 전공자 그림 다음에 한 1% 정도를 이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이름 쓰면 그럼 그게 그럼 그 사람이 진중권이 그렸다 하면 많이 살 것 아니냐 이런 주장 아니었겠습니까?
◆ 진중권> 저도 그림 그려요? 그럴 리는 없고요. 제가 알기로는 조영남 작가님은 사실 그전부터 활동을 오래하셨고 그림을 거의 그리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천몇 년도에 제가 광주 비엔날레 갔을 때 거기서 설치된 작품도 보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중견 작가죠. 그런데 예술계에서는 미디어에 안 나온 사람들을 앉히려고 하거든요. 그런 분위기가 있고.
◇ 박재홍> 정통이 아니다.
◆ 진중권> 그다음에 조영남 씨를 옹호하는 모양 빠지는 걸로 그렇게 이해하는 측면들이 있고 그런데 웃기는 게 뭐냐. 자기들 말대로 정말 조영남 씨가 자기 실력이 아니라 예술적 솜씨가 아니라 유명세를 가지고 작품세를 판다고 그러면 이분의 작품을 사는 분들은 어차피 그 사람들 작품을 안 사요. 전혀 다른 문제거든요. 그런데 왜 거기에다 신경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되죠, 저는.
◆ 조영남> 정확하게 얘기하셨어요. 걱정이 되는데 그럴 리는 없어요. 사회가. 그렇게 멍청한 사회는 아니에요. 사람들이 눈이 그렇게 아무나 그렇게 돈을 줘서 뭘 해서 한다면 세상에 잘 안 되는 예술가가 어디 있겠어요? 그게 다 쉽게 안 되는 거예요.
◇ 박재홍> 최소한 작품성이 있어야지 또 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거거든요. 예술성은 당연히.
◆ 조영남> 그럼요. 돈 내고 사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고르겠어요.
◆ 김성회> 현대미술은 구라거든요. 얼마나 내가 이 작품에 대해서 그럴싸하게 설명하느냐가 되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설명을 포함한 것이 가격에 들어가는 것이고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콘셉트가 나타나고 그것에 독자성과 희소성이 있을 때 그것을 돈을 주고 사는 거지 지금 말씀하신 연예인들 같은 경우는 그냥 본인이 비디오테이프에다가 본인의 모습을 30분 동안 담으면 그냥 그게 훨씬 비싸게 팔릴 거예요, 아마.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연예인들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있는 건데 그것과 예술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글쎄요,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진중권> 사실 저는 신분제가 있는 것 같아요. 조선시대 같은 신분제가 있어서 저는 그런 편견은 몇십 년 동안 작가랑 활동했으면 그분에 대한 미적 평가는 높게 하든 낮게 하든 간에 일단 작가로 인정을 해야 되는데 그 자체를 인정을 안 해 준다는 문화가 저는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 김성회> 문화계에서는 등단을 해야 작가인 거고 행정부에서는 5급 고시 합격을 해야 관료인 우리나라의 이 분위기가 아직 바뀌고 있지 않은 큰 문제가 있는 거죠.
◇ 박재홍> 또 공채 출신이어야 되는 거고.
◆ 진중권> 그런데 옛날에 인상주의 화가들은 다 미대 다니다 때려친 사람들이거든요. 그다음에 앤디 워홀 같은 사람들도 원래 정통 페인팅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지지대를 세워놓고 그리는 게 아니라 책상에 깔아놓고 그리는 만화가라든지 아니면 디자이너 이런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작가로 인정받잖아요. 그런데 이 시대에 그런 아직도 봉건적인 관념을 갖고 있는 게 좀 한심하죠.
◇ 박재홍> 그런데 최근에 보면 구혜선 씨. 구혜선 씨도 이제 배우시잖아요. 그런데 이분도 이제 미술 작품 그리신다 말이죠. 그런데 이제 이 작품을 본 홍대 이 작가라는 분이 굉장히 큰 혹평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술적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 아무렇게나 내 느낌을 그린 그림이나 표현을 모두 예술 작품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이렇게 굉장히 혹평을 해서 또 이제 다시 한 번 전문 말씀하신 미대 출신분들이 아닌 분들의 예술작품을 예술성을 인정할 수 있느냐 이 논쟁이 다시 한 번 있었어요. 우리 조영남 씨가 그거 보시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 조영남> 평론가는 이건 좋은 작품이다, 이건 형편없는 작품이다 그럴 자유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분 평론가에 맡기는 거죠. 그리고 그게 기분 나쁘면 얘기 안 들으면 되고. 이분은 구혜선 씨 작품을 안 좋아하는구나. 그러면 누구를 좋아하나 그렇게 가면 되는 거고. 그렇게 미술에는 100% 자유가 있어요. 음악하고는 정반대예요. 음악은 수없는 규칙이 있고 1에서부터 100까지 전부 규칙이고 2분음표 한 소절에 몇 소절, 몇 박자 들어가야 된다 그거 틀리면 안 되고. 한 음정도 틀리면 안 되고 규칙이 있는데. 미술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100% 자유예요. 그러니까 평론가가 이건 좋다, 나쁘다 그건 평론가가 할 수 있는 자유죠.
◇ 박재홍> 평론 들어도 실제로 미술하시는 분들은 거기서 상처받으실 필요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 조영남> 그렇죠. 저는 그렇게 해요.
◆ 진중권> 구혜선 씨가 대처를 잘했어요.
◇ 박재홍> 굉장히 쿨하게 반응하셨어요.
◆ 진중권> 화가들이 착각을 하시는 게 원래 미술이 자기 목적이 아니잖아요. 자기들이 그림을 그리고 팔고 이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좋아하고 그러면서 미적 안목이 높아지고 그 단계 속에서 나도 그리고 싶다 이런 욕망을 만들어내는 데까지가 예술의 과제거든요. 그림들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왜 이렇게 적대적인지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돼요.
◇ 박재홍> 저도 사실 조영남 씨의 작품활동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그림을 한번 배워보고 싶다.
◆ 진중권>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 박재홍> 왜 제 꿈을 꺾으세요.(웃음)
◆ 진중권> 그래서 그때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야, 그런 거라면 나도 하겠다. 그런 거라면 나도 하겠다라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그러냐 하면 해 봐. 해 봐. 그리고 팔아봐.
◇ 박재홍> 알겠습니다. 일단 한판승부부터 열심히 하고요. 감사합니다. (웃음) 조영남 씨. 그런데 재판은 끝났습니다마는 기사에 보면 최후변론을 하실 때 눈물까지 보이셨다고 했어요.
◆ 조영남> 내 인생에서 제일 수치스러운 장면이에요. 그 얘기 안 해야 돼. 하지 마세요.
◇ 박재홍> 하고 싶지 않으세요?
◆ 조영남> 나는 창피해 죽겠어요.
◇ 박재홍> 그래도 어떤 게 힘드셨기 때문에 그렇게.
◆ 조영남> 그러니까 6년 내 설움이 쌓였던 모양이야.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내가 보니까 울먹거리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제일 수치스러워요, 그게. 한 게 후회스럽고.
◇ 박재홍> 이 사회가 어떤 선생님의 예술 활동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러한.
◆ 조영남> 그런 거에 대한 설움이 북받쳤던 것 같아요. 계산은 전혀 그렇게 안 한다, 냉정하게 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날 그렇게.
◆ 진중권> 탤런트 김수미 씨가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저한테도 전화도 하시고 많이 걱정하셨어요.
◆ 조영남> 저는, 저는 독자적으로 진중권 씨가 나를 도운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 박재홍> 그 뒤에 누가 있었습니까?
◆ 진중권> 독자적으로 도왔는데요.
◆ 조영남> 김수미 씨가.
◇ 박재홍> 진중권 씨도 김수미 씨랑 친분이 있으셨어요?
◆ 진중권> 그게 아니라 제가 예전에 그때 그 활동을 했고 그때 김수미 씨가 와서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당시 이제 재판은 대법원에서는 다 무죄 판명이 났습니다만 그 과정 중에서 워낙 또 사회적 논란이 컸었기 때문에 이미 또 우리 조영남 씨의 작품을 사신 분들이 있으셨잖아요.
◆ 조영남> 그렇죠.
◇ 박재홍> 그래서 환불 요청도 있으신 분도 있었나요?
◆ 조영남> 그게 제가 말로 실수한 게 많거든요. 입방정 떨어서. 대통령 앞에서도 각설이타령 불러서 군대 끌려가기를 마음 아파서 불러서 끌려가고. 그런데 제일 큰 게 그게 있어요. 내가 내 그림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면 가져와라. 그럼 내가 환불해 주겠다 그 얘기를 안 했어야 되는데. 나는 설마 내 그림을 환불까지 요청하랴
cbs <한판승부>에 출연한 조영남
◇ 박재홍> 정말 환불 요청할까 싶으셨는데.
◆ 조영남> 물밀 듯이 환불 요청이 들어왔어요.
◇ 박재홍> 웃을 일이 아닌데, 그렇죠, 사실은.
◆ 조영남> 쫄딱 망했어요.
◆ 진중권> 지금은 어떻습니까?
◆ 조영남> 지금은 거의. (회복됐습니까?) 회복되는 단계죠. 그리고 환불이 왜 망하냐 하면 제가 100원짜리 그림을 팔았어요. 팔 때는 50원 받았거든요. 그런데 환불할 때는 100원을 달래. 자기는 화랑하고 관계없다. 100원 냈으니까 그냥 다 달라. 그러니까 더블로 환불을 해 준 거죠.
◆ 김성회> 여기를 통해서 업계의 관행이 반반이라는 걸 저는 알게 됐네요.(웃음)
◇ 박재홍> 그때가 굉장히 또 힘드셨겠네요.
◆ 조영남> 그게 만일 환불을 재판 결과에 따라서
◇ 박재홍> 결과를 보고 하겠다.
◆ 조영남> 그렇죠. 그렇게만 했어도. (유죄가 판명이 나면.) 지금 뜨뜻하고 이런 데 안 와도 되는데.
◆ 진중권> 그게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거든요. 이게 환불됐던 그 작품이다 하면 또 그 작품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 박재홍> 다시 명예가 회복된 작품.
◆ 김성회> 저는 예술을 하시는 분들 보면 특히나 고통을 당하고 난 다음에 뭔가를 더 만들어내거나 좀 다른 작품들이 나오는 경우들을 많이 봤는데 그래서 이 대법원 판결, 지금 방금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말씀하셨는데 그러고 나서 혹시 새로운 창작활동을 시작하신 게 있나요, 그 일을 계기로 해서, 이 고통을 계기로 해서.
◆ 조영남> 그 고통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건 나기 전에는 대충대충, 덤벙덤벙 그랬는데 시간 나니까 그림에 집중할 수가 있었죠.
◆ 김성회> 조수들이 바빠졌겠습니다. 그럼.
◆ 조영남> 조수를 안 시키고.
◆ 김성회> 그럴수록 조수를 시키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 조영남> 아니에요. 지금은 조수를 다른 방법으로 시켜요. 그림 화랑에 전시하고 싶으면 내가 조수를 쓸 테니까 조수비를 당신네들이 내라 그렇게 하고 있어요, 깨끗하게. 그리고 내가 팔리는 것 반을 줄 테니까 그 안에서 조수비 해결하시오. 그렇게 해서 아주 평화롭게 잘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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