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기 추락하길 바란다 어느 성직자의 염원 강원도 원주에서 한 성공회 신부 백 명이 넘는 탑승객을 태운 비행기를 추락하라고 저주한 게 압축된 본심 실수로 공개 미친
이상한 나라를 여전히 살고 있는 것은 별로 이상하지도 않다. 어차피 그런 나라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살고 있는 게 우리이고, 더 이상해지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들에게 잘못 걸리면 상식을 벗어난 대우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 불안하다. 멀쩡한 사람을 조리돌림하는 기술이 좋아서 여럿 보낸 지가 오래다. 그게 특정인일 수도 있고,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다.
물론 누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도 무방하다. 너무 옛날 이야기라 지금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다르다. 그래서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이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으나, 분명 잘못되거나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을 판단할 능력이, 이성이 있다고 본다.
혹시 눈이 뒤집혀 헛소리를 했더라도, 제정신이 돌아오면 잘못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정상 아닌가?
적어도 그런 세상이어야 살맘하거나, 행복한 나라로 향해 갈 수 있지 않나? 이미 샘플, 교과서 같은 나라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쉽기도, 어렵기도 한 것인가?
[박종인의 징비] “전용기 추락하길 바란다” 어느 성직자의 염원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1.14 12:37
페이스북 캡쳐
강원도 원주에서 한 성공회 신부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탄 전용기를 ‘온 국민이 염원해서’ 추락하길 바라 마지않는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문제가 되니까 글을 삭제하고 “일기장처럼 쓴 ‘나만의 생각 압축’이 공개돼 사과한다”고 썼다.
일단 비겁하다. 백 명이 넘는 탑승객을 태운 비행기를 추락하라고 저주한 게 ‘압축된 본심’이고 그 본심이 실수로 공개됐으니 사과한다는 이야기지 본심에 대한 사과나 철회는 없다.
그리고 졸렬하고 끔찍하다. 이 신부 페이스북 포스트에는 현 정권에 대한 적의(敵意)가 가득하다. 이 신부는 이태원 사고로 명동성당 추모미사에 참석한 대통령 사진을 올리며 “나 같으면 성당 출입을 금지시키고 저 굥을 두드려 팬 뒤 감옥행으로 가겠다”고 쓰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봉사하는 단체에 대한 후원과 기도를 부탁한다는 포스트도 이어지니, 어느 포스트가 본심일까. 저런 폭력적인 증오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자기 신도들에게 전파해왔다니 끔찍하다.
14일 오전 11시 현재 이 사제는 페이스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예전 포스트들을 캡쳐해 퍼나르는 중이라 소용없다.
이뿐인가. ‘치과대학을 졸업한 물리학회 회원이며 작가’라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과 팔짱을 끼고 기념사진을 찍은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을 ‘손톱을 세워 강하게 팔뚝을 잡고 팔꿈치를 신체에 밀착되게끔 잡았다’며 ‘버릇 어디 안 간다’고 평했다. 또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유족 지원 용도로 지급된 예산을 경기도 안산시는 김정은 신년사 학습회와 아파트 부녀회 소모임, 현장체험을 명목으로 한 제주도 여행 경비로 사용했다.
지자체에서 작가, 그리고 성직자까지, 직업 불문이고 남녀노소 불문이다. 이 사회와 구성원에 대한 폭력적인 증오와 법을 무시하는 행태가 이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이 됐다는 뜻이다. 왜 이런 아무 쓰잘 데 없는 현상이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는 말인가.
맑은 공기는 위로 올라가지만 세상을 부패시키는 병균은 아래로 내려온다. 윗물이 썩어도 너무 많이 썩어 있었던 것이다. 1504년 음력 4월 폭군 연산군이 어리니라는 애꿎은 여자를 부관참시한 뒤 이 정당성 여부를 신하들에게 물었다. 누가 보더라도 무죄였지만 연산군에게 신하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십니다.”(1504년 4월 23일 ‘연산군일기’) 그래도 법 없는 자유를 원했던 연산군은 권력을 감시하던 사헌부와 사간원을 폐지하고 폐지 기념문을 목판에 새기라 명했다.(1504년 12월 26일 ‘연산군일기’)
영조는 압슬형(무릎을 바위로 짓누르는 형벌), 주뢰형(주리틀기), 낙형(인두로 지지는 형벌) 같은 잔인한 형벌로 정적을 처단했다. 정적들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영조는 “형벌이 너무 잔인하다”며 이들 형을 금지시켰다. 1894년 청나라 상해에서 암살된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 시신이 조선으로 운구되자 고종은 죽은 김옥균을 관에서 꺼내 살을 도려내고 목을 베는 ‘부관참시’와 ‘능지형’으로 재차 처단했다. 그런데 이미 죽은 역적에게 형을 가하는 ‘역률(逆律) 추시(追施)’는 영조 때 “나라가 멸망할 형벌”이라며 금지된 처벌이었다.(1759년 8월 19일 ‘영조실록’)
연산군부터 영조, 고종까지 자기 만족을 위해 법을 무시한 것이다. 조선은 성문법이 완비된 나라였다. 그런데 그 나라를 다스리는 많은 지도자들은 이렇게 자기 정치적 신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법을 초월해 나라를 통치했다. 그를 추종하고 이해관계를 함께했던 세력은 그 무법과 부도덕함을 방조하고 동조했다.
권력층에 이렇게 탈법과 불법이 난무하면 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백성과 시민은 더 이상 법에 기대지 않는다. 법을 탈출한 권력도 썩고, 그 썩은 권력과 결탁한 탈법과 불법이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망국 무렵 조선 권력자들은 인간 본성인 이기심과 탐욕을 법을 무시하면서 마음껏 발휘했다. 망하는 나라, 망하는 사회가 보여준 징조와 망국 패턴은 이렇게 역사에 너무나도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법에서 풀려난 이기심과 탐욕이 사회로 전염되면 사회는 법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개개인은 언어적, 물리적 폭력에 의지해 자기 이기심을 성취하려고 한다. 요즘 하루도 빠짐없이 이 사회 상하 구성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비상식적인 폭력의 근원은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 권력층이 행한 무법과 탈법이다. 법을 적용하지도 집행하지도 않고, 사회 방어에 필요한 시스템을 없애는 법을 만들어 사회를 붕괴시켜온 그 행태가 지금 광적 폭력의 근원이다.
법은 도덕률의 최소한이라고들 한다. 그 최소한의 도덕률을 권력자들이 안 지켜왔는데 이 사회에 인간성과 예의가 남아 있겠는가. 인간세상이 아니라 동물의 왕국이 돼 버렸는데 인간의 언어가 먹히겠는가. 이 인간의 땅을 오염시킨 저 동물의 언어는 언제 사라질 것인가.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2/11/14/BMK5IY2B6NGZXHBM7BHIVIYP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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